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라도, 습관

[미디어 현장] 이상원 뉴스민 기자

2018-05-26     이상원 뉴스민 기자
지난달 24일 경북 구미에서 시작해 오늘(21일) 칠곡과 성주까지 경북 13개 도시 주민을 만나러 다녔다.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주된 요지는 하나였다. "경북은 왜 자유한국당을 지지할까?" 주민에게 직접 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었다.

현장에서 만나 이야기 나눈 주민들이 말하는 '이유'에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 키워드는 박정희다.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지만, 주민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정치인이 '박정희'다. 경북 주민 다수에게 박정희는 뛰어난 지도자로 인식돼 있었다.

경주에서 청과노점을 운영하는 40대 여성은 "박정희 대통령이 솔직히 정치는 잘했잖아요? 좀 더 했으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40대인 그가 박정희 시절을 경험한 건 유년시절 몇 년에 불과할 테지만, 그에게 박정희는 "좀 더 했으면"하는 정치인으로 남아있었다.

▲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산과 김해 시찰하는 모습. 사진=대통령기록관
경북 주민들이 박정희를 언급할 땐, 앞뒤에 먹고 사는 문제가 따라 붙었다. 경주 청과노점상도 먹고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 박정희를 언급했다. 배운 사람들에게, 경북 밖의 사람들에게 박정희는 독재자일지 모르지만, 평범한 경북 소시민들에게 박정희는 내 배 곯지 않게 해준 은인으로 기억됐다.

물론 일각에선 '세뇌'가 됐다거나 '못 배워서' 그렇다고 힐난한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박정희 이후 정치가 서민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 건 사실이다. 경제는 항상 어렵고, 빈부격차는 계속 벌어졌다. 영덕에서 만난 65살 남성은 "내 젊을 때 일자리 만든다, 일자리 만든다 하던 게 아직 만든다고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정치인들의 공허한 말 보다, 그 시절 따뜻했던 밥 한 공기로 박정희를 기억했다.

따뜻한 밥 한 공기로 박정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당위로 설득될 턱이 없다. 더구나 근 30년 동안 한국당을 제외한 정당은 경북을 동토(凍土)로 지칭하면서 버려뒀다. 경북 군위는 1995년 지방선거 실시 이후 현재까지 민주당 후보가 단 한 명도 출마한 적 없다. 다른 도시도 '0'이 아닐 뿐,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후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경북을 '동토'로 만들어둔 채 이들은 어디에 있었나? 두 번째 키워드가 여기에서 나온다. 전라도다.

코레일에서 오래 일하다가 은퇴한 60대 김천 주민은 "경상도는 옛날 한나라당 짝대기만 꽂아도 된다잖아. 그거 잘못된 거거든. 그런데 전라도를 보면 또 작대기만 꽂아도 시켜줘야겠고 그런 생각이 들어"라고 말했다. 경북 밖의 사람들은 작대기만 꽂아도 한국당만 지지하는 경북을 이상하다지만, 이들에겐 전라도가 이상하다. 정치권은 경상도와 전라도 대결구도를 부추기면서 자기 이익을 챙겼고, 챙긴다.

6·13 지방선거가 한 달도 채 안 남았지만, 결과는 예상 가능하다. 큰 이변이 없는 이상 경북은 이번에도 한국당을 높은 비율로 지지할거다. 습관적 지지다. 세 번째 키워드가 습관이다. 의성군 농민회장은 단호하게 "투표는 습관"이라고 말했다. 습관은 경북 사람들이 박정희 이후 박정희만큼 뛰어난 정치인을 만나지 못했고,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이 경북을 동토로 버려둔 채 전라도에 전념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 지난 5월16일 오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구 동구 반야월시장과 북구 칠곡시장을 잇따라 방문했다. 사진=자유한국당 홈페이지
▲ 이상원 뉴스민 기자
주민들은 스스로 '보수'라고 말하면서도 그 이유를 뚜렷하게 밝히지 못했다. "뿌리", "정서적으로", "옛날부터 내려오는" 따위의 표현은 습관의 중언부언처럼 들릴 뿐이다. 의성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자기 마음 못 정한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투표지 받아들고 어디할까 하다 보면, 찍던 델 찍는거지"라고 말했다. 그는 "도드라진 사람 없으면 찍던 대로 찍겠다?"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했고, "이번에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있냐"는 물음에 "뭐 그렇게"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그럼 또 찍던 대로 찍겠다?"라는 말에 "하하하" 어색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