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정치에 곁눈질하지 않고 살아온 제가 검찰에서 정치적으로 특정 대선후보에게 도움을 준 것처럼 왜곡했다.”

12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장 후보직 사퇴를 선언한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야당과 언론을 향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평생을 훌륭하게 살아온 분을 알아보지 못해 죄송하다’라는 답변을 듣고자 했는지는 모르나 정동기 후보자의 주장과 그를 둘러싼 의혹의 ‘팩트’는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 밝혔던 “검찰에서 정치적으로 특정 대선후보에게 도움을 준 것처럼”이라는 발언은 2007년 8월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조선일보 2007년 8월 14일자 1면.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8월 13일 검찰의 발표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날 이명박 후보 큰형 이상은씨가 갖고 있던 서울 도곡동 땅 지분은 이씨가 아닌 제3자의 차명재산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 발표는 서울 도곡동 땅이 이명박 대통령 차명 재산이라는 의혹을 증폭시켰다. 도곡동 땅 소유주 문제는 ‘다스’ 실소유주 문제와 맞물린 사안이었다. 검찰이 이상은씨가 아닌 제3자의 차명재산이라고 발표하면서 이명박 당시 후보의 ‘차명재산’ 논란은 일파만파 번졌다.

당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8월20일)을 일주일 남긴 시점이었다. 한겨레는 8월 14일자 3면에 <‘도곡동 땅’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 의혹 증폭>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차명재산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판세는 요동을 쳤다. 8월20일 한나라당 경선 승자가 사실상 12월 대선의 승자가 될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친박근혜계와 친이명박계는 첨예하게 부딪혔다.

당시 홍사덕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은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이 이명박 후보임이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면서 “선진국에서는 이 정도면 즉각 (후보) 사퇴가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정동기 전 대검찰청 차장 ⓒ연합뉴스  
 
이명박 당시 후보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여론이 돌아섰다. 이명박-박근혜 사이에서 고민했던 한나라당 지지층도 동요했다. 이때 구세주처럼 나타났던 인물이 바로 정동기 대검찰청 차장 검사였다.

동아일보는 8월 15일자 사설에서 “박근혜 후보 측과 일부 언론이 제3자로 이 후보를 지목하자 어제 정동기 대검 차장이 나서서 ‘이 후보의 땅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선거캠프는 대검찰청을 항의방문하자 정동기 대검차장이 그러한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 장광근 이명박 선거캠프 대변인은 “도곡동 땅은 정동기 대검차장의 ‘이 후보 소유라는 증거가 아직 없다’는 발언으로 이 후보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당시 후보는 큰 고비를 넘겼다.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 후보의 것이 아니다’라는 설명이 아니라 ‘이명박 후보 소유라는 증거가 아직 없다’는 설명이었지만 정동기 당시 대검 차장의 해명은 침몰하던 이명박호를 일으켜 세운 계기였다.

도곡동 땅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인지 아닌지는 여전한 의문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도곡동 땅 지분을 지녔던 또 다른 인물인 이명박 대통령 처남 김재정씨는 세상을 떠났다. 의혹을 풀어줄 열쇠를 지닌 정동기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면 도곡동 땅 의혹은 다시 관심의 초점이 될 수도 있었지만 1월 12일 자진사퇴로 청문회는 무산됐다.

서울 도곡동 땅과 정동기 차장검사는 2007년 대선을 돌아볼 때 주목해야 할 중요한 ‘열쇳말’이다. 정동기 대검 차장이 당시 어떠한 근거로 그렇게 얘기했는지, 결과적으로 야당과 박근혜 선거캠프의 거센 공세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게 됐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정동기 대검 차장은 2007년 11월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로 옮긴 뒤 월 평균 1억 이상의 거액을 벌게 됐고 2007년 12월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법무행정분과 간사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는 점이다. 또 2008년 6월에는 대통령 민정수석이라는 더 큰 중책을 맡게 된다. 최근 감사원장 내정까지 대검 차장이었던 그는 몇 년 사이에 부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쥐게 됐다.

한나라당의 정동기 감사원 후보자 부적격 결정이 ‘보온병’ 파문으로 입지가 약화된 안상수 대표의 ‘청와대 반기’ 정도로 해석하는 언론도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안상수 대표의 찰떡  궁합을 고려할 때 쉽게 와 닿지는 않는 분석이다.

2007년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가 12월 대선으로 앞두고 BBK 의혹과 도곡동 땅 의혹 등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최전선에서 그를 도왔던 인물이 당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월 16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BBK 특검 수용 연설을 하면서 “저는 특검이 결코 두렵지 않다. 어떤 조사를 수 천 번 하더라도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다”고 주장했다.

   
  ▲ 이명박(사진 오른쪽) 대통령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해 11월 17일 청와대 정례회동에 참석했다. ⓒ사진출처-청와대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는 대선 투표일이었던 12월 19일 주요당직자 선거대책회의에서 “오늘은 5년간 지긋지긋하게 국민을 괴롭히고 나라를 망친 국정파탄 좌파세력을 심판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정권교체의 날이다. 지난 10년간 능력도, 양심도, 책임도 없었던 후안무치한 국정파탄 좌파세력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후보에 대해 온갖 중상모략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사에서 대선 TV 개표결과를 지켜볼 때 이명박 대통령 바로 옆에 앉았던 인물이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다. 이명박 대통령과 안상수 대표는 2007년 12월 19일 그렇게 함께 웃음을 나눴다.

2007년 대선은 그렇게 끝났지만 서울 도곡동 땅이 ‘이 후보 소유라는 증거가 아직 없다’는 그 논란은 여전한 의문으로 남아 있다. 2011년 1월 19~20일 국회 인사청문회는 도곡동 땅 실소유 논란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줄지도 모르는 중요한 기회였지만, 정동기 후보자가 감사원장 후보직을 자진사퇴함으로써 그 기회는 사라졌다.

정동기 후보는 국회 인사청문회 무산을 "어처구니없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어처구니없는 이들은 도곡동 땅 실소유주를 둘러싼 의문을 풀어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던, '정동기 인사청문회'를 손꼽아 기다렸던 수많은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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