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초유의 '활동가 집단 사직' 사태, 대의원 토론회 열린다
대의원들 요구로 오는 28일 해결 방향 토론…활동가들 복귀 요청 논의될 듯 앞서 상근자 전원 "운동 뒤 권력 사유화, 활동가 대체인력 취급에 미래 있나"
언론시민운동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상근활동가들의 비민주적 운영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 및 집단사직 사태에 대해 대의원 토론회를 열고 해결 방향을 논의한다.
복수의 민언련 대의원은 지난 20일 대의원 대화방에서 회의 소집을 요구해, 오는 28일 토론회 형식의 대의원 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민언련 이사와 사퇴한 신태섭 상임공동대표 등 이번 사태 관련자들도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민언련 상근활동가 7명 일동은 지난 17일 비민주적 조직 운영과 신미희 당시 사무처장의 폭력적 언행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나 개선되지 않았다며 집단 사직을 선언했다. 전직 민언련 활동가 10명과 타 노동조합 및 시민단체, 활동가 360여명이 연명했다.
이들은 조직 내 공식∙비공식 경로로 신미희 사무처장의 위계적 소통방식과 ‘내로남불’식 조직 운영, 폭력적 언사 등 문제를 호소해왔지만, 이에 대한 책임자들의 실질적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사회는 상황을 방치하고 오히려 사무처장 사직 시기를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활동가를 ‘최저임금으로 다시 뽑으면 되는 대체인력’ 쯤으로 여기는 시민단체에 미래가 있는가. 구성원이 고통을 호소할 때 외면한 조직이 어떻게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민언련은 같은 날 긴급 임시이사회를 열고 사태를 논의한 결과 신 처장과 신태섭 상임공동대표 사임을 결정했다. 그러나 사의 표명한 활동가 복귀 요청은 하지 않았다.
이후 민언련 대의원 40여명이 모인 대화방에서 A 대의원은 “이사회, 확대운영위, 비상대책위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구성원을 보니 다 그 분이 그 분이다. 결국 총회 때까지 문제를 덮고 가겠단 얘기 아닌가”라며 비상 대의원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이 대의원은 “내재된 문제를 크게 봐야 새 길이 열린다. 그럴 용기가 없으면 지금 문제는 지엽적 문제로 폄훼되고 문제를 외화한 활동가를 탓하면서 결국 민언련은 스스로 어렵게 될 것”이라고 했다.
B 대의원도 “사무처 안에서만 혁신위, 비대위 이야기 논의 마시고 같이 하자”며 동의했다. C 대의원도 “사무처장 활동가 모두 사퇴하면 내년 총회 전까지 상근자가 없는 상황에 현안은 물론 향후 운영방향 논의 실무는 어떻게 해결하려 하나”라며 “이번 사태로 그간 활동 방향성에 대한 진단과 변경 필요성은 어떻게 논의되었나? 이번 사태 문제 원인에 대한 진단은 이사회에서 어떻게 논의되었나”라고 물었다. 다른 일부 대의원이 회의 소집에 동의했다.
대의원을 겸하는 한 민언련 이사는 이에 “갈등이 구체적으로 불거졌을 때 구체적 책임 공방을 벌이면 서로 상처가 더 깊어지고 또 조중동이나 국힘당 등의 더 큰 먹잇감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월요일(17일) 당시는 활동가들이 확정적으로 민언련을 떠나겠다고 공개선언한 상황이었다. 이미 물이 엎질러져 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파장을 최소화시키자는 생각으로 사무처장이나 다른 당사자가 반박이나 공방에 나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이사회에서 제시됐던 것”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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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이사는 “일부 언론보도만 보면 사무처장이 거의 악마화돼 있고 특히 처장과 상임공동대표가 사임하기로 했다는 점까지 놓고 보면 마치 처장이 일방적으로 과오를 범한 것처럼 느끼는 분위기”라며 “사무처장이 자리에 연연해서 사임을 미룬 것이 아님도 명백하다. 후임 사무처장을 백방으로 물색했지만 구하지 못했던 상황”이라고 했다. 토론회는 오는 28일 저녁 7시 민언련 대의원들과 공동대표, 사태 관련자 등이 참여하는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대표적 언론운동단체의 한 곳인 민언련은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으로 출발해 1998년 시민언론운동을 이어왔다. 민언련 활동가들은 단체 출범 37년 만인 2021년 지속가능한 노동조건과 수평적 의사결정구조 등을 목표로 걸고 민언련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초대 민언련 노조위원장은 이듬해 2022년 12월 노조 결성을 이유로 사무처로부터 부당 인사발령을 받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으나 기각됐다.
전·현 민언련 관계자들은 사무처장이 재정과 활동가 채용을 포함한 사무처 의사결정 전반에 권한과 책임을 갖지만 임기 제한이 없어 견제 장치가 미비하다고 지적한다. 신 처장의 경우 5년 8개월 재임했다. 민언련 내부 입장문 등에 따르면 상근 활동가들은 2022년 전임 민언련 대표 취임 이후부터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와 사무처장의 폭언 등을 문제 제기했다. 집단 사직 전까지 두 차례 내부 입장문을 내 조직 쇄신을 요구해왔다.
신 처장은 지난해 ‘조직 혁신 필요성’을 언급하며 사의를 밝혔지만 실제 사퇴가 미뤄지자, 활동가 일동이 지난 9월 내부 입장문을 냈다. 끝에 민언련 이사회는 10월 말로 신 처장 사퇴를 결정했다. 그런데 10월23일 민언련 이사 3인 등으로 구성된 혁신위원회가 처장 인수인계를 3개월 연장하는 안을 냈고 이사회는 이를 수용했다. 반면 사퇴안 번복에 반대한 활동가들이 낸 직무대행 체제 안건은 부결시켰다. 이 과정에 신 처장을 분리 배치하거나 직무 배제하는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혁신위, 임시확대운영위원회, 비대위 등 쇄신 기구에 상근 활동가는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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