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②] 10월 10일 제주 4.3평화공원, 강정마을
미디어오늘은 인권센터 건립 후원을 위해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천리길 일기’를 연재합니다. 인권센터는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활동하는 인권단체들을 위해 최소한의 활동 공간을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건립되는 국내 최초의 종합인권상담소로서, 박 이사는 오는 12월 준공을 목표로 10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천리길 일기’는 그가 9일부터 23일까지 전국을 돌면서 현장의 인권 실태를 기록한 것입니다.
2. 10월 10일 제주 4.3평화공원, 강정마을
제주에서부터 시작하길 참 잘했어.
아침에 조금 늦게 움직였다. 제주 4.3평화공원은 예전에 몇 번씩 들르고 싶었던 곳인데, 이번 천리길 첫 날 일정에 잡았다. 기념관의 전시관은 백비로 시작했다. 아직은 적을 수 없는 비석. 그 비석에 제대로 4.3의 진상을 적어서 세울 날이 언제일는지, 전시를 따라가는 내내 가슴은 더욱 무거워졌고, 끝내는 먹먹해졌다. 사진들과 글, 그리고 작가들의 사진과 그림과 조각과 설치물과 영상들이 4.3의 비극을 증언하며,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절로 한숨만 나왔다.
마지막 코스인 다랑쉬굴의 참혹한 모습 앞에서는 유골들이 널려져 있는 모습보다도 동굴로 피신해 목숨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사람들의 애달픈 모습이 그려져서 견디기 힘들었다. 이승만이, 조병옥이, 그리고 송요찬 등등이 미국의 하수인이 되어 민중들을 얼마나 학살했던가.
평화공원을 다녀오면서 천리길을 제주에서부터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결국 오늘의 인권문제의 연원은 이런 제주 4.3학살을 자행했던 이들이 지배했던 역사 속에 만들어진 구조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심지어 오늘 해군기지로 고통당하는 강정마을이 제주 4.3 때 중산간마을 소개하면서 오늘날의 마을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의 고통스러운 국가폭력과 차별의 답답한 인권구조는 제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지는 않으리라. 좋다. 아무리 해군기지가 필요해서 강정마을에 미군기지가 들어서야 한다면, 왜 그리 불법적이고,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고, 한 동네 공동체에서 형님 아우하면서 지내던 이웃들을 갈갈이 찢어 놓고 사업을 강행한단 말인가. 그 갈등과 분열로 인해 공동체는 파괴되고, 그 상처는 영영 치유되지 못하는 것인데 말이다. 너무 잔인하다. 자연에게도, 사람에게도 너무도 잔인한 세력들이 강정마을의 평화를 파괴한다.
구럼비 바위 현장과 마을을 분리해 놓은 펜스는 그냥 펜스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만큼이나 이곳의 생명을 죽이는 분리장벽이었다. 저 장벽을 넘어서 저항하다가 매일 연행되고 경찰서 유치장으로 간다. 이곳 강정마을 투쟁을 하다가 7명이 구속되어 있고, 훨씬 많은 이들이 벌금과 소환장울 받아놓고 있다. 공권력의 횡포요,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천주교회는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교회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하는데, 그에 비해서 사회운동의 노력은 많이 부족한 거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강정을 지키고, 제주를 지키고, 우리 모두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마음이 무겁다.
내일 아침엔 강정을 떠나 완도를 거쳐서 광주로 간다. 망월동 묘역을 들렀다가 인화학교 사람들을 만난다. 또 다른 아픈 사연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인권센터후원 홈페이지 http://hrfund.or.kr/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①] 10월 9일 제주도 강정마을
[박래군의 천리길 일기 ②] 10월 10일 제주 4.3평화공원, 강정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