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더 이상 일본 방사능 위험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일본 방사성 물질이 전국에서 측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는 정부와 언론이 일본 원전사고와 방사능 위험을 둘러싼 국내 우려를 ‘유언비어’로 치부했다는 점이다. 정부 발표를 앵무새처럼 따라가며 ‘안전하다’ 돌림노래를 부르던 언론은 ‘국민 불신’이라는 후폭풍에 휘말렸다.
/편집자 주

“방사능 한반도로 오지 않는다.” 중앙일보가 3월 18일자 33면에 내보낸 칼럼 제목이다.

전영신 기상청 황사연구과장은 칼럼에서 “한때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로 몰려온다는 유언비어까지 있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과학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고 단언했다.

▷‘원전 전문가’의 성급한 단언=일본 대지진으로 촉발된 원전 사고와 방사능 위험은 한국사회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현주소를 보여준 중요한 계기였다. 언론은 여러 전문가 얘기를 전하면서 그들 주장과는 다른 의문을 품은 일반인들을 향해 ‘유언비어’ 족쇄를 채워갔다. 일반인이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뒤엎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영향으로 전국 12개 지방측정소에서 요오드.세슘 등 극미량의 방사성 물질이 확인 된 가운데 29일 윤철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기상청 관계자 답변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땀을 닦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전문가가 전혀 전문가답지 않게 ‘합리적 의문’을 스스로 차단한 모습을 보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명박 대통령도 3월 21일 라디오연설에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면서 자신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는 “일본의 방사성 물질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의 방향과 상관없이 우리나라까지 날아올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과 기상청 황사연구과장 주장은 모두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발표가 그렇다. 한반도에 일본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와 세슘 등이 검출됐다는 점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이 3월 29일 정부중앙청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합리적 의문’ 차단한 언론=정부와 언론,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국민 앞에서 단언한 주장들은 불과 며칠 사이에 뒤집히고 있다. 특히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원전은 효용성 있는 에너지 원천이지만, 국내에서는 그 위험성이 간과된 측면도 있다.

언론은 지난 2009년 연말 이명박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이후 ‘원전 안전신화’ ‘원전 경제신화’를 부풀렸다. 이번에 일본 원전 사고로 방사능 유출 위험이 증폭되는 상황에서도 한반도 유입 가능성을 일축하는 등 정부 발표를 ‘앵무새’처럼 전하는 모습이었다.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는 ‘유언비어’와 ‘합리적 의문’을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방사능 위험에 대한 합리적 의문마저 ‘색깔논리’를 들이대며 차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3월 22일자 <과학도 사실도 안 믿는 ‘불신사회, 미신국가’>라는 사설에서 ‘방사능 낙진’ 우려 등을 언급하면서 “과학적 근거는 제쳐두고 믿고 싶은 것만 떠드는 세력이 판을 치는 나라는 미신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친북 반미 반정부를 위해서는 과학과 사실마저 부정하니 사이비 종교를 믿는 맹목의 신자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주장했다.

▷언론의 말 바꾸기, 자초한 불신=이 대통령은 전문가 공통된 의견이라면서 방사성 물질은 한반도로 날아올 수 없다고 주장했고, 동아일보는 방사성 낙진 등을 우려하는 이들을 향해 ‘과학과 사실마저 부정하는 맹목의 신자’에 비유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3월 29일자 1면 <서울 등 전국 8곳서 방사성 요오드 검출>이라는 기사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처음으로 23일 강원도에서 ‘제논(Xe)133’이 측정된 데 이어 28일에는 일본 원전에서 대량 누출되고 있는 방사성 요오드가 서울 등 전국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정부와 언론이 ‘유언비어’로 몰고 갔던 한반도 방사성 물질 검출은 이미 사실로 드러났고, 보수언론이 이 사실을 전하고 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바뀐 풍경이다.

▷한나라당도 ‘원전 괴담’ 논리 반성=‘원전 안전신화’를 써내려갔던 언론의 주장이 타당한 것이었는지, 오히려 국민 불신을 자초한 ‘유언비어’는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부분이다. 정동영 민주당 의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지난 28일 정부의 원전 확대정책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를 겪으며,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원전 건설 중단을 선언한 것을 교훈 삼아, 정부는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을 버리고, 위험천만한 원자력발전소 확대정책을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언론이 만들어낸 ‘한반도 방사능 안전지대’ 주장은 야당과 환경단체는 물론 보수언론과 여당 대변인까지 우려를 전할 정도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정부는 그동안 편서풍을 근거로 우리나라는 절대 안전하다며 방사능 유입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조차 괴담으로 치부해왔다”면서 “정부가 아무리 검출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라고 강변한다 해도 그동안 쌓인 국민 불안과 불신까지 떨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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