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자들'에게는 '쥐구멍'이 없다
[김종철 칼럼] MBC·KBS 언론인들의 결사투쟁이 '흑역사'를 끝낼 것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자 '공범자들'을 추적하는 배우이며 해설자이기도 한 최승호(MBC에서 해직된 PD로 현재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앵커) 감독이 어떤 모임에서 MBC의 '공범자들'인 경영진을 기습 인터뷰하려다 거부당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이렇게 독백을 한다. "모두 잘들 살고 있군."
정연주 해임은 '이명박 식 언론 장악'의 서막이었다. 그는 최측근인 방통위원장 최시중을 앞세워 공영방송 KBS와 YTN에 '청와대 낙하산 사장들'을 내려보낸다. 2010년 2월에는 '공영방송 최후의 보루'이던 엄기영 MBC 사장을 압박과 회유를 통해 쫓아내고 '친한나라당 성향'의 김재철을 사장으로 임명하라고 방송문화진흥회(MBC를 관리·감독하는 이사회)에 '지시'한다. 공영방송을 '사유화'하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공작은 임기 5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영화 '공범자들'은 그 흑역사를 생생히 고발하고 있다.
'공범자들'의 타이틀백에는 영어 제목이 'Criminal Conspiracy'라고 나와 있다. '범죄 음모'라는 뜻이다. 주요 '공범자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최승호 감독은 지난 9일 '공범자들' 언론시사회가 열린 뒤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범자들'은 지난 9년 동안 공영방송 KBS와 MBC가 방송을 장악하려는 자들에 의해 어떻게 점령됐는지, 어떤 싸움과 희생이 있었는지 기록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지난해 10월 영화 '자백'을 개봉할 때만 해도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때 사회의 많은 부분이 변할 텐데 방송 장악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KBS·MBC가 동토의 왕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영화라는 수단으로 호소하기로 했다."'공범자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 째인 8월17일에 개봉되었다. 새 정부가 '촛불혁명의 소산'이라고 자임하듯이, '공범자들'도 연인원 1700만여 명이 일구어낸 '명예 시민혁명'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으리라. 박근혜가 청와대를 차지하고 있는 한 어떤 극장도 이런 영화를 스크린에 올려 줄 리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시간45분에 걸쳐 '공범자들'을 보는 동안 나는 자주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한 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채 웃음을 터뜨리거나 분노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승호 감독이 영화 말미에서, 어떤 행사에 참석하고 나오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 언론을 망친 파괴자라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그는 멍청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최 감독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 전 대통령이 내려보낸 김재철 사장이 공영방송 MBC를 망쳤다고 최 감독가 꼬집어 말하자 그는 차에 오르면서 최 감독에게 "지금 뭐 하나요"라고 엉뚱한 반문을 했다. 이 장면에서 관중은 폭소를 터뜨렸다. 고대영·김장겸·백종문 등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최승호 감독에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할 때는 객석에서 야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공범자들'을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최승호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 앞에서, 양심과 이성과 상식을 가진 언론사 경영진이라면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찾을 텐데 그들은 부정하고 부패한 정권에 부역한 사실을 반성하고 참회하기는커녕 오히려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혁명을 폄하했다. 그러면서 최근 '문재인 정부의 언론 장악 음모'를 비난하는 자유한국당을 든든한 '우군'으로 삼고 있음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창피해서 숨을 쥐구멍을 찾지는 않겠지만, 최근 MBC와 KBS에서 기자·PD·아나운서들이 격렬하게 벌이고 있는 '부역자 퇴출' 투쟁에 밀려서 숨을 수 있는 쥐구멍을 발견할 수도 없을 것이다. 특히 '공범자들의 끝판왕'인 이명박이 그의 별명에 걸맞는 '구멍'을 어디에서 구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전국언론노조를 비롯해 240여개 언론·시민단체가 구성한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성명서('공영방송 정상화는 적폐인사 청산이 최우선이다 / 이인호, 조우석, 고영주, 김광동의 즉각 해임을 촉구한다')에는 영화 '공범자들'이 다루지 못한 '주요 공범자들'의 행적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공범자들'을 보고 난 뒤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명박 못지않게 언론 장악의 '주범'인 박근혜의 행적을 본격적으로 파헤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감옥에 들어간 뒤에 제작을 했기 때문이겠지만. 언젠가 '공범자들' 후속편을 만들 수 있다면 주권자들의 심판을 위한 역사적 기록을 위해서 '박근혜 일파'의 공영방송 사유화와 자유언론 탄압도 반드시 다루어 주기 바란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게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