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어가는데 뭐가 중복이고 뭐가 효율인가
[바심마당]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지난 8월11일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사회보장사업 정비방안’(이하: 정비방안)을 사회보장위원회에서 의결했다. 지자체가 시행중인 자체 사회보장사업 5891개 사업 가운데 중앙정부 사업과 유사중복성이 있는 사업을 정비하겠다는 내용이다.
언뜻 보면 나쁘지 않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의를 통해 대상자와 보장수준에 대한 협의및 조정을 한다면 톱니바퀴처럼 이가 잘 물리는 복지가 이뤄지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 지역주민의 반발과 보건복지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기억하면 이렇게 무력한 보건복지부, 중앙정부가 다 있나 싶어 ‘협의·조정을 강화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정비방안의 목표가 그런 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민의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 절감’을 통한 재정효율화가 근본적인 목표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세 가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첫 번째 거짓말은 ‘유사중복성’이다. 유사하지도 중복되지 않는 것을 유사중복사업이라고 고집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중증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24시간 제공을 약속했지만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자체는 소수의 최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활동보조 추가지원을 통해 활동보조 24시간을 보장한다. 예를 들어 인천에 사는 A씨에게 활동보조는 하루 24시간, 한 달 720시간 보장된다. 이 중 390시간은 보건복지부가, 330시간은 인천광역시가 보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것을 중복사업이라고 말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기도의 ‘무한돌봄’은 ‘긴급복지’와 유사중복 사업이라고 한다. 정작 ‘무한돌봄’은 기준이 까다로운 기초생활보장제도, 긴급복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운영되는 제도다. 다른 지적사항 역시 대동소이하다. 실제 노동시간에 미달하는 보육교사 임금 보조를 위한 5만원의 지방정부 보조금, 기초연금만큼 수급비가 깎이는 기초생활수급노인 및 저소득층 85세 이상 노인을 위한 월 2만원의 ‘장수수당’ 같은 것들이 재정효율화를 위한 조정 대상이 되었다.
두 번째로 ‘협의·조정’에 거짓말이 있다. ‘지방 교부금’ 이라는 칼을 쥐고 있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평등한 협의가 이뤄지긴 어렵다. 지난 4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번 정비방안과 관련해 ‘강제 조항이 아니라 아쉽다’고 발언했는데, 이런 아쉬움을 반영한 것인지 ‘거의 강제’ 조항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사회보장심의위원회의 협의조정 결과에 불복하는 지자체에 대해 교부금을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비방안의 부족한 법적 근거를 채우기 위한 움직임이다. 강제가 아니라면 강제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무서운 의지다.
세 번째로 ‘재정 효율성’을 위한 것이라는 거짓말이다. 효율성을 보려면 투입한 재정이 얼마만큼의 효과를 내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효율성을 예산의 양, 즉 돈으로만 계산하고 있다. 복지의 특성상 비용대비 산출이 시장 거래처럼 발생할 수는 없다. 복지는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사회보장을 실시하는 것이 목표이며, 이를 통해 사회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지자체가 지역 주민들의 욕구에 따라 정부의 빈자리를 대신 해 만든 복리를 오히려 축소하고 침해하는 방향으로 정비방안을 제출했다는 점이다. 특히 그 조치들은 상대적으로 더 약한 사람, 아동이나 노인, 장애인, 빈민 등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몫을 빼앗아 복지재정 1조를 절감하겠다는 방침이 정말 우리 사회에 효율적 결과를 낳는다는 말인가?
정부가 축소 혹은 폐지를 요구하는 주요 항목 중 하나는 지자체의 장애인 활동보조 예산이다. 지자체가 중증장애인에게 24시간의 활동보조를 보장하기 위해 추가 지원을 실시한 배경에는 고 김주영씨의 죽음이 있었다. 활동보조를 받았지만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이후 시간에는 누운 자세에서 꼼짝할 수 없었던 김주영씨는 불과 10분 만에 진화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현관까지의 거리는 불과 3미터 남짓. 스스로 전화를 걸어 119에 구조요청을 했던 김주영씨는 단 한 사람의 도움만 있었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보건복지부에 묻고 싶다. 故김주영의 목숨 값은 얼마인가.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송파 세 모녀와 무수한 이웃들의 목숨 값은 얼마인가. 이들을 살리는 것은 왜 우리 사회의 가치가 아니란 말인가.
오는 10월17일은 UN이 선포한 ‘빈곤퇴치의 날’이다. 한국의 복지재정 지출비중은 GDP대비 9.3%로 OECD평균인 21.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절반의 노인이 빈곤에 허덕이고, 전체 가구 중 4분의 1이 2011년부터 3년 사이 빈곤선 미만의 소득을 경험했다. 가난은 점점 더 일반화되고, 만성적인 경험이 되고 있다. 그러나 복지는 거꾸로만 흘러가고 있다.
이것은 단지 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생명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박근혜 대통령과 보건복지부는 자신들이 다루는 숫자 속에 어떤 삶이 담겨있는지 제대로 보고 답하라. 이들도 ‘살려야 한다’면 정비방안은 전면 철회되어야 한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언론의 자유가 위협받는 시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시민의 힘에 기대어 올곧은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