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집단사직' 민언련, 사무처장 사퇴 공지했지만…"활동가 탓 급급"

사무처장·상임공동대표 사퇴, 집단사직 복귀는 안 물어…"사직은 자유의지" "그라운드제로" "활동가 탓 급급, 이름만 갈아끼운 비대위…조직 내 기득권과 폐쇄적 구조가 본모습"

2025-11-19     김예리 기자
▲민주언론시민연합 사옥. 사진=정철운 기자

민주언론시민연합이 활동가 집단 사의표명 사태에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태섭 상임공동대표와 신미희 사무처장의 사임을 결정했다. 그러나 활동가들의 복귀 의사는 묻지 않는 한편, 활동가들이 반대한 사무처장 임기 연장안을 관철한 기구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활동가들은 “보여주기식 사임”이라며 “사람도, 미래도 포기한 민언련과 작별을 고한다”고 밝혔다.

민언련은 지난 17일 저녁 대의원 공지를 통해 “활동가들의 집단사직에 대해 깊이 책임을 통감하며, 신태섭 상임공동대표와 신미희 사무처장은 19일 사임한다”고 밝혔다. 민언련은 오는 20일부터 기존 임시확대운영위원회를 비상대책위로 전환해 내년 1월까지 가동하겠다고 했다. 비대위는 김수정 공동대표와 혁신위원회 소속 민언련 이사들, 박석운 이사 등으로 구성됐다. 민언련은 “사무처 활동가들의 고언을 새기고 뜻을 반영해 구조적 쇄신과 책임 있는 대응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사회는 집단 사의를 표명한 활동가 일동에 복귀를 요청하거나 재고 의사를 묻지 않기로 결정했다. 활동가들은 지난 18일 사무처 회의에서 신 처장으로부터 ‘외장하드에 업무파일을 넣고 개인 PC는 후임자를 위해 비우라’고 공지 받았다고 한다.

앞서 민언련 상근활동가 7명 일동은 지난 17일 조직 내 비민주적 조직 운영과 신 처장의 폭력적 언사가 문제 제기에도 개선되지 않는다며 집단 사직하겠다고 밝혔다. 전직 민언련 활동가 10명과 타 노동조합 및 시민단체, 활동가 360여명이 연명했다. 이에 민언련은 같은 날 긴급 임시이사회를 열고 사태를 논의했다.

민언련 이사이기도 한 김수정 공동대표는 18일 활동가들 복귀 요청 여부를 묻자 “(활동가들이) 이전에 이미 사표를 쓰겠다고 말을 했고 최대한 자유의지는 받아들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장직) 인수인계를 하며 다음을 준비하자는 노력조차 활동가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민언련 이사는 같은 날 통화에서 “공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하는데 달리 방법이 없다”며 “경천동지할 사태가 생긴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 실행력을 구성해야 된다고 정리했다. 조직이 완전히 망가져 ‘그라운드 제로’로 새 비대위를 구성해 조직을 복원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활동가들의 성명에 대해선 “모두 상대방이 있는 이야기이고 반박도 많이 있지만 시시콜콜 따지지 말자고 (이사회에서) 얘기됐다”고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로고

활동가 7명 일동은 19일 저녁 성명을 내고 “문제를 외화한 활동가를 탓하기 급급한 민언련 이사회, 그리고 혁신을 포기한 조직에 작별을 고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름만 갈아끼운 비대위 체제가 과연 ‘조직 쇄신’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인수인계와 대외활동을 이유로 신 처장은 앞으로도 업무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사태가 마무리된 것처럼 모양새를 취했을 뿐, 상임공동대표와 활동가들만 사직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신 처장이 그간 활동가들에게 “생각 좀 하고 일하라” “바보야 사진에 거지같이 나오잖아” 등 폭언을 해왔으며, 활동가들이 이사회에 배석해온 것을 두고 ‘이사회에 간사 배석 원래 없었다.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견을 말하면 질타받기 일쑤였던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소통구조 속에서 조직역량 재생산 실패는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했다.

이어 “김수정 대표는 ‘활동가들의 입장문을 보니 너무 감정적’이라며 활동가를 탓했고, 채영길 정책위원장은 ‘힘들게 다들 고생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활동가 성명은) 기가 막힌다’거나, 사무처장 전횡으로 괴롭다는 활동가에 ‘너희 잘못은 없냐’고 비난했다”며 “결국 조직이 활동가들을 집단사직의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이사회는 오히려 문제를 외화한 활동가들을 성토하는 자리였다고 전해졌다. 박석운 이사는 ‘활동가들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며 비난했고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며 “성명 발표 후 조직의 누구도 활동가들에게 대화를 요청한 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을 위한 운동, 시민과 함께하는 단체임을 자처해왔지만 허울일 뿐, 조직 내부 기득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폐쇄적 구조가 본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김수정 공동대표는 19일 활동가 일동 성명에 대해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라며 “활동가들이 많이 힘들어했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은 후회가 된다”고 했다. 활동가들이 폭언이라고 밝힌 내용을 두고는 “구체적 내용은 몰랐다. 고성이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역량을 깎아내리는 표현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신 처장은 19일 전화와 메시지를 통한 질의에 답하지 않은 상태다.

전·현 관계자들은 민언련 사무처장이 재정과 활동가 채용을 포함한 사무처 의사결정 전반에 권한과 책임을 갖지만 임기 제한이 없어 견제 장치가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신 처장의 경우 5년 8개월 재임했다. 과거 내부 입장문 등 취재를 종합하면 상근 활동가들은 2022년 전임 대표 취임 이후부터 비민주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운영, 신 처장의 폭력적 언사 등을 문제 제기해왔다. 신 처장은 지난해 말 ‘조직 혁신 필요성’을 언급하며 사의를 밝혔으나 실제 사퇴는 미뤄졌다. 활동가 일동은 지난 9월 내부 입장문을 냈고, 민언련 이사회는 10월 말일로 처장직 인수인계 완료와 사퇴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사 3인 등으로 구성된 혁신위가 지난달 23일 처장 인수인계를 3개월 연장하는 안을 내고 이사회가 이를 받아들이며 기존 사퇴안이 번복됐다. 활동가들은 같은 날 재차 입장문을 내고 직무대행 체제 대안을 제시했지만 이사회에서 부결됐다. 이 과정에 신 처장을 분리 배치하거나 직무 배제하는 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민언련이 조직 쇄신을 위해 운영한 혁신위, 임시확대운영위원회 등 기구에 사무처장을 제외한 상근 활동가는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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