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청률 20%대를 돌파하며 평일 미니시리즈 중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잘 알려진 KBS 2TV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그것이다.

<공주의 남자>는 방영 전부터 조선시대 초기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이라는 실제 역사에, 멜로와 복수, 가문 간 갈등 다양한 상상력을 가미한 ‘퓨전사극’으로, 2010년 최고의 화제작 <추노>의 뒤를 이을 작품으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시청률 10% 안팎에서 시동을 건 이 드라마는, 수양(김영철 분)과 김종서(이순재 분)의 대립이 본격화되고 결국 김종서가 죽음을 맞는 시점(9회)부터 시쳇말로 시청률이 ‘빵’ 터지기 시작했다. 15%를 훌쩍 넘어 20% 가까이 근접, 약간 정체를 보이다 현재의 23%~24%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회가 더 지나 20회(9월 22일)를 경과한 지금, 시청률이 불과 3~4% 포인트 상승했다는 것은 초반 기세에 비췄을 때 약간 실망스러운 결과일 수밖에 없다. 특히 드라마의 기획 취지이자 중심 스토리라 할 수 있는, 김종서의 아들 승유(박시후 분)의 복수극과 세령(수양의 딸, 문채원 분)과의 사랑이 연일 불을 뿜고 있는데도 그렇다는 건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초반에 비해 밀도가 떨어진 스토리와 허술한 설정이 눈에 띈다. 공교롭게도 ‘계유정난’이라는 실제 역사가 중심이 된 이야기가 끝나고, 작가와 제작진의 상상력이 본격화되는 시점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복수극, 러브스토리는 정사(正史)에 전혀 기록이 없는 것이며, 다만 야사에 김종서의 손자와 세령이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가 전할 뿐이다. 김종서의 두 아들은 계유정난 때 모두 수양의 손에 죽었다.

   
지난 14회에서 수양의 딸 세령이 사랑하는 승유를 대신해 활을 맞는 장면. 먼곳에 숨어 있던 신면은 승유가 수양에 활을 쏘자 곧바로 승유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돌이켜보면, 실제 역사에선 죽은 이 김종서의 아들이 드라마 속에서 ‘살아나는’ 과정부터 뭔가 어설펐다. 12회(8월 25일)에서 승유는 강화 유배지로 가던 뱃속에서 만난 조석주(김뢰하 분)라는 사람의 기지로 겨우겨우 목숨을 구한다. 승유가 죽은 것처럼 가짜로 꾸며서, 무인도까지 쫓아온 수양의 수하들을 따돌린 것인데 왜 이들이 승유의 죽음을 치밀하게 확인하지 않았는지, 압도적 수적 우위에도 조석주를 멀쩡히 살려 보냈는지 쉬이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복수극의 시작을 알린 14회(9월 1일)는 더욱 어이가 없다. 세령을 납치한 승유는 수양대군에 전갈을 보내 홀로 한 장소로 나오라고 한다. 물론 아버지를 죽인 수양을 죽이기 위한 것이다. 수양은 뭔가 대책이 있다는 듯, 딸을 구하기 위해 비장하게 약속 장소로 나간다. 군사를 대동하긴 했지만 원거리에서 활을 겨누고 있을 뿐이다.

드디어 마주한 승유와 수양. 세령 외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승유는 멀지 않은 거리에서 수양의 가슴에 활을 쏜다. 그러나 수양은 옷 속에 갑옷을 두껍게 입은 상태였다. 휘청했지만 생명엔 전혀 지장이 없는 수양.

하지만 이걸 수양의 놀라운 기지 따위로 본 시청자가 있었을까? 만일 승유가 수양의 머리를 겨누었다면, 활뿐만이 아니라 칼을 갖고 있었다면…. 왕이 되기 위해 반드시 살아야 하는 수양이나 무참히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와신상담한 승유나 참 ‘덜 떨어진’ 선택을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면의 행보는 종종 이해가 안될 때가 있다. 극 흐름상 승유의 은신처가 마포나루 빙옥관임을 일찌감치 알아챘어야 했다.
 
이들은 그러나 약과다. <공주의 남자>에서 가장 난해한 행보를 보이는 인물은 신숙주(이효정 분)의 아들이자 한성부 판관인 신면(송종호 분)이다. 승유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으나 아버지와 가문을 위해 수양 편에 선 신면은 지난 18회(9월 15일) 마지막 장면에서 그간 모습을 감추고 복수극을 펼치던 승유를 향해 “김승유, 네놈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분명한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황상 추측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렇게 일찌감치 알아챘다면 신면은 곧바로 승유의 은신처인 마포나루 ‘빙옥관’을 들이쳤어야 했다. 이곳에서 기거하는 조석주가 강화 유배지로 가는 배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음을 이미 직접 확인(17회)한 바 있기 때문이다. 신면은 또 자신이 거처를 마련해준 승유의 가족들, 즉 형수와 조카가 갑자기 사라졌는데도(17회) 이들의 행방을 찾거나 승유와의 연관성을 캐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 가족은 승유의 권유로 빙옥관에 머물고 있다. 자신의 혼례 날 납치된 신부 세령의 옷이 마포나루에서 발견됐음(15회)을 알고 있는 신면은, 진정 복면을 쓴 납치범을 잡고 싶었다면 당장 이 지역의 감시·정찰을 강화해야 옳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는 듯, 승유와 형수, 조카는 버젓이 빙옥관과 마포나루 일대를 활보하고 다닌다.

승유의 ‘간 큰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양을 도모하려는 이개, 박팽년, 성삼문 등 반수양세력의 비밀 회동에 버젓이 얼굴을 드러내고 참석(17회)한다. 신면 등은 한명회의 명을 받아 이들을 이미 감시하고 있었는데도 거사 전까지 승유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지난주 방영분은 이보다 더 기막히다. 승유는 처형장으로 향하는 사육신의 행렬에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스승인 이개와 대화까지 나누고(19회), 20회에서도 부마 정종과 경혜공주의 유배 행렬에 태연히 함께한다. 20회에서는 아예 갓도 눌러 쓰지 않았다.

물론 근처에는 군졸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나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승유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18회)한 신면은 승유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말로만’ 그런 모양이다. 아버지 김종서가 죽기 전까지 성균관 박사로서 궁궐을 드나들었던 승유의 얼굴을 알아채는 군관이나 군졸도 없는 것 같다.

현재 종영(24회)까지 단 4회를 남겨둔 가운데, 승유·세령의 운명과 복수극의 결론 등 최종 결말을 놓고 많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역사에서는 1467년(세조 13년) 일어난 함경도 호족 ‘이시애의 난’ 때 신면이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또한 드라마에서 현실로 나타날지, 그리고 이때 승유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도 궁금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의 큰 줄기가 어떻게 되느냐에 앞서, 납득하기 어려운 허점이 요소요소에서 발견된다면 그만큼 시청자들의 공감 정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와 제작진의 상상력이 더욱 분발을 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