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방재일월기(三訪齋日月記)'를 시작한지 1년이 되었다. 지난해 3월, 서울을 떠나 고속버스, 군내버스를 갈아타며 이곳에 길 찾아든 것이 첫 소식이었다. 1년전 이곳 소식을 전하기 시작할 때 이름을 '삼방재'라 지었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메일을 1년여 보냈더니 이제 삼방재가 또 하나 내 이름이 되고말았다. 종종 만나는 사람들이 "어이 삼방재", "삼방재, 농사 잘 돼가?" "라며 입을 내니 나의 호가 저절로 되었다.

싫지 않다. '삼방재(三訪齋)일월기'의 '齋'는 '집재'자이고 '三訪'은 마을 이름에서 빌려왔다. 허균은 그가 머문 곳에 '사우재(四友齋)'라 하였고 정약용은 역시 강진에 살던 곳을 '사의재(四宜齋)'라 이름한 것처럼, 머물러 산 곳에 '齋'를 사용한 것에 따랐다.

그사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 다시 새봄을 맞는다. 절기따라 철 따라 흙파고 만지고 겪은 시간이었다.
  

   
씨감자. 눈 부분을 칼로 잘라 쪼개 심는다.
 
이른 아침 밖을 나서니 비가 내린다. 가는 비가 천천히 내린다. 촉촉히 땅을 적시고 있다. 비 내리는 봄 머리에서 빈 들과 산을 보노라니, 얼마 있으면 피어날 산수유, 복숭, 개나리, 사과나무들의 화사한 꽃이 기다려진다. 과수를 많이 재배하는 이곳의 봄날은 볼만하다.

난만한 하양, 분홍, 노랑 빛깔 꽃무리로 눈이 부시다. 그러나 아침을 넘어서니 눈으로 내린다. 작년에도 4월까지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때인줄 알고 나온 과수나무 꽃이 추위와 눈보라, 우박에 떨어졌다. 일찍 파종한 작물이 저온 피해를 입었고, 파종 날짜를 잡기 어려웠다. 특히 과수 피해가 컸다. 날씨 변화를 종 잡기 힘들어져 몇십년 농사지어온 농부도 "이런 날씨는 평생 처음 이구먼유"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는다. 작년이 그랬다.

올해는 어떨까. 농사꾼은 힘들여 일할 뿐. 날씨-하늘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농사지어 먹고 살기 힘든 판에 기후변화로 작황마저 좋지 않으면 기댈 데가 없다.
 
남쪽에는 이미 봄이 온 모양이다. 우인이 메일로 땅에 풀이 돋고 있다고 알려왔다. 이곳은 다소 철이 늦지만 역시 설날 이후 포근한 날씨가 이어져 봄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목련나무에 물이 오르고 실개천 물위에도 어느새 깨어났는지 하루살이가  물 위를 날고 있었다. 그동안 잠잠하던 산새의 울음을 들었다.

산비둘기이리라 생각하는데, 반가웠다. 딱따구리, 동네 텃새, 산비둘기, 까마귀 순서로 만났다. 소쩍새 울음도 곧 들려올 것이다. 생명의 수레바뀌가 물 맞은 물레방아 처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새싹이 돋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새가 날고 땅속에서 벌레들이 깨어나면 상생의 먹이 사슬이 이어져서 자연은 풍성해지고 살아움직이는 생명가진 모든 생물의 움직임이 바빠질 것이다.
 
파종과 작업이 계속된다. 눈 틔운 고추, 가지를 육모상자에 뿌려 보온 온상에 넣었다. 아직 밤이 되면 영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온상은 15도에 맞춰 온도를 관리하고 있다. 낮에는 보온덮게를 벗겨준다. 감자는 땅에 굴리듯 펼쳐놓았고 하우스에 심을 감자는 씨눈에 칼집을 내 쪼개 놓았다. 씨감자 상태는 좋다. 하우스 5백평 감자밭에 3월 2일 심는다. 
 

   
고추씨. 작년에 수확해 보관해놓았다
 
시금치, 아욱 씨도 60여평 씩 뿌렸다. 해 기울면 보온덮게와 비닐을 덮어주고 낮에는 벗겨준다. 지난해 수확한 토종고추 씨도 종자소독하여 눈 틔우기 시작했다. 씨앗도 박테리아 곰팡이 등 미생물에 안팎이 둘러쌓여 있을 수밖에 없는데, 종자소독을 온탕침종으로 했다. 볍씨 온탕침종법과 유사한 방법이다. 물 온도 50도를 유지하며 30분간 담그고, 30도 물에 8시간 담근 다음, 습도 온도 맞춰 씨에서 눈이 터 자라나오게 해서, 육모상자에 뿌려 모를 기르기 시작한다.

씨앗 이름은 '소태, 대화, 새마을, 수비, 붕어, 무명'. 씨앗 가게에서 사는 씨앗은 거의 외국 회사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씨앗들인데 살균하고 코팅돼 있다. 종자는 다국적 농업기업에 장악되었고 씨앗 값은 만만치 않다.
 
2월27일, 3월1일 비가 내렸다. 반가운 비다. 하지만 감자, 옥수수 등을 심을 밭에 거름 뿌리고 로터리 치는 등 밭을 정리해놓아야 하는데 비로 땅이 질어 들어갈 수 없다. 3월은 고르지 않은 날이 이어질텐데 날이 개고 흙이 조금 마를라치면, 때 놓치지 말고 서둘러 작업해 놓아야 한다.

   
 
 
2년차 농사꾼의 농사일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정혁기 농민은 서울대 농대를 나왔지만,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로 올해 두 해째 농사를 짓게 됩니다. 그의 농사일기를 통해 농사짓기와 농촌과 농민들의 애환과 생활상을 접해봅니다. [편집자주]

정혁기 농민은 현재 친환경농업의 과학화를 추구하고 있는 사단법인 흙살림의 삼방리농장(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부설 민족민주연구소 부소장, 우리교육 이사, 월간 말과 디지털 말 대표이사,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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