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의해 “문제가 된 다큐멘터리 세 장면을 삭제하지 않으면 상영할 수 없다”며 조건부 상영 결정을 받은 ‘그때 그사람들’의 “삭제판”(시사회)을 관람했다. 이 판결소식을 접하고 얼마간의 한탄을 하고 든 생각은 시사회 상영판에 대한 염려였다.

혹시나 했던 염려는 현실화됐다. 법원에 의해 삭제처리 결정된 신(scene)은 검은 화면으로 처리됐다(삭제라기보다는 영사기를 막아 해결한 듯 했다). 결국 엔딩 크레디트도 못보고 나왔다.

정작 웃긴 건 시대의 망령으로부터 아직까지 자유롭지 못한 현실일는지 모르겠다. 그래선지 다소 유치한 감상으로 이 영화를 통쾌하게 즐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 헤드샷 신에서는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풍자성에, 블랙코미디에, 조심스런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는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환상으로 도피하지 않고 시대의 폐부를 외면하지 않고 조금씩 건드려간 점이 그렇다.

영화는 기억 속에 묻혀갈 그때 그 사건을 환기시켜 정면승부를 건다. 수용하는 이의 정치적 견지에 따라 영화에 대한 판단도, 묘사와, 그 강도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겠지만 머지않은 과거를 환기시켜 우리와 맞대면시킨다는 점, 그 한 가지 의의로도 충분할 듯싶다. 정치적 태도를 갖는 것조차 망각한 이들이 얼마나 발길을 향할지는 미지수지만, 영화를 보며 나름의 태도를 견지하고 현대사로의 관심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호기일 테고.

시대에 휩쓸려 영문도 모른 채 비운으로 스러져간 이들이나, 길고 긴 고난을 겪고 아직까지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그러나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을 위한 진혼제 정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말이다.

다분히 통렬한 조소로 청산치 못한 본령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될 영화는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간간이 지나치는 시대상의 환기로나, 그 때 그 사람이 어떻게 지금의 이 사람이 되어 왔는가를 생각하게끔 하는 것 등에서 말이다.

관객들의 ‘상상’에 맡겨진 3분50초에서 우린 헛된 망령이 지배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듯싶다. 홍보효과와 생각할 여지를 마련해줄 것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아이러니를 발견해 본다.

※블로그(http://lunamoth.biz)에서 ‘lunamoth’님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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