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가 21일 막을 올리기까지 사흘 동안의 줄다리기는 남측 보수·기득권집단과 북측의 기묘한 공조관계를 보여줬다.

북측이 8·15기념집회에서 인공기를 불태운 것을 ‘체제모독’으로 몰아 유니버시아드 대회 불참을 시사한 것은 18일이었다. 이어서 19일 노무현 대통령이 유감표명, 북측이 이를 받아들였고, 이튿날인 20일 북의 선수단이 왔다. 북의 ‘유니버시아드 불참시사’에 대해 조선일보(19일자)는 <남 보수세력 견제하며 새정부 길들이기인듯>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이 제목은 그러나 “대남 길들이기 전술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는 출처불명의 해석을 애써 노무현 정부에 관련시켜 확대 해석한 것이다. 북측이 ‘체제모독’을 걸고 나온 것은 핵협상에서 체제보장을 핵심쟁점으로 제기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북측은 동시에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임을 보여줘야 할 입장에 서있다. 결국 북은 남측 보수세력의 인공기 소각으로 ‘체제보장’의 강경시위를 하는 기회를 얻고, 유니버시아드대회 참가의 기회도 놓치지 않은 2중의 성과를 거뒀다. 남측 수구·기득권 집단과 북측의 전술적 공조관계를 보여준 것이다. 한나라당도 노무현 대통령의 유감 표명이 “북한의 입장만 대변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북측의 유니버시아드 참가 통보를 “환영한다”고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입장표명이다.

이러한 역설적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은 눈 딱 감고 편파언론을 일삼는 신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촛불시위를 ‘반미’로 몰고, 대북송금의혹을 방편삼아 6·15공동선언을 범죄로 몰아붙이려 했다.

목소리 큰 기득권의 소리

이처럼 지금 이 나라는 수구·기득권 집단과 비기득권 집단이 맞서있는 싸움터가 됐다. 이 싸움에는 여론을 과점지배하는 거대신문들이 일방적으로 기득권 집단에 편드는 형태로 가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회를 지배하고, 여론을 과점지배하는 기득권의 목소리가 크다.

‘걸어다니는 과점신문들’의 주장과 논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큰소리를 내고 있다.
두 차례 연거푸 대통령 선거에 패배한 기득권의 소리가 ‘다수국민’의 소리를 누르는 모순된 현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이 나라를 멍들게 하고 있는 고뇌의 원천이다.

필자는 지난 14, 15일 ‘안티조선’의 고장 충북 옥천에 다녀왔다. 제1회 옥천언론문화제 주최측 초청으로 ‘안티조선’의 현장을 내 눈으로 볼 생각이었다. ‘안티조선’을 지지하건 반대하건 옥천을 보지 않고 오늘의 한국언론을 이해하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필자는 생각해왔다.

다만 ‘제3자의 입장’을 견지하자는 뜻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주최측 요청도 끝내 사양했다. 인구 6만의 조용한 소도시 옥천읍은 기득권이 지배하는 망망대해 속에 떠있는 작은 섬과도 같았다. 37년 기득권 집단, 그리고 그들과 유착돼있는 거대 신문들에 포위된 하나의 점(點)이었다. 그러나 옥천이 과연 대한민국 땅인지 믿어지지 않을만큼 아예 딴판의 세계였다.

“목표는 천일잔재 청산”

언론문화제가 열려 사람들이 북적대는 이틀동안 공설운동장 옆의 관성회관과 야외공연장 입구에서는 푸른 얼룩무늬 유니폼을 입은 해병전우회 회원들이 ‘안티조선’을 위해 현장정리를 하고, 경찰관들이 교통정리를 하는 도시.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언론개혁’을 말하고, ‘언론개혁’을 붓으로 쓴 깃발들이 줄져 서있는 행사장. 그동안 단편적인 사건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던 옥천은 처음 보는 별천지였다. 그 옥천에는 ‘안티조선’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오한흥 씨가 있었다. 올해 45세의 그가 ‘안티조선’에 나선 것은 3년전인 2000년 8월. 그는 “친일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운동에 나섰다고 했다.

그 결과 이제 옥천에서의 조선일보 판매부수는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수지타산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옥천의 ‘안티조선’은 이 나라 최초이자, 성공한 언론소비자운동이다. 거대신문이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옥천은 하나의 실험실이자, 조용한 혁명의 현장이다. 그러나 언론과 연구자들은 그에 걸맞는 관심을 보여주지 못했다. ‘안티조선’은 개인적인 지지·반대를 떠나 하나의 놀랄만한 ‘사건’이다.

충북 내륙 인구 6만의 소도시에서 일어난 이 ‘미디어 혁명’은 세상을 지배하는 언론매체의 힘과 그 한계를 아울러 생각게 하는 놀라운 이변이다.

정경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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