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나치'라고? 왜 '기울어진 운동장'을 못 보나

[기고] 지금 공격받는 것은 여성차별에 반대해 정의를 요구하던 목소리다

2016-07-28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이선옥님의 기고 '

이런 양상은 지금 작은 규모로 반복되고 있다. 메갈리아의 부정적 측면과 잘못들만이 일방적으로 부각되고 부풀려지면서, 메갈리아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일베와 다를 바 없는 반인륜 집단으로 몰리고 있다. 메갈리아 편인지 아닌지 십자가 밟기를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메갈리아를 편들면 몰상식한 '페미나치'라는 딱지가 붙여진다.

'대중의 눈높이와 정서'라는 이름으로 공격이 이뤄지고 있고, 진보정당들 내에서도 거리를 두고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의당은 종북몰이 때처럼 이번에도 타협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진보당 마녀사냥과 낙인찍기가 절정일 때를 돌아보며, 내가 가장 후회와 반성이 되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진보당을 탈당했지만...', '진보당은 문제가 많고, 우리도 진보당 노선은 동의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던 기억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는 메갈리아가 아니고 그 사이트들에 잘 들어가지도 않지만... 나도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반대하지만...'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정말 서글픈 상황이다. 지금 메갈리아 공격 논리들은 먼저 이 사회가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을 못 본 척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마치 미국에서 '흑인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경찰 생명은, 백인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는 거냐? 모든 생명이 소중하지 왜 흑인 생명만 소중하다는 거냐'며 윽박지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에 따라 '메갈리아와 일베는 다를 게 없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 체제와 사회에서 평범한 많은 여성은 차별, 착취, 폭력이라는 3중의 굴레 속에 있다. 사랑하던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여자라는 이유로 영정 사진과 납골함을 들 수 없었던 경험 속에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김자연 성우의 고백에서도 그것이 드러난다. 이런 불평등 구조와 여성 차별과 혐오에 대한 반발이라는 맥락을 빼놓고 보게 되면, 원인과 결과가 뒤섞이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사라지거나 뒤집히게 되기 쉽다.

메갈리아가 '남성을 혐오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메갈리아에 모여 있는 여성들이 과연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대상화하고, 심지어 생사여탈을 좌지우지할 권력을 갖고 있거나 사회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 그래야 '혐오'가 가능한 것 아닌가?

메갈리아가 여성혐오적 작품을 생산하는 "창작자에 대한 낙인찍기와 작품 검열"을 해왔다는 이선옥 작가의 주장도 이런 혼란을 보여 준다. '여혐'에 분노하면서 '남혐'에 분노하지 않는 것은 "정의를 선택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선옥 작가는 강간미수로 기소돼 퇴출된 유상무와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었다가 배제된 김자연 작가를 유비하는 무리수까지 두고 있다.

메갈리아를 매도하며 화를 내는 사람들은 사실 메갈리아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을 잘 들어가 보지도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메갈리아에 모인 여성들을 움직이는 정서와 동력이 '혐오'라기보다는 '공포와 분노'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누구나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성폭력, 성희롱, 데이트폭력에 대한 공포이다. 끝없이 남성들의 시선에 노출되며 외모와 몸매를 평가당하고 언제든 김치녀, 된장녀, 걸레로 낙인찍힐지 모른다는 현실에 대한 분노이다.

이 때문에 메갈리아 등으로 뭉친 여성들이 주력한 것도, 이뤄낸 것도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 근절 캠페인, 성폭력 피해자 지원, 여성단체 후원, 소라넷 폐쇄, 성범죄 근절, 위안부 연대 등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류한수진 동지가 이렇게 질타한 것은 너무나 정당하고, 이런 주장 때문에 공격받은 것은 너무나 부당한 것이다.

"사람은 맞으면 맞서 싸우고 욕을 들으면 욕으로 돌려주는 게 당연합니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선빵 날린 사람을 말려야지 대드는 사람을 패면 안되죠. 리벤지포르노·몰카 신나게 즐기고 여자가 뭐만 잘못하면 개똥녀니 뭐니 낙인찍고 신상털고 된장녀네 갈베네 보슬아치네 여성들 모욕하고 희롱하는 말들을 쏟아내온, 혹은 최소한 그 모든 폭력들을 방임해온 사람들이 그 부당함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맥락에서 그것을 모방하는 메갈리아를 범죄집단이니 반인륜집단이니 어마어마한 절대악으로 만들어 '너도 메갈이냐? 밥줄을 끊겠다!'며 창작자들의 사상을 검열하려 드는 것은 그저 여성들에게 '계속 가만히 있어라, 일방적으로 참아라'라고 윽박지르는 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편파적인 요구에 손톱만큼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류한수진의 페이스북에서)

물론, 일부 사람들은 '그래도 메갈리아가 미러링이라며 한 일부 언행들을 보면 너무 심한 것들이 있고 옹호하기 힘들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반응은 역설적으로 무언가를 보여 준다. 메갈리아는 주로 일베가 인터넷 등에서 자행해 온 여성혐오를 거의 고스란히 일대일로 거울처럼 반사해서 보여 주는 전략(미러링)을 써 왔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메갈리아의 거울에 비추어진 그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이슬람국가나 나치와 뭐가 다르냐'고 충격을 받고 분노하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일베와 성차별주의자들이 자행해 온 여성혐오가 얼마나 끔찍하고 폭력적인 것이었는지 다시 일깨운다. 메갈리아의 거울을 거쳐도 그 충격이 여전하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 오래동안 공기처럼 스며든 여혐에 익숙해져 그것을 방관해 오지 않았는가 돌아보게 만든다.

