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박원순의 ‘아름다운 합의’는 17분 동안 벌어진 짧지만 굵은 사건이었다.

6일 오후 4시2분부터 19분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안팎에서 벌어진 사건은 서울시장 선거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치지형의 중대 변화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이야기와 결과물을 담고 있다.

이날 오후 4시를 앞두고 서울 세종문화회관 지하 1층 ‘수피아홀’ 주변은 기자들로 가득 찼다. 내부는 물론 외부까지 취재기자, 사진기자, 촬영기자 등이 뒤엉켜서 취재 경쟁을 벌였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서울시장 출마 문제와 관련한 기자회견 소식이 알려진 이후 주요 언론사 대부분이 취재진을 이곳에 보냈기 때문이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어떤 합의를 할 것인지에 따라 서울시장 선거는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었다.

   
6일 오후 안철수 교수와 시장후보 단일화를 발표한 박원순 변호사가 취재진에 둘러 쌓여 퇴장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오후 4시2분 기자회견장 밖에서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자들은 직감적으로 이날의 주인공인 안철수 교수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적중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안철수 교수가 현장에 나타났지만 박원순 상임이사는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기자회견 할 것을 기다렸던, ‘그림’을 만들어줄 것을 기대했던 기자들 입장에서는 난감한 순간이었다.

4시 5분께 박원순 상임이사가 등장했다. 그는 기자회견 연단에 함께 앉지는 않았고 안철수 교수와 떨어져 서 있었다. 다시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이었다.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그는 최근에야 산에서 내려왔다.

안철수 교수는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그 분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다”면서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안철수 교수는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앞서 박원순 상임이사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전했다. 안철수 교수는 “저는 그 누구도 국민의 민심을 쉽게 얻을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저는 서울시장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철수 교수는 “저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소중한 우리 미래 세대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사진 오른쪽)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이치열 기자 truth710@
 
안철수 교수는 자신의 입으로 박원순 상임이사와 후보단일화를 했다는 발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과 행동으로 그것을 표현했다. 안철수 교수는 박원순 상임이사와 손을 잡고 포옹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많은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안철수 교수는 “지금까지 심정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이해해준 박경철 원장님께도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포옹했다.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안철수 교수는 기자들과의 간단한 일문일답을 진행했고, 박경철 원장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박경철 원장은 기자의 물음에 “멋져요. 멋지다. 놀랍다”고 답할 뿐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안철수 교수는 어떤 고려도 하지 않았다”면서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결단이 아님을 설명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이후 안철수 교수가 먼저 자리를 떠났고, 박원순 상임이사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참 정치권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잠깐 대화를 나눴는데 안철수 교수와 진심이 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사람 모두 시장직 자리를 원한 게 아니다. 진정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결론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지하 1층에서 세종문화회관 바깥까지 수많은 기자들에 둘러싸여 질문 공세를 받았다. 질문의 요지는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모아졌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조만간 말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차량을 별도로 준비하지 않았다. 지하철 이동을 고민했던 박원순 상임이사 일행은 마침 이곳을 지나던 택시(서울 33아 XXXX)를 잡아타고 현장을 빠져 나갔다. 이 시간이 오후 4시 19분이다.

지지율 50%를 넘나들었던 안철수 교수가 지지율 5~10%를 넘나들었던 박원순 상임이사의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사실상 양보를 하고 떠난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름다운 합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아름다운 퇴장’인 셈이다.

안철수-박원순의 아름다운 합의가 발표된 직후 정치담당 기자들에게는 ‘박원순-한명숙-문재인’ 3자회동 결과 소식이 담은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전달됐다.  

박원순 한명숙 문재인 등 3인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를 통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박원순-한명숙 두 사람은 범시민 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이후엔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인다”고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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