에너지 카르텔? 기사 속 전문가 알고보니 '기업 사외이사'
기사에 등장하는 전문가 다수가 기업 사외이사 역임 사외이사로 있는 기업 관련 기사에도 '전문가'로 등장 이해관계 언론이 인지할 필요… 취재원 다양화해야
언론에는 전문가로 등장하지만 화석연료 기업의 사외이사를 지낸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해관계자에 해당함에도 기사에는 명시되지 않아 중립적인 전문가의 견해처럼 느껴질 여지가 있었다. 언론이 취재원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학과 교수? 동시에 LNG·LPG기업 사외이사
탈원전 정책,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 에너지 이슈에서 빈번하게 인용되는 A교수는 2023년 3월 E1 사외이사, 같은 해 9월 한국가스공사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E1은 LS그룹 계열의 LPG(액화석유가스) 관련 사기업이고 한국가스공사는 LNG(액화천연가스) 관련 공기업이다.
A교수는 재생에너지 확대 경계 논조를 가진 언론에 주로 인용된다. 지난 5일자 조선일보 <한국 태양광 발전 단가 中의 3배… 육상 풍력 발전은 4배 넘게 비싸> 기사에서 A교수는 “재생에너지는 발전 단가 이상의 추가 비용이 많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재생에너지 확대를 고집한 유럽의 전기요금이 왜 올랐고, 어쩌다가 산업 경쟁력이 무너졌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주요 일간·경제지 13개 매체에서 A교수가 등장한 건 지면 기준 63회(2025년 1월1일~11월24일)다. A교수는 기사 코멘트뿐 아니라 기고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사엔 ‘경제학과 교수’라고만 언급될 뿐 사외이사라는 이해관계에 대한 설명은 담기지 않았다.
지난 6월9일자 <LNG 수급 전략 재정비해야> 한국경제 칼럼에서 A교수는 “탄소중립을 한다고 재생에너지 발전소만 늘리고 송전선은 없고 관성을 제공해줄 발전원이 줄어든다면 안정적으로 주파수를 맞추지 못해 스페인과 동일한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다”며 “관성을 공급하는 대표적 발전원이 바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다. 관성을 제공함과 동시에 부하 추종도 가능하기 때문에 LNG 발전소가 꼭 필요하다”라고 했다.
지난 6월25일 <산업과 에너지는 한몸이어야 한다> 경향신문 칼럼에서 A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반대하는 취지로 “산업 경쟁력 확보와 미래 성장 먹거리 창출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기후정책도 존재하는 것이다. 기후정책이 규제 일변도로 흐르게 되면 결국 기업들은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사외이사로 있는 기업 관련 기사에도 전문가로 등장
A교수와 같은 기간 주요 일간·경제지 13개 매체에서 지면 기준 42회 등장한 B교수는 2015년 12월 한국가스공사, 2017년 3월 E1 사외이사(2020년 연임)에 선임됐다. 2020년엔 경동나비엔 사외이사(2024년 연임)로도 활동했다. 경동나비엔은 자체 설립한 재단법인 ‘늘푸름’을 통해 한국자원경제학회를 후원하고 있다. A교수는 한국자원경제학회장, B교수는 한국자원경제학회 고문이다.
B교수는 2024년 SK가스 사외이사로 선임됐는데 SK가스가 언급된 기사에서도 전문가로 인용됐다. 지난 3월27일자 조선일보 <전기료 폭탄에… 발전소 짓고, ‘전력 직구’ 나선 기업들> 기사는 산업용 전기 요금이 가파르게 올라 관련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인데, 그 기업 중 하나로 SK가스의 석유화학 자회사 SK어드밴스드가 언급됐다. 해당 기사에서 B교수는 “기업들이 전력을 사들일 선택지들을 열어줘야 기업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C교수는 한국석유공사 이사회 의장 출신이다. 지면 기준 22회 등장했다. 지난 9월11일자 <실용주의와 거리 먼 기후에너지부> 한국경제 칼럼에서 C교수는 “정부 구상대로 기후에너지부가 다음달 출범하면 환경정책이 우선순위를 점하며 에너지와 산업 정책은 종속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우려했다. C교수는 지난해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등록했으며 윤석열 정부 인수위에선 전문위원을 지냈다. B교수와 C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서로 편해서 이뤄지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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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의 전문가가 특정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그 업계를 대변할 수는 있다. 문제는 언론이 이해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특정인을 반복해서 인용할 때 발생한다. 설령 기자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언론이 한쪽의 목소리만 싣게 되는 셈이다.
기자 출신인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Climate in Fact) 대표는 통화에서 “잘 모르는 분야의 기사를 쓸 때면 다른 기사에서 많이 언급된 전문가의 연락처를 구해 묻기 마련”이라며 “일부 전문가들 또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걸 원한다. 서로 편해서 이뤄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이해관계에 대해) 언론이 인지는 하고 있어야 한다. 언론에 유독 많이 노출돼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한 번은 더 생각해보는 게 필요하다”며 “지금도 기자들이 기획 기사 혹은 자신이 발제한 기사를 쓸 때면 논문도 찾아보고 심층적으로 전문가를 찾는다. 지금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분야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기후 및 환경단체 입장에선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느껴진다. 김원상 기후솔루션 커뮤니케이션담당은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하는 일은 화석연료 사용과 직결된 문제인데 화석연료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의견만 미디어에 주로 소개된다. 결국 에너지 전환을 최대한 늦추자는 의견만 강조되는 것”이라며 “다양한 화석연료 포트폴리오를 지닌 기업들이 언론사의 광고주이기 때문에 탄소배출 감축의 중요성을 누락한 논조들이 부각되는 게 아닐까 의심된다”라고 했다.
김원상 담당은 “기후 문제는 정치적 의견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공익 이슈”라며 “기후변화는 IPCC, WHO 등 국제기구가 명확한 과학적 합의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분야다. 여기서 정답은 화석연료 사용을 빠르게 중단하고 에너지 전환을 시급히 이루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보도에서 필요한 중립성은 ‘양쪽 말을 똑같이 실어주는 균형’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비례적 인용과 검증된 과학 기반 보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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