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는 CJ·롯데·중앙일보에 장악됐다
[삼성 연재기고 (8)] 상영 시장의 독과점 구조 심각 … 제작자는 파산해도 3개 재벌사만 흥행
한국 경제의 최대 권력이 삼성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 미디어의 최대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저자는 이건희로 대표되는 삼성 오너 일가라고 단언한다. 삼성은 한국 최대의 미디어 집단을 소유하고 있다. 삼성은 광고, 협찬 등으로 한국 언론에 가장 많은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미디어 통제력은 이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나온다. 삼성의 미디어 권력은 근본적으로 미디어를 둘러싼 제도 장악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일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삼성의 성장史, 삼성의 미디어 진출 역사, 이병철의 제국 통치 방식, 삼성家와 한국 파워 엘리트, 이건희의 범 삼성家 확장, 삼성 미디어 제국,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한국 미디어 (신문, 유료방송, 광고, 영화) 시장 구조와 삼성의 미디어 검열 영향력 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삼성 권력은 자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국 미디어의 구조 장악에서 나온다.
한국 사회에 대한 삼성의 지배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삼성의 경제력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배력의 뿌리가 되는 미디어 통제력을 정밀 분석할 때 비로소 그 실체가 분명해진다.
이에 저자는 미디어오늘·자유언론실천재단과 함께 한국 미디어 통제 체제와 나아가 한국 사회 지배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삼성의 한국 미디어 통제에 대한 심층 연구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 편집자주
목차는 다음과 같다.
(01) 왜 삼성미디어 정치경제학인가
(02) 삼성 제국과 내부 통제 라인
(03) 이병철과 그의 자녀들 그리고 한국 파워 엘리트
(04) 한국 매스컴 속의 삼성 미디어史
(05) 금융 자유화와 이건희의 범 삼성계
(06) 누가 한국 신문 시장을 지배하는가
(07) 누가 한국 광고 시장을 통제하는가
(08) 누가 한국 영화 시장을 지배하는가
(09) 누가 한국 유료 방송 시장을 통제하는가
(10) 삼성 그룹의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11) CJ 그룹의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12) 중앙일보 그룹의 소유 구조와 이사회
(13)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과 2005년 X-파일
(14) 범 삼성가의 미디어 검열 방식
(15) 누가 미디어 자유화의 최대 수혜자인가
(16) 삼성 없는 한국 미디어를 위하여
영화는 어둠을 배경으로 빛과 소리로 내러티브(서사 구조)를 만든다. 그 서사 구조는 인간의 욕망을 대사와 음향 그리고 이미지로 표현한다. 완성된 영화가 대중들을 만나기 위해 영화 예술인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그 사회가 축적한 과학기술이 결합해야 한다. 영화인의 노력과 과학의 결합도 자본이 없으면 제작도 유통도 상영도 할 수도 없다. 영화인의 노력도 자본을 만나야만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다. 자금력이 낮은 기업들은 쉽게 영화 시장에 들어올 수 있지만 오래 버틸 순 없다. 고위험-고수익 산업 특징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산업은 자본 논리가 다른 미디어 산업에 비해 더 강하게 작용한다.
한국 영화가 대내외적으로 대자본의 논리를 경험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다. 미국은 한·미간 무역 적자 해소의 일환으로 한국 영화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비디오카세트레코더(VCR)를 제조 판매하는 재벌들은 수요관리 차원에서 영상 제작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는 한국 영화가 더 이상 중소기업 보호 업종에 머물 수 없음을 의미했다. 사실 박정희 독재 정권은 지난 1962년 영화법 제정을 통해 영화 제작과 수입 그리고 수출 사업을 연계해 운영했다. 일정 비율의 한국 영화를 제작해야만 외화를 수입 방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 배급과 상영에 대해선 개입하지 않았다. 다만 1966년부터 영화상영일 365일중 5분의 2 이상을 반드시 국산 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는 스크린 쿼터 제도를 도입해 지방 행정 기관들이 관할 내 극장주들의 상영 일자를 관리·감독하도록 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영화 사업 독점권을 보장해 주면서 스크린 쿼터제를 통해 국산 영화가 지속적으로 제작 유통되도록 하는 보호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국산 영화 보호 정책들은 시장 개방화 시대에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미국영화협회(MPPA)는 미국 통상대표단과 함께 움직인다. 미국 정부가 세계 각국에 통상 압력을 행사 할 때 항상 요구하는 사항이 있다. 해당 국가의 영화 시장 개방이다. 