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저널리즘 넘보는 블로거들, 수익모델 확보가 관건?

전문지식·차별화된 관점으로 틈새 공략… 폐쇄적 취재 환경 제약도 많아

2009-05-13     이정환 기자

1인 미디어 현실과 전망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브스가 지난 1월 뽑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는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허핑턴포스트의 창업자면서 칼럼니스트인 아리아나 허핑턴이 토머스 프리드먼이나 오프라 윈프리 같은 쟁쟁한 언론인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2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허핑턴포스트는 사실 언론이라기 보다는 2천여개의 개인 블로그가 들어찬 팀 블로그에 가깝다.

허핑턴포스트는 정치 전문 블로그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생활과 비즈니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환경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닐슨온라인에 따르면 허핑턴포스트는 방문자 수 기준으로 미국 뉴스 사이트 가운데 20위, AP통신이나 시사주간지 타임보다도 높다. 영국의 일간지 옵서버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로 허핑턴포스트를 꼽기도 했다. 바야흐로 블로그가 주류 언론의 영역을 넘보고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시대가 됐다.

허핑턴포스트의 블로거들은 주류 언론의 기자들과 달리 아마추어들이 대부분이지만 현장의 이면을 파고들면서 주류 언론이 놓치고 있는 팩트와 관점을 날카롭게 잡아낸다. 워싱턴의 정치인들이 아침마다 허핑톤포스트를 읽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발빠른 정보와 참신하고 다양한 관점의 논평, 거미줄처럼 연결된 수많은 링크,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능동적인 댓글과 쌍방향 의사소통이 허핑톤포스트의 차별화된 매력이다.

허핑턴포스트 뿐만이 아니다. 영향력 있는 언론인 25위 안에 5명이 블로거거나 블로그 관련 사업을 하는 언론인이었다. 8위에 오른 조슈아 미카 마셜이 편집장으로 있는 토킹포인트메모는 허핑턴포스트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로 꼽힌다. 16위의 매튜 이글레시아스나 18위의 글렌 그린왈드, 23위의 케빈 드럼 등도 블로거들이다. 일부 전직 기자들도 있지만 현재는 모두 전업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블로거가 있지만 전업 블로거는 거의 없고 이들처럼 주류 언론의 영향력을 넘어서는 수준까지는 가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블로거들은 수익모델의 부재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무엇보다도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폐쇄적인 취재 환경도 블로거 저널리즘의 장애 요인으로 거론된다. 애초에 동등한 조건이 아닌데다 보도자료를 받기도 힘들고 아예 현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미디어몽구라는 아이디를 쓰는 김정환씨는 “집회현장에서 블로거들의 취재를 거부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국회나 검찰, 정부 부처는 여전히 벽이 높다”고 말한다. 취재만 허용된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기꺼이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자신의 경쟁력을 “할 말을 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 언론의 기자들과 달리 언론사의 입장에 휘둘릴 일도 없고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구조적인 한계도 많다. 태터앤미디어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대선 후보들을 초청해 블로거들과 간담회를 추진했는데 기자 간담회는 가능하지만 일반 유권자들과 간담회는 선거법 위반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기자들은 간담회가 아니라도 언제라도 정치인을 만나서 인터뷰할 수 있지만 블로거들은 애초에 모임 자체가 금지됐다. 결국 태터앤미디어는 인터넷 언론사로 등록된 블로터닷넷과 공동 주최하는 형태로 편법을 써야 했다.
태터앤미디어는 지난 1월 야구 소식을 다루는 야구타임즈와 최근 해외 소식을 전하는 세계WA라는 블로그 전문 언론을 출범시킨데 이어 연예 전문 엔터팩토리와 자동차 전문 카홀릭 등의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성규 팀장은 “자동차 전문 블로거들은 신차 시승기를 쓰고 싶어하는데 자동차 회사들의 협조가 전혀 안 된다”면서 “그나마 정치, 경제, 시사 쪽에는 일부 기자 블로거들 말고는 현장취재를 할 수 있는 블로거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이 정도로 확대되기까지는 다음 블로거 뉴스의 기여가 컸다. 다음 블로거 뉴스 첫 페이지에 오르면 하루 방문자가 많게는 20만 명까지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개인 블로그로서는 포털의 힘이 아니면 기대하기 어려운 독자 기반이다. 지난해 다음 블로거 뉴스에서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포스트는 무릉도원이라는 블로그가 쓴 “현충일 오후에 불이 났습니다”라는 제목의 글. 무려 152만 명 이상이 이 글을 읽었다.

고준성 다음 오픈플랫폼 팀장은 “일부에서는 포털 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블로거들이 포털의 영향력을 잘 활용해서 독립적인 독자 기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 신방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기자들이 직장인에 가까운데 미국은 특정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스 저널리스트가 많기 때문에 애초에 환경이 다르다”면서 “우리나라는 기자 집단의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블로거는 물론이고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도 활동 반경이 매우 좁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기자 개인의 브랜드가 아니라 언론사 브랜드를 내세워 활동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블로거 김태우씨는 “특히 우리나라는 포털 블로그들이 많아서 독자적인 수익모델 확보가 어렵고 독자 확보 역시 포털에 의존하게 되는데 포털이 밀어주는 글은 이슈나 논쟁 중심이라 오히려 전문성 있는 콘텐츠들이 뒤로 묻히기 쉽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여러가지로 척박한 환경이지만 차별화된 질 높은 콘텐츠로 공신력과 권위를 구축하면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