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정치권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은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한 흥미로운 발언을 던졌다.

8일 추석 맞이 특별 방송좌담회에 출연한 이 대통령은 “안철수 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며 “스마트 시대가 왔는데 정치는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정치권을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국민이)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특히 정치권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그 변화의 욕구가 아마 안 교수를 통해서 나온 것 아니겠느냐”며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평소 여의도 정치와 거리두기를 해왔던 소신을 재차 확인한 것으로,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이자 대립각을 세워왔던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이 ‘국민’ 편에서 ‘정치권’을 바라보고 비판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4월 한나라당이 재보선에 참패했을 때가 대표적인데, 당시 이 대통령은 “큰 흐름에서 국민들의 뜻은 늘 정확했다고 생각했다. 이번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무겁고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정부·여당이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거듭나야 한다”고 했지만 뭘 거듭나겠다는 것인지 전혀 말하지 않은 이 대통령은 마치 자신은 선거 결과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국민’ 뒤에 숨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는 진보·보수 양쪽 모두에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지난 6월 중앙일보에 쓴 칼럼 <대통령이 안보인다>에서 부산저축은행 사태, 국정원 어설픈 공작 실패, 국토해양부 직원 4대강 향응 물의등 여러 실정 사례를 거론하며 “이 대통령이 '나라가 온통 썩었다'거나 '밥그릇 싸움'이라고 말했을 때(지난 6월 17일) 많은 국민이 이에 뜨악해 했던 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을 두고 마치 남의 일처럼 비평하고 훈수 두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방관자적 태도가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비판한 바 있다.

‘안철수 현상’을 초래한 요인에서도 이 대통령은 예외일 수 없어 보인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학·문화비평가)는 최근 현상과 관련 “일을 잘할 것이라고 기대한 정부가 일을 잘 못하니 당연히 돌아오는 반응은 ‘무능’이라는 평가이다. 한마디로 지금 현재 목격할 수 있는 반이명박 정서의 핵심에 잠복해 있는 것은 무능한 정부에 대한 혐오”라고 지적했다.

즉 “주목해야할 것은 ‘무능한 이명박’을 대체할 대안으로 ‘유능한 안철수’가 호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이런 정서가 때로 정치에 대한 혐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본심은 ‘유능한 정부’에 대한 요구”라며 “‘정상국가’에 대한 진보의 요청과 ‘선진국’에 대한 보수의 요구가 서로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이 교수 해석대로라면,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주 장본인이 안철수 교수를 연호하는 ‘국민’ 편에 서서 그 국민들이 비판하는 ‘정치권’을 때리고 있는 셈이다. 국민들 입장에선 “저 사람은 왜 여기서…”란 말이 나올 법하다.

혹 이명박 대통령은 ‘안철수 바람’에 편승해 국민적 지지를 다시 한번 되찾고 싶은 것은 아닐까? 욕을 먹을지언정, ‘내탓’보다는 ‘남탓’을 해가면서 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29일 한 회의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재보선 패배가 정부에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의 탓을 한다. 그런 사람의 성공은 못 봤다”며 “실패했을 때 자기 탓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그런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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