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 ‘전국 모든 중고등학교 학생들 단체 휴교시위, 문자를 돌려주세요.’ 촛불시위가 전국을 뒤흔들던 지난 2008년 5월 장아무개씨는 여자친구에게 이 같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메시지는 사람들을 거치며 빠르게 확산했다. 검찰은 장씨가 허위 통신으로 공익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사례     .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합성사진 한 장. 김 위원장은 “내가 도와주까? 내가 미사일 한 방 쏴서 북풍 불어주면 좋겠지?”라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그럼 나야 고맙지 여기저기서 빨갱이 때려죽이자고 궐기대회하고…”라고 말한다. 검찰은 허위사실이라며 사진을 다음 아고라에 퍼나른 최아무개씨를 기소했다.

사례      . ‘긴급 비상사태 진돗개 1호 발령 각 동대로 집결바랍니다. 국민권익위.’ 김아무개씨는 북한의 연평도 공격 직후인 지난해 11월 23일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장난삼아 이런 문자를 보냈다. 김씨와 비슷한 문자를 보낸 32명은 허위사실을 유포해 공익을 해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40년 잠자던 법, 정부비판 인터넷에 ‘족쇄’
헌법재판소 “공익 해할 목적 너무 주관적”

검찰이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적용한 법은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허위통신을 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000만 원 벌금형에 처한다)이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이 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사실과 다른 글 또는 말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미네르바 처벌법’이라도 불린 법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법 제정 뒤 40여 년간 적용되지 않다가 지난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정부 비판적인 주장에 더 강하게 적용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높던 차다.

헌재는 미네르바 박대성씨 등이 낸 헌법소원심판에 대해 지난달 28일 위헌 대 합헌 의견 7대2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먼저 ‘공익을 해치는가’에 대한 개인의 판단을 문제 삼았다. 이강국, 이공현, 조대현, 김종대, 송두환 등 재판관 5인은 ‘공익을 해할 목적’과 같은 모호하고 주관적인 요건을 동원해 이를 금지하고 처벌함으로써 규제하지 않아야 할 표현까지 다 규제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공익에 대한 판단은 가치관과 윤리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법집행자의 해석을 통해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

   
  ▲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28일 인터넷에 허위 내용의 글을 게재하면 처벌하도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 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결정 뒤 박대성씨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대현, 김희옥, 송두환 등 재판관 3인은 ‘허위의 통신’ 부분이 불명확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허위 사실을 표현하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서 보호돼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헌재의 위헌 결정 이전에 이 법조항의 적용이 무리라는 것은 법원 판결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사례 1의 경우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사례 2도 고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에 헌재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박대성씨도 지난 2008년 7월 다음 아고라에 ‘드디어 외환보유고가 터지는 구나’라는 제목 등의 글이 문제돼 이 법 조항으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었다. 검찰이 항소하자 박씨는 이 법조항에 대해 헌재에 위헌 심판 청구를 냈었다.

사실 검찰의 이 법 적용 자체가 법 제정의 취지를 도외시한 무리한 것이었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은 지난 1961년 12월 30일 제정된 이후 40여 년간 적용된 적이 없어, 사실상 사문화된 법 조항이었다. 이 법이 처음 적용돼 기소가 이뤄지고 재판이 진행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촛불집회로 곤욕을 치르던 2008년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풍문이 촛불집회를 키웠다고 본 권력층의 주문에 맞춰 단속에 나선 검찰이 찾아낸 것이 바로 이 법 조항이었다. ‘경찰이 시위 참가 여성을 교살했다’, ‘전경들에게 집회 참가자들을 폭행하라고 지시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경우에는 이 법 조항으로 유죄가 선고됐다.

이후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천안함 침몰 원인에 의혹을 제기한 시민들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가 적용됐다. 핵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천안함 패러디 동영상을 게시한 경우, 어뢰 사진에서 스크루가 닳아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 분석글까지도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을 처벌함으로써 인터넷 글쓰기에 제동을 거는 이른바 위축효과를 노린 것이다.

현재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이들에 대해 판결이 나온 것은 10건이다. 6건은 유죄, 4건은 무죄가 선고됐다.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은 34명이었다. 이 조항 위반으로 기소된 이들에 대해서는 검찰이 공소 취소를 하게 되고, 이미 유죄를 선고 받은 이들은 재심 절차를 밟으면 무죄가 된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에 역행하려는 움직임도 없지 않다. 당장 일부 보수진영 쪽에서는 유언비어 단속을 위한 대체 입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도 “인터넷 등에서의 무차별적 유언비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대체 입법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헌재는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헌재의 이같은 위헌 결정의 취지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언론인권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28일 공동 성명을 내어 헌재 결정을 환영했다. 이들은 “그간 수많은 시민들이 받아왔던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겠지만, 이제라도 잘못된 법률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다”며 “정부와 국회는 이 법률에 대한 개정에 있어 꼼수를 부리는 일 없이 즉각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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