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지구의 가장 뜨거운 지점은 디지털 지구, ‘메타버스’일 것이다. 개인부터 학교, 관공서와 기업까지 저마다 ‘현실의 확장판’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다. 어느 유명 래퍼는 메타버스 공연으로 단 3일 동안 1년치 수입의 3분의 1을 벌었다고 하고, 비대면 시대를 맞아 졸업식과 입학식을 메타버스에서 열기도 한다.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 ‘마인크래프트’를 모르면 유행에 뒤처지는 사람 취급받는다. 당장이라도 네이버Z ‘제페토’나 SK텔레콤 ‘이프랜드’에 사무실 하나쯤은 만들어둬야 할 기세다. 

메타버스는 뜨거운 화제인 동시에 새로운 금맥이다. 게임 공간부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같은 혼합현실(XR)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게임을 아우르는 거대한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언론 보도도 연일 쏟아진다. 국내 기사에서 메타버스 시장을 얘기할 때 단골처럼 인용하는 자료는 두 곳이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컨설팅(PwC)이다. 기사에 소개된 주요 대목을 발췌해 보자.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올해 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를 460억 달러(약 53조원), 2025년에는 2800억 달러(약 322조원)로 전망했다.” 

“PwC는 메타버스 핵심 기술인 가상융합기술(XR) 시장이 2025년 4764억 달러(약 548조원)로 성장한다고 내다봤다.”

원화로 환산한 금액은 조금씩 다르지만, ‘2025년 2800억 달러’(SA), ‘2025년 4764억 달러(PwC)’란 수치는 모든 기사가 동일하다. 두 시장조사업체의 보고서 원문에서 발췌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지목된 시장조사업체, “그런 보고서 없다”

문제는, 국내 주요 기사들이 ‘메타버스 시장 규모'의 근거로 내세운 SA의 원본 보고서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SA 자료를 근거로 ‘메타버스 시장은 2025년 28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라고 보도한 기사는 조선·중앙·동아·매일경제·한국경제 등 주요 일간지를 비롯해 KBS·한국경제TV 등 방송사, 국내글로벌 기업 블로그경제경영서적에 이르기까지 100건이 넘는다(구글 검색 기준). 이 자료는 때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반복된다. 그렇지만 이 수치가 어디서 나왔는지 원본 보고서를 밝히거나 링크로 연결해둔 기사는 한 건도 없다. 영문 웹문서를 검색해도 관련 수치가 제시된 보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메타버스 시장을 ‘2025년 2800억 달러’로 보도한 주요 기사들(구글 검색 기준).
▲메타버스 시장을 ‘2025년 2800억 달러’로 보도한 주요 기사들(구글 검색 기준).

출처로 지목된 SA도 보고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SA 한국사무소 박수진 이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자들로부터 비슷한 문의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어떤 자료를 인용했는지 우리도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박수진 이사는 “메타버스를 다룬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보고서는 아직까지 없었다”라며 “기자들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블로그나 페이스북 포스트, 뉴스룸을 보고 인용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해당 기사에 인용된 수치는 아직까지 우리도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따로 언론사에 보고서를 공유하지는 않고 있으며, 숫자에 대한 확인 요청이 들어오면 보충 자료를 제공하는 경우는 있다”라고 덧붙였다. 요컨대 SA 쪽에서 공식 채널을 통해 언론사에 공유한 메타버스 시장 관련 자료는 없다는 해명이다.

엉뚱한 보고서 ‘뻥튀기·복붙’으로 유령 시장 만들어

그렇다면 ‘메타버스 시장=2025년 2800억 달러’란 등식은 어디서 나왔을까. 짐작할 만한 자료는 있다. SA가 지난해 6월 발행한 ‘Short and Long Term Impacts of COVID-19 on the AR and VR Market(코로나19가 AR과 VR 시장에 미치는 장·단기 효과)’ 보고서를 보자. 비즈니스와이어는 이 자료를 근거로 AR과 VR 헤드셋을 포함한 XR 하드웨어 시장이 2025년엔 280억(28B)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수치가 국내 기사에 인용되며 ‘메타버스 시장’으로 바뀌고 예측 규모도 10배인 ‘2800억 달러’로 뻥튀기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볼 수 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코로나19가 AR과 VR 시장에 미치는 장·단기 효과’ 보고서 속 XR 시장 예측 그래프(출처 :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코로나19가 AR과 VR 시장에 미치는 장·단기 효과’ 보고서 속 XR 시장 예측 그래프(출처 :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XR 헤드셋’과 ‘메타버스 시장’은 엄연히 다른 범주다. 우리가 메타버스를 얘기할 때 흔히 드는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 제페토나 이프랜드 같은 플랫폼은 XR와는 무관하다. 단순히 ‘XR 헤드셋’과 등치하기엔 범위도 넓고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장이다. 페이스북이나 스페이셜 같은 기업이 VR나 AR 기반의 업무 환경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이는 메타버스란 큰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다. 

SA와 함께 등장하는 PwC 자료는 그나마 수치는 정확히 인용하고 있지만, 이 역시 ‘메타버스 시장’으로 치환하기엔 무리가 있다. 국내 기사가 단골로 소개하는 시장 전망 수치는 2019년 발간한 ‘Seeing is Believing(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보고서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AR와 VR는 비즈니스와 경제를 어떻게 바꾸는가’란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보고서는 엄밀히 말해 메타버스가 아니라 ‘AR·VR 시장’을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세계 AR·VR 시장 규모는 4764억 달러에 이르며, 이 가운데 AR가 3381억 달러, VR는 1383억 달러 규모를 차지할 전망이다. 보고서는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8개국별 시장 전망과 전체 시장 규모를 미국 달러와 영국 파운드화 기준으로 분석해 놓았다. 제조 및 서비스업, 유통업, 헬스케어 등 산업 분야별 전망치도 제시돼 있다. 

▲PwC가 2019년 발간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보고서 일부. (출처 : PwC)
▲PwC가 2019년 발간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보고서 일부. (출처 : PwC)

하지만 이 역시 AR와 VR 기반 산업 전망일 뿐, 메타버스 시장이라고 부르기엔 영역이 다르다. 해당 자료를 인용한다면 ‘메타버스 시장’이 아니라 ‘AR·VR 시장 전망치’라고 정확히 표기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보고서 외에 국내 주요 기사들이 소개하는 ‘메타버스 시장’ 자료는 아직까지 PwC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시장 범위에 대한 합의 선행돼야

애당초 메타버스 시장을 전망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란 지적도 있다. ‘메타버스’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엔 그 범위조차 아직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메타버스가 만드는 가상경제 시대가 온다’를 쓴 최형욱 라이프스퀘어 대표는 “메타버스라고 부르는 현상 안에는 AR, VR, 클라우드, 디지털트윈,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다양한 기술들과의 관계가 존재하며 영향을 미치는 산업의 스펙트럼 또한 매우 넓다”라며 “메타버스 관련 산업의 시장규모는 어떻게 범위를 정의하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고 너무 광범위하기에 사실상 이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최형욱 대표는 또한 “해외 시장조사기관에서는 ‘AR·VR 관련 하드웨어 시장’이나 ‘가상현실 콘텐츠 시장 규모’ 등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국내 언론에서 이를 맥락 없이 가져다가 메타버스 시장 규모라고 소개하는 식으로 책임 없는 시장 예측을 남발하고 있다”라며 “메타버스가 잠재성과 기회가 큰 시장 트렌드임은 분명하기에, 더욱 근거와 논리를 기준으로 이 변화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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