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면 안 변하니까 민언련 노조 만들었어요"

[김도연의 취재진담] 민주언론시민연합 노동조합 설립 고은지 위원장 "도망치면 여긴 늘 그대로일 것 같았다" 임금협상 자리도 없던 일터에 지난해 10월 노조 설립 조선희 부위원장 "비정규직 언론노동자와 연대할 것"

2022-01-23     김도연 기자

언론개혁 운동을 이끌어온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에 지난해 10월 노동조합이 생겼다. ‘참여연대 노조 이후 두 번째로 결성된 활동가 노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독재 정권에서 해직된 언론인을 주축으로 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1984년)가 이 단체 전신이라는 걸 떠올리면 활동가 노조가 왜 이제야 출범했는지 되레 궁금해진다.

민언련 노조는 작지만 단단하다. 사무처 상근자 12명 가운데 사무처장과 협동사무처장을 제외하면 10명이 모두 노조에 가입했다. “늘 절이 싫어서 떠나는 중”이었던 고은지 활동가(31)는 이번 만큼은 달랐다. 도망치면 여기는 늘 그대로일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해 5월부터 반 년 동안 동료 활동가들과 스터디 모임을 갖고 노조 규약과 규정 자료를 마련했다. 노조의 교섭 요구안과 방향도 동료와 함께 고민했다.

민언련 노조는 지난해 10월25일 총회에서 노조 설립에 앞장섰던 고은지 활동가와 조선희 활동가(29)를 초대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고 위원장은 2019년 4월 민언련에 정규직 입사했고, 조 부위원장은 2018년 11월 인턴 생활을 거친 뒤 정규직 활동가가 됐다. 민언련에서 활동한 지 만 5년이 되지 않은 이들이 현재 남아있는 활동가 가운데 시니어 축에 속한다고 하니 시민단체에서 미래를 찾지 못한 활동가들의 고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민언련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 민언련 노조는 지난해 10월25일 총회에서 노조 설립에 앞장섰던 고은지 활동가(오른쪽)와 조선희 활동가를 초대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사진=민언련 노조 제공

- 민주언론시민연합 노조,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

조선희(이하 조) : “시민단체 노조는 회사와의 관계라든지 여러 측면에서 특이하다. 적대적이라고만 볼 수 없는 특수성이 있기도 하다. 다른 시민단체 사례를 참고하고 싶었는데 그게 참 어려웠다. 시민단체 노조로 알려진 곳이 참여연대를 포함해 소수에 그쳤다. 비슷한 사례를 하나하나 물어가며 설립에 참고했다. 아직은 ‘아기노조’이지만 그래도 지난주 본교섭 1차 회의를 진행했다. ‘시민단체는 노조 협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도 개척자 입장에서 진행해 나가고 있다.”

- 노조 설립을 추진하게 된 계기도 설명해달라.

고은지(이하 고) : “활동가가 되겠다고 생각해서 민언련에 온 것은 아니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중 방송사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됐다. 그러다가 ‘더는 못해먹겠다. 방송사 놈들 다시는 안 만나’라는 마음으로 그만둔 뒤 학원에서 일을 했는데, 우연히 민언련 모니터 교실을 보고 민언련 존재와 활동을 알게 됐다. 언론을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렇게 갑자기 직장인에서 활동가가 된 케이스다. 내가 회사 상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노동자 고은지’로서 날 대하는 것인데 그게 아닐 때가 많았다.”

-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가?

고 : “이를 테면 행사가 있어서 30분 일찍 출근 시키는 경우 그로부터 8시간을 채우고 평소 퇴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퇴근하겠다고 하면, ‘우리가 기획한 행사니까 초과근무를 더 할 수 있는 거지 어떻게 활동가가 그런 걸 요구하느냐’는 식으로 답변이 되돌아온다. ‘노동자 고은지’가 아닌 ‘활동가 고은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 고은지’를 요구할 때도 있다.(웃음) 수평적 논의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너희는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쓰고 근무하는 직원’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러니까 상사들이 말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혼란을 겪는다. 차라리 활동가 역할을 강조하면서 일반적 노사와 다른 수평적이고 민주적 논의·소통이 이뤄진다면 모르겠으나 어느 날은 노사관계를, 어떤 때는 활동가 역할을 강조하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조 : “활동가이자 직원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요구받다 보니 우리 사이에서도 혼란이 많았다. ‘활동가니까 임금을 덜 받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좀더 일을 더해야 하지 않을까’, ‘직원으로서의 요구를 회사에 하면 안 되는 걸까’라는 식으로 자문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로서 권리찾기에 목이 말랐던 것 같다. 임금에 관해서도 그동안 임금협상 자리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위에서 결정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한 해 예산을 짜보니까 임금을 올려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거나 특히 작년 코로나19 때문에 후원 회원이 줄고 종로구로 이사를 오는 등 여러 상황 때문에 임금동결했을 때도 우리는 그 사실조차 몰랐다. 노동조건을 합의할 수 있는 합의체의 필요성을 느낀 이유다.”