미국 상품과 헐리우드 영화는 세계 무역 협상에서 세트 메뉴란 이야기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워너브라더스 등 헐리우드 영화 배급사들은 미국 영화를 한국에서 직접 배급할 것을 요구하면서 한국의 스크린 쿼터 제도 축소 또는 폐지를 요구했다. 미국 수출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전두환 정권은 1985년 5차 영화법 개정을 통해 영화 제작업과 수입업을 분리했다. 이로 인해 1988년부터 헐리우드 배급사들은 한국 내에 수입업자 등록만 하면 헐리우드 영화를 배급 할 수 있게 됐다. 전두환 정권은 또한 스크린 쿼터 제도에 대한 의무적 규정을 다소 완화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이를 축소하진 않았다. 영화시장 개방화 조치는 헐리우드 영화사들에게 1990년대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시장 개방화 조치는 또한 재벌들에게도 기회였다. 삼성, 대우, LG 등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재벌 그룹들은 전자 제품 수요 관리 차원에서 비디오 제작 시장에 진출했다. 가전 제품을 팔기 위해 영화 제작 시장에 뛰어 든 것이다. '표1'에서 보듯, 대우와 선경(SK) 그룹은 1980년대 중반부터 영화를 제작하고 외화를 수입 배급했다. 이들 재벌 상위집단들은 또한 자체 제작한 비디오를 유통시킬 수 있는 유통 대행업도 진행했다. 이병철의 삼성 그룹에서 분사한 삼성, 새한, 제일제당도 모두 1990년대 영상 제작 및 유통 그리고 상영 사업에 진출해 있었다. 삼성은 드림박스 등의 비디오 프로그램 공급업체를 통해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영화들을 유통시켰다. 또한 명보극장과 서울극장 등 극장 운영 사업 분야에도 진출했다. 제일제당은 호주의 빌리지사와 합작해 CGV를 설립, 우리나라 최초로 멀티플렉스를 세웠다(영화진흥위원회, 2001).
재벌이 충무로 영화 시장에 뛰어든 것은 정부의 영상 진흥 정책과도 연관돼 있다. 1993년 김영삼 정부는'신경제 5개년계획'을 수립해 영상 진흥 정책을 시작했다. 영화인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업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했다. 촬영 장소 확충을 위해 경기도 남양주시에 서울영화종합촬영소를 건립하는 등 영상 인프라 작업도 진행했다. 김대중 정부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해 국가 예산의 1%를 문화 산업에 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영상 기업을 벤처 기업으로 지정해 국가와 금융기관의 지원을 제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정부의 영화 진흥 정책과 재벌의 영화 산업 참여는 '표2'에서 보듯, 한국 영화 기업의 외형적 성장을 가져왔다. 1999년 367개였던 제작사는 2011년 2664개로, 배급사는 같은 기간 155개에서 641개로 늘어났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됐다.
영화시장에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면서 한국 영화 제작비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표3'에서 보듯, 1996년 10억 원이던 총 제작비는 20년이 지난 2016년에는 24억 원까지 증가했다. 제작비의 증가와 함께 눈에 띄는 지출은 마케팅 비용의 증가이다. 이는 한국 영화가 작품으로 승부를 보기보단 광고를 통한 마케팅을 통해 관객을 모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충무로 주자들의 손바꿈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가 금융 위기를 불러온 상위 재벌 그룹인 삼성, LG, 현대, SK 등에게 제조업종에 집중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이들 재벌 주자들은 영화 시장에서 사라졌다. 재벌 상위 그룹이 떠난 자리를 CJ, 롯데와 오리온 등 서비스 전문 재벌 그룹들이 파고들었다. 이들은 제작에 집중하는 금융 투자사들과 달리 영화 배급과 상영 시장에도 함께 진출하기 시작했다. CJ그룹은 전문 영화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또한 호주의 빌리지 시네마사와 함께 CGV 멀티플렉스 영화 상영관을 설립해 1998년 서울 강변역에 우리나라 최초로 멀티플렉스 전용관을 개관했다. 후발주자인 오리온과 롯데그룹도 CJ처럼 영화 배급과 상영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소형 극장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명보극장과 스카라 극장 등 중소형 영화 상영관들이 CJ와 롯데 등에 경영권을 위탁하면서 재벌의 하청 영화관이 되어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영화 배급업자들 때문이다. 영화 유통업을 담당하고 있는 배급업자들은 이들 중소형 극장주들에게 동시에 4개 이상의 스크린 확보를 요구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신규 영화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고했다. 그러자 독립 극장주들은 생존을 위해 극장 운영권을 멀티플렉스를 장악하고 있는 CJ와 롯데 등 재벌들에게 넘겨야했다. 중소기업의 몰락이자 재벌 독과점이 시작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 영화 제작은 과당 경쟁 체제이고 영화 배급은 과점 구조이며 상영관은 독점 구조이다. 이로 인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도 영화를 만든 회사가 빚더미에 앉는 기이한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