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기고도 왜 뺏겼는지 모르는 사람들
[바심마당]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최근 각 초중고등학교의 교문에는 ‘더 많은 분들에게 교육급여를 지원해드립니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주민 센터 인근과 골목에는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라는 포스터가 붙고, 새로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다는 뉴스는 오랫동안 전파를 탔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생소한 이들도 새 제도가 시행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제도의 당사자인 수급권자와 사회복지 노동자들은 무엇이 바뀌었는지 여전히 생소하다는 반응이다.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은 6월부터 8월 현재까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빈곤층 복지제도와 수급자 권리에 관한 안내 수첩을 발행하고, 상담전화 운영과 거리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상담을 통해 만나는 수급자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바뀐다는 것인지 안내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부조 신청자들은 개인정보를 다 주고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그들은 본인의 가족과 부양의무자의 모든 금융정보를 공개한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근로계약서와 임대차계약서, 지출의 내용까지 공개한다. 1년 치 통장 기록을 제출하고 (현재는 과도하다는 이유로 금지되었으나) 통화기록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과연 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받는다면 언제 얼마를 받는지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개정된 기초생활보장법의 운영 방식은 까다롭다. 최저생계비로 단일화 되어있던 기존의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은 일곱 가지 급여별로 달라졌다. 담당 기관도 다양해졌다. 기존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업무를 맡았던 것과 달리 주거급여에 국토교통부, 교육급여에 교육부가 참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원래도 어려웠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더 어려워지는데 일조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급자들의 입장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많은 조사를 받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는 제도다. 수급신청을 하면 주민센터, 구청, 국토교통부에서 각각 면접조사를 한다.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근로능력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조사로 수급 선정과정을 과학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한다지만, 실제로는 이런 분업으로 인해 책임 소재만 불분명해졌다. 제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거나 가장 수급자를 가까이서 만나는 주민센터 전담공무원에게 아무런 권한이 부여되지 않는 것, 부당한 결과를 통보받은 수급자가 항의할 곳, 구제받을 곳을 찾을 수 없는 것 등이 그 예다.
제도변화가 연일 보건복지부의 홍보 자료와 뉴스에 실리는 동안 수급자에게는 ‘당신의 급여는 ㅇㅇㅇ해 질 것이다’는 단 한 줄의 사전 안내조차 없었다. 이는 수급권자를 제도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인식을 보여준다. 정확한 내용에 대해 안내하지 않는다는 것은 수급자가 제도를 이해하고 이에 대응할 방법을 빼앗는 것이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수급에서 탈락한 비수급빈곤층의 54.5%가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탈락했으며, 18.3%는 왜 탈락했는지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이유도 모른 채 ‘마지막 복지’를 빼앗겨도 침묵해야하는 수급권자의 처지는 우리나라 복지의 수준을 보여준다. 이해할 수도 없는 제도를 어떻게 이용하겠는가. 이해할 수 없어 신청도 못하는 제도가 어떻게 ‘권리’가 되겠는가.
이렇게 시행된 제도는 시행 첫 달 많은 시행착오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복지 통합전산망’ 시스템을 점검한다며 긴급지원 신청조차 수일간 전혀 처리하지 않는가 하면, 첫 지급된 급여의 명칭조차 통일하지 못해 큰 혼란이 벌어졌다. 77만 명 늘어난다던 수급자는 시행 첫 달 고작 1만 1천 명 늘어나는데 그쳤다. 44만 명의 수급 신청자 중 한 달이 넘는 집중 신청기간동안 조사가 끝난 사람은 2만 명에 불과하며 그들 중 절반에 달하는 9천 명은 탈락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 역시 낙인과 배제의 방식이다. 안다는 것은 참여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요란하게 선전했던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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