▲ 언론개혁 운동을 이끌어온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에 지난해 10월 노동조합이 생겼다. ‘참여연대 노조 이후 두 번째로 결성된 활동가 노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사진=민언련 노조 제공

- 노조 설립이라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 “알아보니까 2명 이상만 있으면, 노조를 만들 수 있더라. 당시 미디어교육팀에 3명(고은지·조선희·김봄빛나래)이 있었는데 두 사람에게 ‘둘 중에 한 명만 뜻을 같이 해도 나는 노조를 만들 생각이 있다’고 제안했다.(웃음) 회사를 떠나기 전에 뭐라도 하나는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항상 ‘여기 싫어 나갈래’라며 도망치기 바빴다. 내가 노조하자고 하면 민언련 동료들은 동참해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노조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뒤 스터디를 시작했는데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다. 준비를 그렇게 마친 뒤에야 다른 활동가들에게 가입을 권했는데, 활동가 모두가 들어오겠다고 의지를 밝혀 오늘에 이르게 됐다.(웃음)”

: “다른 노조 사례를 들어보면, 노동자가 다 함께 하나의 노조에 들어가는 경우는 적다고 한다. 노조를 만든다고 했을 때 불이익을 우려해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고. 그래도 우리 노조는 사무처 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10명이 모두 가입하겠다고 해서 교섭력이 더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지난해 취업규칙이 생겼는데 그에 앞서 이사회에 활동가들 의견을 전달하는 일이 있었다. 우리는 MZ세대인 만큼 ‘왜 결혼만 휴가를 주느냐. 비혼도 휴가를 달라’는 등 여러 요구를 했다. 진보단체이니까 충분히 받아들일 줄 안 것이다. 법에서 정한 것은 최소한일 뿐이고, 진보적인 시민단체니까 보다 진보적인 요구안을 논의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사측으로부터 돌아오는 답변은 ‘그런데 사실 너희는 노조가 없어서 이런 이야기 안 들어줘도 되는데 그래도 우리가 진보적인 시민단체니까 들어주는 거야’라는 식이었다. 우리가 만약 노조를 결성해 같은 요구를 했다면? 노조가 생기면 회사는 법적 의무가 따르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도 우리 노동자 말을 들어야 한다.”

- 노조 가입을 흔쾌히 찬성한 활동가들은 어떤 생각에서 결정을 내린 것인지 궁금하다. 조합원들이 노조에 기대하는 것도 적지 않을 텐데?

: “자신이 좋아했던 동료들이 이곳 환경에 질려 떠날 때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이미 떠나버린 활동가는 못 지켰지만 지금 옆에 있는 활동가 만큼은, 앞으로 민언련에 들어올 활동가 만큼은 노조를 통해 지키겠다는 의지가 크다. 활동가라서 눈치 보며 내뱉지 못한 목소리를 비로소 내겠다는 분도 있다. 민언련에서 의사를 결정하는 분들은 보통 비상근인데, 우리는 행사 때 아니면 이들 얼굴을 볼 기회조차 없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활동가들은 정작 민언련 대표와 이야기해본 적 없다. 노조 설립으로 이제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 시민단체가 어떤 방향성으로 나가는지 논의해볼 창구가 생긴 것이다.”

- 진보진영 시민단체는 사실상 인력을 갈아서 성장해오지 않았나? 박원순이 한국 시민운동을 성장시켜온 방식일 텐데, 지금 세대 활동가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 “민언련은 8시간 근무가 정해진 단체이지만 각자가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에 자발적으로 추가 노동을 한다거나 특히 주말 행사가 있을 경우 비자발적으로 야근을 하곤 했다.”

: “그러다 보니 시간 외 업무나 주말 근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 기저에는 ‘시민단체라 돈도 없는 데다 일하는 너희도 성장하는 거니까 보상받지 않아도 괜찮지 않아?’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 “오후 6시30분 정시퇴근에도 ‘왜 그렇게 빨리 퇴근하냐’는 눈치를 주는 것이고.(웃음)”

- 그래도 진보적 시민단체인데 사용자가 노동자의 무상 노무 제공을 당연시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 “진보적 시민단체들에 ‘사용자 마인드’가 없는 것이다. 타 시민단체 활동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히 세대 간 격차가 크다. 박원순 시대에 활동가로서 자신을 갈아넣고 오늘에 이르러 시민단체장이 되신 분들. 그분들은 ‘나때는 완전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했어’라고 말씀하시는데….”

: “나 때는 30만 원 활동비만 받고 일했어라든지.(웃음)”

: “그 돈도 회원들 모이면 술 사는 데 썼다고…. 그분들은 사측 자리에 있음에도 ‘사용자 마인드’는 갖지 않으려 한다. ‘내가 왜 사측이야? 나는 선배 활동가일 뿐’이라는 투다. 다들 ‘장’ 자리에 계시면서 말이다.”

