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지난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정부와 공공기관으로부터 협찬을 받은 금액만 무려 142억 원에 달한 것으로 25일 밝혀졌다.

이날 KBS 공정방송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KBS 노사가 지난 19일 개최한 201차 정례공정방송위원회에서 지난해 정부와 공공기관의 일반 프로그램 협찬 실적이 142억 원이며, 전년(2008년) 대비 31억 원 정도가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KBS 노동조합 공정방송 위원들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단순 협찬에서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KBS 사측 공방위원들을 집중 추궁했다고 밝혔다.

   
  ▲ 지난달 4일 방송된 KBS <미녀들의 수다> 법무부 특집편(왼쪽)과 같은달 31일 방영된 <열린음악회> 원전수출 특집 편.  
 

이들은 한국전력공사로부터 1억 원을 받고 제작된 KBS 1TV '원전수주 특집' <열린음악회>에 대해 "한전의 원전수주를 일방적으로 홍보만 하고 미화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해당 프로그램이 한전의 홍보 프로그램인지 KBS의 프로그램인지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4일 이귀남 법무부장관의 인터뷰를 내보내는등 법무부 홍보수단으로 활용됐다는 비판을 받았던 <법무부와 함께하는 미녀들의 수다 시즌2>에 대해서도 노측 위원들은 "법무부의 협찬을 받고 협찬처의 장관까지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1분 30초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했다"며 "과거 열린 음악회 등에서 협찬처의 기관장 등을 카메라로 비추거나 인터뷰를 내 보내 물의를 빚다 한 동안 이 같은 행태가 사라졌는데 이번에 다시 법무부 장관을 프로그램에 출연시킨 것"을 따져물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KBS의 협찬고지 및 협찬품 운영지침은 "협찬고지는 방송프로그램 및 방송광고와 내용상 뚜렷이 구분되어야 한다"(제3조 방송프로그램과의 구별) "공사는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 구성하여서는 아니 된다"(제5조 광고효과의 제한)고 규정하고 있다. KBS의 최근 프로그램 협찬은 자기 스스로의 지침마저 어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KBS 사측 공방위원들은 "이런 일들이 우연히 집중될 수 있는데 근거가 확실한지는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지 표현이나 섭외의 배분은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답변했다고 공방위 보고서는 전했다.

한편, 최근 오세훈 시장, 윤상현 한나라당 의원이 KBS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는 등 KBS가 여권 인사 홍보무대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KBS는 지난 14일 설날 특집 장사 씨름 대회 때 오세훈 서울시장을 출연시켜 인사말까지 하도록 방송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 시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지난 한해는 기본기가 튼튼한 우리 경제가 OECD 선진국 중 가장 빨리 경제위기를 극복해 탈출한 뜻깊은 한해였다"며 "올해는 특히 G20 정상회담도 열리고, 서울시와 함께하는 한국 방문의 해이고, 또 디자인 서울 세계 수도 서울의 해이기도 하다"고 말해 서울시 업무를 홍보했다.

   
  ▲ 지난 14일 방송된 KBS <설날 장사 씨름대회>에 출연한 오세훈 서울시장.  
 
그 이튿날엔 <2010 명사스페셜>에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범여권 인사들이 무려 5명이나 출연해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업무홍보 기회까지 제공하는 등 KBS 음악 프로그램이 여권인사들의 출연무대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지난해 말부터 5차례 출연) 외에도 윤상현 의원이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지역구에서 연탄을 날랐다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KBS는 지난해 12월5일 방송된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윤 의원을 출연시켜 연탄 배달을 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윤 의원이 연탄 배달을 한 곳은 인천 남구을의 숭의동으로 윤 의원의 지역구였다. 대놓고 특정 정치인의 지역구 활동을 KBS가 홍보성 중계방송을 한 꼴이 됐다.

   
  ▲ 윤상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5일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한 모습(왼쪽)과 5공 시절 전두환의 딸과 결혼을 방송했던 KBS <미디어포커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특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엄경철)는 24일 발행한 특보 4호 '한나라당 놀이터로 전락한 KBS'라는 글에서 "윤상현 의원이 전두환의 딸과 결혼할 당시 그와 친구들이 함을 지고 장인이 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찾아가는 모습을 KBS는 방송사 카메라로 찍어 청와대에 헌납했던 과거를 갖고 있다"며 "그 윤상현이 다시 KBS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역구 활동을 하는 모습은 5공 시절로 퇴보하는 KBS의 초라한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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