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을 보다 눈에 띄는 광고를 발견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고졸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학력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 대우조선해양이 만들겠습니다”라는 문구는 ‘잠정적 학부모’의 가슴을 약간 뛰게 했습니다.
 
얼른 대우조선해양 홈페이지(www.dsme.co.kr)에 들어가 봤습니다.

8일자로 올라온 보도자료엔 “사관생도들이 4년간의 교육기간을 통해 장교로 임관되듯 (대우조선해양이 중공업 사관학교를 만들어) 우수 인력을 조기에 양성해 궁극적으로는 회사의 중공업 전문가를 육성”하겠다고 돼 있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밝힌 ‘사관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르면, “첫 1년간은 기본소양 과목 및 현장 순회교육을 실시하고 이후 군 문제를 조기에 해결한 뒤 향후 3년간 전문 멘토를 지정해 실무 부서에서 실무경험을 쌓게” 되고 “집중 어학교육도 함께 실시”됩니다.

   
9월8일자 한겨레 5면에 실린 대우조선해양의 고졸 사원 공개채용 안내 광고.
 
대우조선해양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인재들을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해 소정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군 휴직 기간도 근속연수로 인정 해주고, 사내외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모두 마칠 경우 대학을 졸업한 같은 또래의 신입사원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풍부한 실무 경험으로 더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 이번 고졸 채용의 ‘핵심’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부 언론엔 남상태 사장이 전국 2200개 고등학교장에게 채용 방식을 설명하는 편지를 조만간 보낼 ‘예정’이라고 하는데, 보도자료엔 ‘보냈다’고 한 것 쯤이야 뭐, 어떻습니까. 지난 7월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은행을 방문해 고졸 신입행원들에게 “나도 상고 출신”이라고 한 이후 금융권과 산업계, 공공기관들이 앞다투어 고졸 채용 계획을 내놓고 있는 게 곱게만은 보이지 않지만 뭐, 어떻습니까. 고졸 채용이 제도화되고 학력 차별이 사라지기만 한다면요.

꼼꼼히 광고 문구를 살펴봤습니다. 지원자격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2012년 2월 정규 고등학교 졸업예정자여야 하고 둘째, 3학년 1학기를 기준으로 내신성적 우수자이거나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야 하며 셋째, 2011년 수능시험 응시자일 것.

그런데 이 지원자격, 이상하지 않나요? 혹시 모순을 발견하셨나요?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2012년 2월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라면, 지금 고3이어야 합니다. 지금의 고3들은 2011년 수능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죠. 당시 수능에 응시했던 고3 학생은 올해 2월 졸업했답니다.

단순한 실수일까요? ‘2012년 수능 시험 응시자’라고 했어야는데, 담당자가 ‘한끗’을 잘못 적은 걸까요?(채용공고가 나간 지 일주일 만인 16일, 대우조선해양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이 부분을 ‘수능시험 응시 예정자’라고 고쳤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16일 밝힌 고졸 채용 응시자격
 
중요한 건 ‘한끗’이 아닙니다. 고졸 사원을 뽑으면서 수능 점수를 보겠다는 ‘발상’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은 보도자료에서 “성적은 우수하지만 일반 대학 진학이 어렵거나, 진학 이외에 다른 경로를 찾던 고등학생들에게 취업을 통한 새로운 성장 경로를 보여줬다”며 고졸 공채의 ‘의의’를 홍보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학교장 추천 등을 통해 능력은 우수하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을 중심으로 뽑을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능력은 우수하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은 인문계 고교에 많이 진학할까요, 아니면 전문계고에 많이 진학할까요? 가정 형편 때문에 전문계고에 간 학생들 가운데 몇 명이 올해 수능을 보겠다고 원서를 냈을까요?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되도 일단 수능은 볼 꺼 아니냐구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14일 조선일보에 실린 사설 <고졸 채용 늘리니 대학 가려는 전문고학생 줄었다>에 따르면, “올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직업탐구 영역 응시자가 작년 4만4136명에서 3만3428명으로 24.3%나 줄었다”고 합니다. “(지난 7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전문계고 특별전형을 단계적으로 줄여 2015년 전면 폐지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수능 응시자가 반짝 늘어야 상식인데 오히려 줄어드는 이변”이 일어난 겁니다.

‘이변’의 원인으로 조선은 “정부와 공기업, 은행, 대기업들이 고졸 출신을 많이 채용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조선은 삼성, 현대차, SK, 포스코가 밝힌 올해 고졸 채용 규모를 나열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는 “단순히 고졸 채용규모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고졸 출신을 중공업 전문가로 육성해 승진·전보·보직 인사 등에서 대졸자와 똑같은 대우를 해줄 계획을 공개했다”며 더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공기업, 대기업의 말만 믿고 ‘진학 이외에 다른 경로를 찾’기 위해 올해 수능 시험을 보지 않기로 한 학생들은 대우조선해양에 지원서조차 들이밀 수 없게 됐습니다. 지금이라도 수능 원서를 내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대우조선해양이 보도자료를 낸 지난 8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1년 수능 원서 접수를 마감했거든요. 이 기관에 따르면, “응시원서 접수기한의 연장은 절대로 불가하므로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접수기간 내 응시원서를 접수하여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남 사장은 “대학에 진학할 능력은 된다는 점을 검증하기 위해 수능 성적을 보는 것”이라며 “따라서 수능이 상당한 비중을 가진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진학할 능력이 되는 ‘대학’의 기준은 어디일까요?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대’일까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일까요, ‘지방의 2년제 대학’일까요.

조선은 “대학 나오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고 능력과 실적에 따라 대우받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면 비싼 등록금 바쳐가면서 대학 가겠다는 학생들은 저절로 줄어들 것”이라며 올해의 ‘이변’을 ‘희망적인 조짐’으로 얘기합니다.

하지만, 대학에 갈 것도 아닌데 입시(수능)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즉 취업을 위해 대학입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대우조선해양의 모순된 지원자격을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입시를 위해 3년 동안 수능 시험에 매달려온 인문계 학생과의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할 게 뻔한 전문계고 학생들이 ‘학력 차별 않겠다면서 학교 차별을 하겠다는 거냐’라고 묻는다면, 대우해양조선은 뭐라고 답할까요?

*기사가 나간 뒤 대우조선해양은 "국내 모든 고등학교간 객관화된 비교를 하기 위해 수학능력평가 결과 외에 뚜렷한 방법이 없다는 점과, 이러한 방법을 적용함에 있어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실업계고 졸업생의 상대적 차별을 줄이기 위해 각종 자격증 소지에 따른 우대정책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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