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 병원 치료도 차별받는다"

[인터뷰]권미란, 정욜 HIV인권단체 활동가…"의료 사각지대 피해 심각"

2014-12-24     장슬기 기자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감염인들은 병에 걸렸다는 이유 하나로 사회에서 배제 당한다. 직장과 학교는 물론 환자들을 치료할 의무가 있는 의료기관에서조차 HIV감염인들은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한 번의 성관계로 HIV감염 가능성은 0.1~1% 정도다. 사람 사이의 가장 가까운 접촉을 통해서도 감염될 확률이 낮지만 이 질병에 걸리는 순간 HIV감염인들은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며 자신의 병을 숨기기 시작한다. 

전 세계적으로 HIV신규감염인의 숫자는 감소하는 추세다. 심지어 HIV의 진원지라고 알려진 아프리카 대륙에서조차 신규감염인의 숫자는 감소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센터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연간 HIV발생률은 33개국에서 감소했는데 그 중 22개국이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이다. 신규HIV감염인 수도 2001년 340만명에서 2012년 230만명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한국의 HIV감염인 수는 2013년 기준 8662명으로 지난해에만 신규 감염자가 1114명이나 늘었다. 우리나라의 HIV신규감염자 비중은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이 맘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은 없다. HIV감염인의 인권실태와 요구사항, 관계당국의 대응 등을 알아보기 위해 미디어오늘은 권미란 HIV/AIDS인권연대나누리플러스 활동가와 정욜 KNP플러스(Korean Network of Plwha+)간사를 만났다.

현재 HIV감염인들의 증후군인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면역결핍증)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치료받을 곳을 찾는 일이다. 현재 국내에 국립에이즈요양병원은 없다. 대신 국가는 지방자치단체에 공공요양병원 70여개를 설립해줬고,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게 하는 방식으로 요양병원을 1200여 곳 가까이 늘려왔다. 

권 활동가는 “2002년에 하나도 없던 요양병원이 현재는 1300여개나 되지만 에이즈요양병원은 하나도 없다”며 “국가가 직접 요양병원을 운영해 에이즈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활동가는 “공공·민간 가릴 것 없이 위탁 요양병원에서는 AIDS환자들이 오면 수익이 떨어지고 위험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입원을 거부한다”며 “AIDS환자들이 차별없이 갈 수 있는 국립요양병원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전체 1300여개의 요양병원 중 에이즈요양병원은 단 한 곳이 있었다. 지난 2010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중증/정신질환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위탁한 경기도 수동연세요양병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로 문제가 돼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12월 실태조사를 마친 뒤 지난 1월 수동연세요양병원과 위탁계약을 해지했다. 

지난해 8월, 에이즈 환자 김모씨는 이 병원에 입원한지 보름도 되지 않아 사망했다. 당시 간병인에 따르면 이 병원에 옮기기 전까지만 해도 환자 김씨는 편의점에 다녀올 정도로 몸 상태가 괜찮았지만 병원에 와서 갑자기 사망했다. 이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받지 못했다는 증언은 이어졌다. 권 활동가는 “병원입장에서는 병상만 채워지면 국가에서 일정 금액의 진료비가 나오니까 치료를 하든 안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에이즈 위탁계약이 해지되자 환자들은 치료받을 곳을 쉽게 찾지 못하고 언제 쫓겨날지 모른 채 국립병원 등을 떠돌고 있다. (관련 방송 : KBS 추적60분 ‘얼굴없는 사람들-AIDS 환자의 눈물’ 지난 13일 방송분

지난 4일 HIV감염인 등 10여명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담당자와 면담을 가졌다. 면담에 참여했던 정 간사는 “정부는 ‘검토해보겠다’는 의견만 내놨다”고 비판했다. 환자들의 요구사항은 △국립요양병원 설립·상담간호사 확대 △장기요양보험 인정 요양시설 확보 등이다. 

정 간사는 “정부는 내년도에 발표할 ‘국가에이즈종합대책에 환자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하겠다’고만 했다”며 “정부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HIV감염인들과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에 정부관계자를 만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에이즈환자들은 에이즈와 관련 없는 사소한 부상이나 병에도 쉽게 치료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에이즈환자가 배가 아프거나 다리를 다쳐도 내과나 정형외과에서 환자를 거부해 협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권 활동가는 “다른 의료 분야에 대한 에이즈환자의 협진실태를 조사하고 협진이 어려운 병원은 시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실제 진료거부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것 같을 때 신고할 수 있는 채널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HIV환자들은 치료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도 받는다. HIV감염인들은 법적으로 진료 및 공적인 업무와 관련해 감염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권 활동가는 “우리나라에서 에이즈 확진을 받으면 보건소를 통해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하도록 돼있는데 보건소에서 이 사실을 집에 연락하거나 의료인들끼리 떠들다 비밀이 누설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정 간사는 “지난달에 정부가 규제완화라는 이유만으로 비밀누설금지조항(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7조)을 삭제하려고 입법예고를 한 적이 있다”며 “환자들의 반발로 지금은 삭제하려는 시도를 중단했지만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7조에는 감염인 관련 사무의 종사자가 감염인에 대해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감염인 본인의 동의없이 누설하지 못하게 했다.

지난 19일 에이즈인권단체 활동가들에게 작은 결실이 있었다. 이날 보건복지부에서 요양병원 환자군 분류기준에 HIV을 추가해 에이즈환자들의 병원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다. 정 간사는 “에이즈환자에 대한 편견이 강한 상황에서 요양병원 진료거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지는 지켜봐야하지만 1년 넘게 요양병원 문제를 의제화해서 만든 점진적 변화”라며 환영했다.

정 간사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병원에서 거부하지 말아달라는 싸움을 진행중”이라며 “인권이 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말하려면 몇 번의 벽을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 간사는 “HIV감염인들이 스스로 숨기며 아파도 동네병원을 가지 못하는 등 일상 안에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내성화돼 있는 상황이 슬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