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 이랜드 사태의 핵심 원인이 무엇인가. CBS 노컷뉴스는 이렇게 진단했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외주용역화를 통해 비정규직 차별시정의무를 회피하려는 기업들의 의도에 무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같은 우려는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노동계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면 기업들이 차별시정에 따른 부담을 피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대거 계약해지 할 것이고, 이들 비정규직이 맡고 있던 업무를 외주용역업체에 맡길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오늘자(9일) 한겨레가 지적했듯이 "홈에버 등을 운영하는 이랜드그룹의 대응은 비정규직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입법취지'를 훼손한 대표적 사례"다. 법 시행 이전에 노동계가 우려한 상황, 즉 기존 비정규직의 계약해지→이들 업무의 용역전환→분리직군 고용 등이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차별시정의무 회피하는 기업들…정부는 속수 무책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정리를 하고 넘어가자.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시정하고 지난 1일 이후에 계약을 맺은 비정규직 사원에 대해 2년 넘게 고용하면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바꾸도록 하고 있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각 기업들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보다는 손쉬운 비용절감만을 고려해 이들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와 외주업체로의 업무 전환 등에 치중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실제 이랜드 사태로 상징되는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늘자(9일) 한겨레가 3면 <비정규직 보호법 악용 '또 다른 차별' 내몰아>에서 지적했듯이 "기업의 이런 처사에 대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마땅한 조처가 없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 시행 이전에 노동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보완대책' 마련을 강도 높게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입법취지'를 무색하게 할 수 있는 기업들의 '현실적인 수단'은 이미 상존하고 있었고, 그 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완대책 마련이 시급했음에도 정부가 이를 사실상 '방관'했던 것이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기업들의 편법이나 탈법여부를 면밀히 조사해 조처할 것'이라는 입장이 그다지 구속력을 갖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앙일보 "아무 문제없던 비정규직, 법 시행으로 불안 야기"

'상황'이 이런 데도 오늘자(9일) 신문들 가운데 정말 '딴소리'를 하는 대표적인 신문 두 곳이 있다. 중앙일보와 한국경제다.

중앙일보는 사설 <무리한 비정규직 보호법이 부른 노사분규>에서 "이랜드 사태는 현실을 도외시한 비정규직법의 맹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면서 "이 법의 시행 이전까지만 해도 비정규직이 아무런 문제없이 근무해 오다가 법이 7월부터 정규직화를 강제하면서 분규가 불거졌다"고 주장했다. 중앙은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이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노사관계에 난데없는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이라면서 "일부 해고당한 비정규직원들의 사정도 딱하지만 그렇다고 회사 측에 정규직화의 부담을 몽땅 떠안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라고 지적했다.

   
  ▲ 중앙일보 7월9일자 사설.  
 
어이가 없다. 특히 "이 법의 시행 이전까지만 해도 비정규직이 아무런 문제없이 근무해 오다가 법이 7월부터 정규직화를 강제하면서 분규가 불거졌다"는 대목에 이르면 말 문이 막힌다. 대체 중앙의 이 같은 논리와 사고의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랜드그룹 계열 할인매장인 홈에버에서 계산업무 등을 맡아 온 계약직 사원은 대략 3000명 정도다. 한겨레가 9일자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노조가 공개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원의 급여 명세표(동일 호봉 기준)를 보면, 정규직의 한 달 급여가 169만원인데 비정규직은 79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비정규직법은 이런 차별적 처우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중앙은 '엉뚱한' 주장을 사설에서 펼치고 있다. 중앙이 사설에서 주장한 논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냥 차별 받고 살도록 하게 놔두지 왜 차별을 바로잡고자 법을 만들어서 시끄럽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공공의 영역에서 거리낌 없이 제기될 수 있다는 현실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한국경제 "기업현실은 외면한 채 선진화된 법 도입"

한국경제의 오늘자(9일) 기사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한경은 3면 <정치논리에 휘둘린 입법 … 예견된 충돌>에서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보호법이 너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하다 보니 노동계의 주장만 반영해 고용시장을 경색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면서 "기업현실은 외면한 채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는 선진화된 법을 도입, 부작용을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 한국경제 7월9일자 3면.  
 
한경은 "실제로 기업들규직보호법이 시행되면서 경영악화를 우려한 나머지 비정규직을 집단해고하거나 업무성격을 정규직과 분리, 노사갈등을 촉발했다"면서 "이랜드의 경우 차별시정으로 인한 부담을 우려한 나머지 성급하게 외주로 돌리는 과정에서 일어난 측면이 있지만 비정규직법 자체가 기업들의 인력관리에 숨통을 죄고 있다는 분석"이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법 자체가 기업들을 압박하면서 이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는 지적인데, 그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우리은행, 부산은행, 신세계, 삼성테스코 등의 '사례'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들 기업들도 이랜드의 경우처럼 "차별시정으로 인한 부담을 우려한 나머지 성급하게 외주로 돌리는" 방법을 선택했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사태를 불러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다. 왜일까.

중앙일보와 한국경제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랜드사태의 근본원인이 비정규직법에 있다고 '단정'한 것일까. 사설과 기사를 읽어봐도 대체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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