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협조 거부로 무산됐던 KBS의 G20 관련 다큐 프로그램이 뒤늦게 청와대의 '전화 한 통'으로 방송을 5일 앞두고 긴급 제작돼  방송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당초  제작중이었던 다른 아이템은 빠졌다. 청와대의 '전화 한 통'으로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이 뒤바뀐 것이다. 

KBS PD협회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9일 KBS 길환영 콘텐츠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큐3일> 진행이 잘 되고 있어 고맙다는 뜻을 전달했다. G20 정상회의 아이템으로 <다큐3일>이 제작되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 G20 정상회의를 다룬 <다큐3일>의 한 장면.  
 
그러나 G20 관련 <다큐3일>은 이미 내부적으로 진행이 중단된 상태였다. 제작진이 촬영을 위해 청와대에 협조요청을 했지만 경호팀에서 안전문제로 거부해 무산됐기 때문이었다.

<다큐3일> 제작진은 이미 10월 말 이 같은 사실을 본부장에게 알렸고, 대신 시청자제안공모 아이템을 방송하는 것으로 내부 정리가 끝났다. 해당 프로그램이 13일 방송예정이었기 때문에 제작진들도 이미 대체 아이템으로 촬영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갑작스레 방송 5일을 남겨두고 본부장에게 '<다큐3일> 진행이 잘 되고 있어 고맙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전화를 받은 길 본부장은 이후 방송 예정이었던 아이템을 뒤집고, 다른 기획을 진행하던 3명의 PD를 긴급 투입해 G20 정상회의 관련 아이템으로 <다큐3일>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결국 해당 프로그램은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뛰고 있는 주역들'이라는 주제로 13일 방송됐다. G20에 투입된 경호원과 경찰, 요리사, 자원봉사자 등의 일과를 다룬 내용이었으나 당시 인터넷에서는 다큐가 아니라 홍보방송 같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KBS PD협회가 24일 공개한 '12차 TV편성위원회' 회의록에는 <다큐3일> 아이템이 청와대 전화 한 통으로 바뀌게 된 정황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 회의에는 PD협회 간부들을 포함한 PD들(실무자 대표)과 길 본부장을 포함한 제작간부(책임자 대표)가 참석했는데, 실무자 대표들은 "지난 13일 <다큐3일> 방송아이템을 방송 5일 전인 9일 G20 관련 기획으로 긴박하게 바뀐 이유가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 아니냐"고 집중적으로 질의를 했다.

이에 대해 길 본부장은 "우리 쪽에서 청와대에 연락해서 경호처에 (다큐3일 제작을 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청와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실무자 대표들이 재차 "이미 본부장은 G20 아이템이 안 나간다는 것과 대신 시청자 제안공모 아이템이 방송된다는 것을 10월 말에 보고 받았는데 갑작스레 청와대에 전화한 이유가 뭐냐"고 질문하자 이번엔 답변이 달라졌다.

길 본부장은 "9일 청와대로부터 전화가 왔다"며 "'<다큐3일> 관련 진행이 잘 되고 있어서 고맙다는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다큐3일>은 진행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더니 그쪽(청와대)에서 그렇지 않을 거라고 반응했다"며 "(확인해 보니) 청와대 경호팀에서 <다큐3일> 촬영을 반대해서 G20 기획이 무산된 것이었고, 내가 전화해서 그 부분을 풀어달라고 했다"고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청와대는 이후 자신들의 '미스 커뮤니케이션'으로 촬영이 잘못 됐다고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대준 PD협회장은 이에 대해 "제작을 하는 PD 입장에서는 진행하던 아이템이 급작스럽게 바뀌면서 스케줄이 흐트러지는 것이고,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준비가 부족한 고품질이 아닌 방송을 보게 되는 것"이라며 "방송 내용이 뒤바뀌는 사건이 청와대의 전화 한 통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라고 말했다. 

당초 13일 방송 예정이었던 <다큐3일> 아이템은 28일로 방송일이 늦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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