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쪽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보수 쪽의 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계기로 ‘시민사회(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 움직임을 집중 조명하는 언론 보도가 늘고 있다.

경향은 22일자 신문에서 <감시·수혈 집단에서 정치세력화…직접 심판대에>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통해 두 진영 행보의 의미를 분석했다. 조선도 역시 같은 날 신문에서 보수 시민단체들의 정치세력화 가능성과 파장, 전망 등을 심층적으로 따졌다. 세계는 지난 9월초 일찌감치 진보 쪽 시민단체들의 박원순 이사 공개지지 여부와 관련한 기사 <시민단체 ‘정치세력화’ 시동거나>를 내보낸 바 있다.

한나라당·민주당 등 그간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해왔던 기존 거대 정치세력과 구분되는 흐름일 뿐만 아니라, 높은 지지율까지 기록하며 정치판 자체를 바꿀 변수로 등장한 이들의 움직임에 언론이 주목하는 건 당연한 일로 보인다.

   
조선일보 9월 22일자 5면.
 
하지만 문득 드는 의문은 그것이다. 현재의 흐름을 ‘시민사회(시민단체) 정치세력화’ 관점에서 해석하는 게 과연 타당할까? 설령 타당하더라도 이것을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을까? 언론들은 박원순·이석연 두 주자를 ‘시민후보’로 부르길 주저 않고 있는데, 과연 시민후보 또는 시민사회, 시민단체의 기준은 무엇이고(무엇이어야 하고)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보통 언론들이 쓰는 ‘시민사회’란 용어는 복수의 시민단체, 시민운동진영을 뜻할 때가 많다. 사회과학에서는 일반적으로 국가나 시장, 정치권력 또는 정치권과 구분되는 영역 전반을 가리키지만 최근 정치세력화 관련 보도는 이런 의미와 거리가 멀다. 액면 그대로라면 권력 감시·견제나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하는 시민단체들뿐 아니라, 다양한 직능단체·종교단체·노동조합·자선단체 등도 정치권에 뛰어들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 용어 사용이 어떻든 간에, ‘시민’이라는 수식이 가능하기 위한 대전제는 하나로 보인다. 시민운동의 본령이 그렇듯이 정치권력이나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되고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NGO 대학원장은 이와 관련 지난 19일 중앙에 기고한 시론에서 “운동단체(협의의 시민운동단체)는 정치단체가 아니며 그런 점에서 운동은 정치나 행정으로부터 언제나 스스로를 존재론적으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정치와 행정을 가혹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시민단체 정치세력화 관련 보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단 후보 개인들부터 보자. 박원순 이사는 그런 흔적이 없지만,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지난 2008년 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차관급인 법제처장으로 임명돼 2010년 8월까지 임기를 수행한 인물이다. 물론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상임대표)을 이끌며 이명박 후보를 지지·지원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사였다.

특정 정치세력 또는 특정 정치인 지지·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나아가 그 세력의 핵심 공직 또는 당직을 맡았던 인물이나 세력에 과연 ‘시민’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게 옳을까? 이석연 전 처장뿐이 아니다. 박세일 선진통일연합 상임의장, 김진홍 목사, 이재교 변호사 등 지난 21일 보수 성향 단체들의 ‘시민후보 추대식’에 이름을 올린 인사 가운데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직·간접적으로 힘을 실었거나, 한나라당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 적지 않다.

물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민운동에 너무 엄격한 ‘순수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누구든, 어떤 이력을 갖고 있든 ‘시민후보’, ‘시민사회 지지후보’라고 불리면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얻는 게 우리 현실이다. 당사자 스스로 쓰겠다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언론이라면 무임승차만큼은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권력의 견제·감시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던 사람을 시민운동가로 부르기 어려운 이유와 마찬가지다.

   
경향신문 9월 22일자 4면.
 
그렇다면 박원순 이사의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시민단체) 정치세력화로 해석하는 시각은 어떨까? 이건 또 다른 측면에서, 특히 ‘팩트’(사실) 측면에서 무리가 있는 해석으로 보인다.

먼저 박 이사는 시민운동의 ‘상징’ 같은 존재지만 시민단체나 시민운동진영의 조직적 지지를 받아 출마한 것이 아니다. 박 이사 출마를 계기로 참여연대·경실련·환경운동연합 같은 주요 시민단체가 새 정당을 창당하는 등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결집해 기존 정치권에 뛰어들려고 한다는 조짐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 이사에 대한 공개 지지 선언 여부도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일부 단체 측은 이미 “그런 일은 없다”고 못박았다.

만일 박원순 이사가 끝까지 독자적으로 완주해 서울시장에 당선되거나 해서 주요 시민운동가 등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당 또는 정치단체를 꾸린다면 앞서 표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 역시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박 이사는 오히려 민주당 입당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발언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경향 22일자 기획기사 중 “이제 시민운동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섰다. 정당정치와 거리를 두며 권력에 대한 감시견 역할을 해오다 직접 제도권 정당과 경쟁하고 유권자로부터 심판받는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은 아무리 봐도 과한 점이 많다. 정말 시민운동 자체가 ‘심판 대상’이 됐다고 볼 수 있을까? 이석연 전 처장을 중심으로 한 보수단체의 그간 행보를 과연 ‘정치와 거리를 두며 감시견 역할’을 해온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새로운 시험대’란 표현도 적절한지 의문이다. 정치세력화까지는 아니지만 “감시견 역할을 해오다 직접 제도권 정당과 경쟁”한 사례는 과거 낙천·낙선운동, 당선운동, 이명박 대통령 후보 사퇴촉구 운동 등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진보·개혁 진영의 통합과 민주정부 수립 등을 목표로 하는 시민단체 또는 시민운동가 개개인의 활동이 활발하다. ‘내가 꿈꾸는 나라’, ‘혁신과 통합’, ‘진보의 합창’ 같은 단체가 대표적이다.

만일 이들이 민주당 등 기성정당과 경쟁을 선언하고 독자정당 창당으로 나아간다면 ‘정치세력화’란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의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고, 만일 한다고 해도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이들 단체 주요 인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시민운동가들뿐 아니라 기성 정치인, 직능단체 관계자, 친노 세력 등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해찬 전 참여정부 국무총리가 상임대표로 있는 조직(혁신과 통합)의 새 정당 창당을 ‘시민사회 정치세력화’로 부르는 게 옳은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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