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사장은 왜 "월 천만원 보장" 제안했나
[해설] 김웅 기자 측 변호인에 투자 제안…채용 거부해놓고 보도 직전 투자 제안? 앞뒤 맞지 않는 해명
손석희 JTBC 사장이 김웅 프리랜서 기자 측에 구체적 투자를 제안한 정황이 나왔다. 사인(私人)간 불거진 일을 두고 대응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JTBC는 김웅 기자가 과거 차량 접촉사고를 빌미로 손 사장에게 취업을 압박하는 등 공갈‧협박한 게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손 사장은 지난 19일 김 기자 측 양아무개 변호사에게 △용역 형태로 2년 계약 △월수(입) 천만원을 보장하는 방안 △세부 내용은 책임자 미팅을 거쳐 알려줌 △이에 따른 세부적 논의는 양측 대리인 간에 진행해 마무리 등이라고 적힌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기자는 지난 10일 마포구 상암동 한 식당에서 손 사장에게 폭행당했다면서 경찰에 신고했다. 이를 기사화한 보도가 나온 건 지난 24일이다. 손 사장이 김 기자 측 양 변호사에게 문자메시지를 전달한 시점은 지난 19일이다.
문자메시지 내용을 살펴보면 손 사장은 차량 접촉사고와 폭행 논란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김 기자 측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JTBC 회사 측과 논의해 구체적 투자를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김 기자는 과거 손 사장과 나눈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공개하고 자신이 손 사장으로부터 먼저 취업 요구를 받았다며 취업 청탁과 협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텔레그램 내용만으로는 어느 쪽이 먼저 취업 요구를 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손 사장이 김 기자로부터 차량 접촉사고를 빌미로 취업 청탁 요구를 받아 마지못해 취업 문제를 꺼내고 알아봐준 것처럼 답변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19일 손 사장이 양 변호사에게 "제가 내일 회사 측 안을 들어보고 전화드리겠다"면서 용역 형태의 2년 계약 등 구체적 투자를 제안한 것은 협박을 못 이겼더라도 회사 이익을 침해할 내용을 담고 있기에 문제가 크다. 사인(私人)끼리의 사건에 손 사장이 속한 JTBC가 대리인으로 나서 김 기자에게 금전적 이익을 안겨줄 내용으로 볼 수 있어서다.
손 사장 스스로 김 기자의 공갈 협박에 원칙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기에 손 사장 제안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손 사장은 구체적 투자를 제안하기 전 양 변호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저는 말씀드린대로 통상적 의미에서의 폭행을 행사한 적이 없고, 접촉사고는 사소한 것이었음에도 이를 악용한 김씨에 의해 지난 다섯 달 동안 취업을 목적으로 공갈 협박을 당해온 것"이라며 "물론 증거는 다 갖고 있다. 오늘 김씨가 폭행을 부정하는 저에게 그토록 과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저는 안다. 어차피 뺑소니로 몰아봤자 소용없는 상황에서 그것마저 부정되니 저러는 것이겠지요"라고 밝혔다.
폭행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손 사장의 제안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김 기자가 손 사장의 제안을 받았더라면 JTBC 측이 제공하는 용역을 맡아 일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물론 손 사장 자신의 형사사건이 외부에 알려졌을 경우 신뢰가 떨어지고 JTBC 보도에도 영향을 줄 상황을 원치 않았기에 자신이 받은 공갈 협박은 회사 차원의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이었다고 해명할 수 있다.
하지만 손 사장은 엄격히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김 기자가 손 사장이 공인이라는 점을 악용해 기획했더라도 손 사장은 이에 원칙적으로 사인(私人) 간 벌어진 일이라며 법적 대응을 하면 될 일이라는 얘기다.
폭행 사건 보도 당일인 지난 24일 JTBC가 내놓은 해명과도 엇갈린다. JTBC는 당시 "K씨(김 기자)는 그후 직접 찾아오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 정규직 특채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손 사장은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특채는 회사 규정에 따라야 한다'고 일관되게 이야기하자 최근에는 거액을 요구하기까지 했다"며 손 사장이 김 기자의 채용 요청을 원칙적으로 거부했다고 강조했다.
JTBC 해명에 비춰보면, 지난 19일 손 사장이 김 기자 측 변호인에게 구체적 투자를 제안한 사실은 앞뒤가 맞지 않다. 손 사장이 공갈‧협박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구체적 투자 제안을 하고 답을 기다린 것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무리할 필요가 있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JTBC 입장에서 보면 손 사장이 주도하는 뉴스룸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손 사장에 대한 외부 공격이 매체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조그마한 리스크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차원의 대응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다른 언론사 대표가 비슷한 일을 겪고 상대에게 비슷한 제안을 했다면 어떻게 될까.
김 기자가 접촉사고를 빌미로 손 사장에게 채용을 요구했고, 폭행 사건 역시 채용 요구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손으로 툭툭 건드린 것"이라는 손 사장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언론 보도 직전까지 김 기자에게 '달콤한 유혹'을 제안한 손 사장의 행동은 부적절하다. 손 사장의 석연치 않은 해명은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