: “그 자리는 활동가의 노동을 규율하는 자리 아닌가? 활동가 임금이나 노동조건은 정해진 것일 뿐 협상 대상일 수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 고은지 초대 민언련 노조위원장(왼쪽)과 조선희 부위원장. 사진=민언련 노조 제공

- 시민단체는 활동가 동력으로 운영되는 것임에도 정작 활동가 노동을 경시해온 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언련 활동가 노조의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민언련 노조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은 어떠한가?

: “노조를 만들고 나니 우리에게 알음알음 자문과 의견을 구하는 활동가 분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도 노조를 만들려고 하는데 사측과 불편하진 않느냐’고 묻거나 ‘우리도 노조를 만들고 곤욕을 치렀다’는 말씀들이다. <u>(기자 질문: 민언련 사측은 어땠나?) 민언련 운영위원회는 화환도 보내주며 축하해주셨다. 노조 설립 소식을 보도자료 등을 통해 선배 활동가들은 물론이거니와 이사나 정책위원 등 민언련에 관계된 모든 분에게 알렸다. 그러자 사측은 내게 ‘노조 소식에 불쾌해 하는 사람이 있었다’거나 ‘어떻게 활동가가 노동자이고, 시민단체가 회사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취지로 민언련 안팎 여론을 전해줬는데, 회사가 왜 굳이 이런 말을 내게 옮길까 의문이 들었다. 겉으로는 노조를 환영하면서도 ‘회원들이 노조 설립을 기분 나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굳이 전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 들어도 될 말은 안 듣고 싶다.(웃음)”

- 민언련 활동가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많이 떠난 것으로 안다.

: “지난 3년만 셈해도 10여명이 떠났다. 내가 들어온 후 퇴사한 활동가 가운데 다른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분은 없는 것 같다. 대신 일반 회사를 다닌다거나 하지. <u>(기자 질문 : 그분들은 시민단체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지 못했다고 봐야 하나?)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높은 연봉을 기대하고 시민단체 활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의미 있는 일로 얻게 되는 성취감과 보람을 더 바랄 것이다. 그런 것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나가는 거다. 그렇게 떠난 분들이 노조 출범 소식에 반색하며 ‘이제라도 민언련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 조직이 활동가 성장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인 듯하다.

: “개인적으론 그렇게 많은 활동가들이 나갔으면 사무처장 외의 사람들이 왜 저렇게 나가는 것인지 논의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활동가들 인내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조직 구조에 문제 있음을, 소통 방식에 결함이 있음을 성찰했어야 했다. 회사가 성찰 없이 ‘나가는 활동가들은 의욕과 자질이 없는 애들’로만 치부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 이번 교섭에서 회사에 요청하고 있는 사안은 무엇인가?

: “아직 본교섭 1차 회의만 진행해서 쟁점을 확인하긴 어렵다. 다만 우리가 요구하는 첫 번째 사안은 성실 교섭 의무 준수다. 사측임을 인지하고 좋은 민언련을 만들기 위해 우리와 함께 교섭에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처리할 수 있는 고충처리 시스템을 구비하라는 것. 세 번째는 소통 체계를 원활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활동가로서 우리에 대한 규율이 어떻게 정해졌고 우리에게 노무가 어떻게 부여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일하고 싶다. 마지막이 임금, 복지 등 근로조건 개선이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 의사소통 체계가 수직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지난해 11월 협동사무처장이 생기기 전까지 사무처장 밑에는 다 일반 활동가들이 배치됐다. 사무처장이 사무처 내용과 현안을 운영위나 이사회에 전달하고, 운영위와 이사회에서 나오는 결정 사안은 사무처장을 통해 활동가들에게 전달된다. 사무처장이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 “사무처에 상근자와 실무자들이 근무하다 보니 엔진 역할을 맡는다. 사무처장은 이사회 등 각종 주요기구에 들어간다. 사무처장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무처장에 집중된 역할이 혼선을 빚는 것이다. 사무처를 대표하는 인사로서 각종 기구에서 발언하면서, 우리를 상대로는 사측이나 이사회를 대리하는 입장에 서는 등 내부 소통에서 혼선을 빚게 되는 구조다.”

- 조직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는 건가? 노조가 생각하는 개선안이나 대안이 있을까?

: “노동자들이 이사회를 포함한 의사결정기구에 참관하거나 배석하게 해달라고 던질 것인데 받아들여지길 희망한다.”

: “아니면 오픈 회의록을 작성해서 우리가 언제든지 볼 수 있게 한다든지…. 김언경·신미희 전·현직 사무처장 개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답답했던 것은 똑같았다. 사무처장이 모든 기구에 들어가고, 모든 걸 대표하는 구조 자체가 원활한 소통을 막는다.”

- 민언련 노조가 어떤 노조가 되길 바라나?

: “노조 창립선언문에도 밝혔다. 우리의 근로조건을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언론계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싶다. 이를테면 방송작가나 뉴미디어 영역에서 근무하는 PD와 기자 등 여타 미디어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싶다. 지금 당장은 단체교섭에 집중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곳과도 적극 연대할 것이다.”

: “노조를 만들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른 시민단체에서 활동가 노조를 만든다고 하면, 우리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노조 설립에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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