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빠져나간 여당추천 KBS이사들
'반쪽' 이사회, 21일 사장후보 5명 압축… 25일 면접 후 임명제청 예고, 일사천리
KBS 이사회(이사장 유재천)가 21일 KBS 사장 후보자를 5명으로 압축했다. 여당 추천 이사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이사회는 공모에 지원한 24명에 대한 서류심사를 약 2시간 만에 끝낸 후 "후보를 5명으로 압축했다"고 밝혔다. 이사회 쪽은 그러나 5명의 후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두 시간 여 만에 24명 서류심사 끝?
이사회는 오는 25일 이들 5명에 대한 면접을 실시한 뒤 최종 후보자 한 명을 선정해 임명제청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날 회의의 정당성과 관련해 논란이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재천 이사장과 여당추천 이사들은 회의 장소를 두 차례나 일방적으로 바꿨다. 또한 이사회 도중 야당추천 이사들이 이사회 개최 절차와 심사 과정을 문제삼아 중도 퇴장한 상태여서, 법적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야당 추천 이사 4명은 여당추천 이사들이 "오늘 중으로 5배수 후보를 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중도 퇴장했다. 이기욱 이사는 "다수 이사가 오늘 중으로 5배수 후보를 정하겠다고 했고, 이에 승복할 수 없어서 나왔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들 야당추천 이사들은 "24명 공모자의 이력을 검토하는 데만도 시간이 걸리니 주말까지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정하자", 또는 "오늘 중 후보군을 압축하더라도 최소한 7배수 정도는 돼야 하지 않느냐"는 등의 의견을 내놨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날 이사회가 9시에 개최되기로 했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회의 장소도 여러 차례 일방적으로 바뀐 점 등 절차상 문제점들을 회의 초반 1시간 가량 제기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유재천 이사장은 이에 대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등 에두른 답변만 내놨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 장소를 서울 여의도에서 강남으로, 강남에서 여의도로 두 차례나 바꿔가며 이사회 개최에 반발하는 KBS 구성원들을 따돌렸던 KBS 이사회(야당 추천 이사 6명)는 회의가 끝난 후에도 도망치듯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들은 오후 5시35분께 6층 사장실 옆 회의실에서 이사회가 끝난 뒤 2층 로비와 1층 출입구 곳곳을 막고 있던 사원들을 피해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청경의 호위를 받은 채 KBS 본관 1층 서현관 직매장 쪽으로 서둘러 빠져나갔다.
'여의도->강남->여의도' 이어 회의 끝나고도 따돌리기
이를 본 사원들은 황급히 저지하러 현장에 갔지만 청경 10여 명이 서현관 옆 계단을 철문으로 봉쇄하고 막아 이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사원들의 항의를 저지하던 청경은 사원들의 옷을 잡아채는 등 몸싸움을 빚기도 했다.
일부 KBS 기자는 "너희들이 이사냐, 쥐새끼냐"며 소리를 질렀고, 이를 지켜본 성재호 기자는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개탄했다.
양승동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대표는 "사원들이 이날 이사회를 저지하려 했지만 결국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개최한 이사회는 끝내 도망치듯 빠져나갔다"며 "이날 이사회의 강행은 정권의 시나리오대로 그대로 옮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천, "그런 일(청와대 개입) 없다"
청와대의 개입설과 관련해 유재천 이사장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나중에 결과를 보고 말씀하라. 그런 일 없다는 것 알게 될 것"이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또 후보자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탈락자 4명에 대한 명예를 고려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24명 공모자의 서류를 충분히 꼼꼼히 심사했느냐는 질문에 유 이사장은 "노보텔 호텔에서도 좀 봤으니까 2∼3시간은 본 셈이다. 충분히 봤다"고 말했다.
이날 이사회가 정한 '5배수' 후보 중에는 공모 마감 전부터 청와대가 압축한 후보 3명 가운데 속한 것으로 알려진 김은구 전 KBS 이사, 이병순 KBS 비즈니스 사장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인되지는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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