예컨대 여성차별에 찌든 남성을 가리키는 '한남충'이란 단어를 보자. 이 단어가 '한남'에 그쳤다면 반발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남성이란 명기는 그 자체로 반응과 혐오를 일으키지는 않으니 '충'이 붙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어떤가?

"'충'자가 붙지 않아도 그 자체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게 여성이다. '◯◯녀'라고만 붙여도 혐오의 대상이 되잖나."(손희정)

그럼에도 '굳이 이런 방법까지 써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옳지 않고 역효과만 난다. 이성적인 방식으로 저항하고 사람들을 설득하자'고 말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듭된 좌절과 불통의 경험이 이런 목소리를 키우지 못한 것 같다.

"좀 더 성숙하게 논리적인 분위기로 바꾸자? 그 짓 10년 넘게 했다. 돌아온 거 없다."(메갈리안 사이트의 공지사항 중)

다만 메갈리안 사이트를 가보면 미러링의 위험을 인식하고 선을 넘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메갈리아 이용자 준수사항"과 "사이트 운영 방향" 등을 보면 "일반인 비하 금지...비하 목적으로 한 일반인(군인 포함) 사진 업로드...지역비하, 장애인 비하 금지...외설적인 신체부위 인증 금지...혐오사진 업로드 금지", "소수자혐오 금지", "똥꼬충, 에이즈충이라는 용어 사용을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등의 내용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일베 사이트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이성의 언어들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미러링의 한계와 위험은 사라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방식에 익숙하지 않거나, 맥락을 충분하고 섬세하게 고려하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과속하거나 일탈할 수 있다. 더구나 맥락을 잘 모르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더 크게 상처받거나 오해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또 다른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 되는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따라서 메갈리아의 분노와 저항이 올바른 과녁과 방향을 찾길 바라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애정어린 충고와 쓴소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당한 공격과 마녀사냥으로부터 메갈리아를 방어하는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내가 맘 편히 전적으로 방어하고 지지할만한 착하고 순수하고 완전무결한 사회적 약자도, '진정한 페미니즘'도 현실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든 결함이 있고 실수와 오버도 하고, 가끔 거칠고 독한 언행도 하기 마련이다. 특히 상처가 깊고 고통이 커서 비명을 지를 때는, 더욱이 다른 이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못하고 그러기 쉽다.

메갈리아 유저들의 그런 점들을 정말로 비판, 토론하고 싶다면, 정말로 고쳐지길 바란다면, 먼저 개개인들의 잘못과 결함을 샅샅이 들춰내서 메갈리아 전체의 문제로 삼는 '과도한 일반화'에 맞서야 한다. 그런 낙인을 찍어서 누군가를 일터와 공론장에서 쫓아내고 입을 막으려는 시도부터 막아야 한다. 지금의 마녀사냥과 낙인찍기야말로 메갈리아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가로막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현실을 직시하면, 메갈리아 일부 유저들이 보인 과도하고 뒤틀린 언행은 현 상황의 본질이 아니다. 지금 공격받고 있는 것은 여성차별과 혐오에 반대해서 정의를 요구하던 목소리들이다. 이런 공격들이 성공하면, 강남역 사건 등을 거치며 조금씩 높아지던 목소리가 다시 작아질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너도 메갈이냐'는 말을 들을까봐 가정, 학교, 일터에서 다시 움츠러들 수 있다. 다시 '왕자를 기다리는 소녀'의 위치를 받아들이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지금은 거리를 두거나 선을 그을 때도, 같이 돌을 던질 때도 아니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와 경제 위기의 시대에 벌어지는 이런 마녀사냥은 결코 일부 여성과 페미니스트들만의 문제일 수가 없다. 이것은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며 사회정의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마녀사냥의 원형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기, 즉 시초축적 과정에서 처음 등장했고, 강탈적 시초축적과 마녀사냥은 자본주의에서 거듭 재등장해 왔다는 지적을 되새겨야 할 때다. 메갈리아와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혐오와 마녀사냥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지금, 여성차별과 혐오에 반대하고 그것이 사라진 다른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이 메갈리안이다.

"2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유럽 국가에서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재판을 받고 고문을 당하며 산 채로 화형당하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새로운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여성의 몸과 노동, 이들의 성적인 능력과 재생산능력은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되었고 경제적 자원으로 변형되었다.

"피고에 대한 고문이 보여 준 성적 가학증은 역사상 필적할 데가 없는 여성혐오증을 보여주는 데...피고를 발가벗긴 뒤 몸에 있는 모든 털을 제거한다...질을 포함한 온몸을 바늘로 쑤신다...사지를 찢고 쇠의자에 앉힌 뒤 의자 밑에 불을 지키는가 하면 뼈를 으스러뜨리기도 했다...처형은 마녀의 아이들을 비롯한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참석해야만 하는 중요한 공식행사였다.

"이는 여성을 비하하고 악마화하며 이들의 사회적 권력을 파괴하기 위한 집단적인 시도였다. 동시에 고문실에서, 그리고 마녀들이 죽어가던 화형대에서 여성성과 가정에 대한 부르주아적 이상이 구축되었다.

"선동과 공포심은 남성들 사이에 여성과의 깊은 심리적 거리감에 씨를 뿌렸고 이로 인해 계급적인 연대가 붕괴되고 이들 고유의 집합적인 힘이 잠식당했다...1990년대 세계 곳곳에서 마녀사냥이 재등장한 것은...공유자원의 사유화, 빈곤의 만연, 약탈, 한때 끈끈했던 공동체에 분열의 씨뿌리기 같은 것들이 다시 세계적인 의제로 상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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