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네이버캐스트’ 등에 연재를 하고 있는 황교익은 한국 음식비평계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대부분 ‘맛있는 곳(음식점)’ 또는 ‘맛있는 조리법’만 찾기 바쁠 때 그는 ‘맛있는 이유’  ‘맛의 근원’을 밝히는 데 온힘을 쏟았다.

황교익은 음식재료 하나하나가 어디서 왔는지부터, 어느 때 가장 맛있는지, 어떻게 해야 제 맛을 내는지, 한국의 것과 다른 나라의 것은 어떻게 다른지 등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집중 탐구했다. 그는 심지어 “주방을 보지 못했으면 그 음식에 대해 섣불리 말하지 말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만큼 음식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높은 수준의 미각을 갖춰야 하며, 우리 미각 수준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한참 더 아래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런 황교익이 지난해 <미각의 제국>에 이어 새 책 <한국음식문화 박물지>(도서출판 따비)를 펴냈다. <미각의 제국>이 ‘보통 사람들을 위한 미각 입문서’였다면 이 책은 그 업그레이드판이자 버전 2.0이라 할 수 있다.

각 음식(재료)별로 서술한 형식·구성 같으나, 이 책은 맛이나 미각 그 자체보다 해당 음식을 먹는 우리 음식 문화, 우리들(한국인)을 묘사하는 데 주력했다. 황교익은 서두에서 “한국음식을 먹고 있는 한국인의 삶에 대한 관찰의 기록”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은 그래서 읽는이를 아프게 한다. 특히 평소 ‘직설’을 주저 않는 황교익이다. 삼겹살·불고기·소고기등심구이·두부·활어회·짬뽕·파스타 등 우리가 평소 즐기는 음식에 대한 서술을 보면 우리는 ‘가짜’에 속고 있었고 ‘허영’을 먹고 있었으며 ‘싸구려 입맛’에 길들여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황교익은 대한민국 대표음식인 돼지고기 삼겹살구이가 유행하게 된 계기가 1970년대부터였다고 설명한다. 그전까지는 여러 부위를 구분없이 구워 먹었는데, 먹다 보니 지방이 많은 삼겹살 부위가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 부위를 따로 떼어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방이 타면서 내는 고소한 냄새, 그 지방이 입안에서 씹히면서 내는 야들한 촉감 등 삼겹살의 맛은 거의 지방에 기대고 있지만 아무튼 맛이 있으니 그렇게들 많이 찾는 것일 게다. 하지만 지금은 삼겹살이라는 ‘그 이름’이 삼겹살의 맛 그 자체를 넘어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황교익의 생각이다.

저자는 “쇠고기는 비싸다. 기왕에 회식을 하는데 돼지고기일지언정 최고의 부위를 먹자는 마음을 가지는 것 같다”며 “(그런데) 삼겹살이라 이름만 붙었지 목살이며 앞다리살이 나와도 삼겹살로 여기고 먹는 일이 흔하다. 한국인에게는 삼겹살이라는 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삼겹살이라는 그 이름이 중요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이어 삼겹살에 치중된 비효율적인 돼지고기 소비행태를 언급하면서 “한국인 각자는 자신만 삼겹살을 안 먹으면 사회적 왕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며 “삼겹살은 차상위 고기, 중산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고기인 셈”이라고 말했다.

주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피자는 한국인의 수준 낮은 입맛과 허영심을 대표한다. 물론 피자가 맛없는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주로 먹는 피자’가 과연 맛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황교익에 따르면, 피자는 1980년대 중반 커다란 공간과 깔끔하고 화려한 서구적인 인테리어를 앞세운 피자헛 등 미국의 대형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면서부터 인기를 끌었다. 그 중심은 부자들이 많이 사는 서울 한남동·압구정동이었는데, 빵은 얇고 토핑이 적은 정통 이탈리아 피자와 많이 다른 기름지고 짜디짠 피자였지만 이 지역에서 대학로, 명동 등 젊은이들의 거리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30년이 지난 현재, 피자는 동네 구석구석에 침투해 프라이드 치킨과 함께 가장 사랑받는 외식·배달 메뉴로 군림하고 있다. 황교익은 자극적인 것만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는데, 이런 음식은 매우 ‘저렴한 원가’로 조리가 가능하다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 역시 함께 전해준다. 저급한 원재료를 숨기는 데 자극적인 양념·기름만큼 좋은 것은 없으니까. 저자는 심지어 “미국에서 온 것이니까 비싸고 맛없는 것도 불평 없이 맛있게 먹는 것”은 아닌지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한국음식문화’를 주로 탐구하는 맛칼럼니스트가 피자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으로 말하니, 혹자는 황교익을 민족주의자나 국수주의자쯤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오직 “우리 것만이 최고”라 주장하는 뭐 그런 부류로.

하지만 정반대다. 기자 출신인 황교익의 글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근거한다. 그는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알려진 소불고기가 실은 일본의 ‘야키니쿠’(焼肉)에서 유래된 것임을 ‘입증’하기까지 하며, 한식 세계화의 대표메뉴로 내세워진 떡볶이와 관련한 한국인들의 모순도 신랄하게 꼬집는다.

정부 측은 고추장떡볶이는 세계인의 입맛에 안맞다며 토마토케쳡, 크림소스 등을 활용한 떡볶이를 내놓고 있는데, 여전히 고추장떡볶이만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이 그 ‘떡볶이 세계화’에 환호하는 모순 말이다. 우리도 별로 즐기지 않는 음식이 과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 잡을 수 있을까?

황교익은 그러나 “맛없는 것은 결국 도태하게 되어 있다”는 분명한 믿음은 있는 듯 보인다. 소갈비나 찜닭, 잔치국수, 뷔페 등의 예가 그렇다. 한때 최고의 유행을 이끌었던 음식(문화)이었지만 이제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왜 그럴까?

‘맛없는 음식’이란 사실을 사람들이 점차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들척지근한 간장양념의 소갈비가 고기 그 자체의 맛이 살아 있는 소금구이 소갈비·등심보다 더 맛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양념도 제대로 안 밴 맹탕의 찜닭이, 밑간을 충실히 한 바삭한 프라이드 치킨을 이길 수는 없었다. 값싼 미국산 밀가루와 중국산 마른멸치로 만든 잔치국수의 인기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양보다는 질, 같은 가격이라면 맛없는 음식 5접시(뷔페)보다 맛있는 음식 1접시가 더 낫다는 생각이 더 일반적으로 보인다.

황교익은 한국음식, 한국음식문화가 발전하고 이른바 ‘세계화’를 이루려면 한국 식재료에 대한 정보와 가치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젊은 요리사가 서양의 조리법과 식재료을 익히기 위해 외국까지 나가 공부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선 어떤 식재료가 생산되는지, 지역별 식재료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계절별로 식재료는 어떤 맛 차이를 내는지에 대해선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황교익은 음식의 맛은 대부분 ‘원재료’에서 나온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 한가지 사실만 제대로 이해해도, 당신의 식생활은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 원재료의 질이 낮은 음식, 원재료의 맛을 의식·무의식적으로 감추는 음식, 원재료 간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음식 등 이런 음식을 조금씩만 덜 먹어보시라. 어느날 최대한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를 찾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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