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린 손으로 망치드는 사회를 살고 있다
[미디어 현장]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
이따금 그 족발이 생각났다. 붐비는 손님에 비해 특별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장충동 족발을 뜯고 있노라면, 이내 그곳이 눈에 밟혔다. "아직도 손님이 없을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골목길을 다시 찾았다. '젠트리피케이션' 취재를 위해서였다. 그 족발집은 그 자리 그대로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손님이 북적인다는 정도일까. 다행이라 생각했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믿음이 유효한 듯싶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이 골목길이 소위 '뜨는 동네'가 되면서 기존 상인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3000원 돼지국밥집은 일본 정종집으로 바뀌었고 생선구이집은 수제맥주집으로 바뀌었다. 해장라면을 팔던 분식집도 자취를 감췄다. 반면, 하늘에는 조명등이 주렁주렁 걸리게 됐고, 이름없는 골목길에는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여졌다.
족발집 주인도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2년여 전, 족발집 가게가 있는 건물주가 바뀌면서부터였다. 새 건물주는 기존 294만 원이던 월세를 1200여만 원까지 올렸다. 당시 임대료 감정월세가인 304만3000원보다도 4배나 높았다. 3000만 원이었던 보증금도 마찬가지였다. 4배에 가까운 1억 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법은 건물주 편이었다. 갈 데 없는 족발집 사장은 소송을 하며 버텼지만 소용없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청구권'을 5년까지만 보장한다. 즉, 계약기간이 5년을 넘기면 임대료를 50%든 100%든 건물주 마음대로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7년간 이곳에서 장사해온 족발집 사장이 법적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빈털터리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송은 패소했으나 장사를 계속 이어나갔다. 10년 넘게 분식집과 실내포장마차를 하며 저축한 돈에 대출금을 더해서 차린 족발집이었다. 여기서 쫓겨나면 답이 없었다.
건물주도 그런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셀 수 없는 강제집행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족발집 사장 손가락 4개가 부분절단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벼랑 끝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버텼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