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복서’ 이시영 선수의 24일 경기를 두고 여전히 ‘편파판정’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언론의 ‘상업주의’가 논란을 키웠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다수의 언론들은 사실 확인 없이 의혹을 퍼 나르고, 섣부른 단정과 출처 없는 ‘받아쓰기’로 논란을 부채질했다.
이시영 선수가 제24회 대한아마튜어복싱연맹회장배 전국복싱대회 및 제11회 전국 여자복싱대회에서 승리한 24일 직후, 언론들은 일제히 이시영 선수의 ‘승리 드라마’에 주목했다.
“링에 올라가면 이시영(31·인천시청)은 더 이상 여배우가 아니다. 얼굴에 상처가 나거나 눈가에 멍이 드는 것보다 승리가 더 중요하다.”(중앙일보 25일자 28면)
“여배우에게 얼굴은 생명과 같다. 그렇지만 그는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얼굴이 일그러져도 포기하지 않았다. 취미로 시작한 복싱이었지만 그에게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25일자 25면)
그런데 같은 날, 동아일보는 <패자 김다솜 “KO로 못 이긴 제 잘못이죠”>라는 제목의 칼럼을 29면에 내보냈다. 이종석 기자는 “누가 봐도 김다솜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경기인데 심판은 이시영의 손을 들어줬습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이 기자는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을 지낸 홍수환 씨의 ‘관전평’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홍 씨는 “누가 봐도 (시영이가) 진 경기”라며 “자꾸 이러니까 복싱 팬 다 떨어지는 거야”라고 말했다. ‘편파판정’이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이 기자는 곧이어 “왜 이런 판정이 나왔을까요”라고 반문한 뒤, “복싱 흥행 때문입니다. 얼굴 예쁜 여배우가 복싱을 잘해서 국가대표까지 됐다는 영화 같은 얘기, 바닥에 떨어진 복싱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가 있을까요”라는 ‘주장’으로 넘어갔다.
이 기자는 ‘편파판정’을 주장했지만, 근거는 사실상 홍수환 씨의 말이 전부였다. ‘누가 봐도 상대방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는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의혹에 대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됐어야 하는 대목에서, ‘세계챔피언’이라는 하나의 ‘권위’를 빌려온 셈이다.
그는 ‘편파판정’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 뒤 곧바로 “복싱 흥행 때문”이라고 단정 지었다. ‘졌다고 생각하느냐’에 대해 김다솜 선수가 ‘KO로 못 이긴 제 잘못’이라고 답했다는 사실은 그의 ‘억울함’을 드러내 보일 수는 있지만, ‘편파판정’을 입증하는 근거일 수는 없다.
이 기자의 기사가 나온 이후, ‘편파판정’ 논란에도 불이 붙었다. 이날 오전, 이 기사를 리트윗 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타이틀 반납’을 주장하고 나섰고, 점심 즈음에는 “연맹에 정식으로 항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김다솜 선수의 소속 체육관
언론들은 최 관장의 발언을 앞 다투어 옮기는 한편, SNS에서의 반응을 묶어 ‘편파판정 논란’에 불을 지펴댔다. 발언 출처를 밝힌 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최 관장이 연맹에 정식으로 항의를 했다’거나 ‘아마추어 경기에서 (김다솜 선수처럼) 오픈블로우로 벌점 받는 경우는 없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언론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