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사이에서 공정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그와 함께 오용 당해왔던 능력주의 얘기도 모습을 감추고 있다. 애초에 ‘능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세상의 수많은 변수를 담아내기엔 너무도 작은 그릇. 그저 게임처럼 상대방의 능력치가 눈에 보이는 세계관에서나 통할 법한 신기루일 뿐이다. 그럼에도 타인을 간단하게 규정하고 줄 세우고픈 욕망은 아직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계층과 계급을 나누려 하는 이 일련의 시도들은 청년들의 노동담론에 이미 깊숙하게 침투했다. 그 부작용은 현재진행형이다. 명문대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를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이외의 모든 직업을 시장에서 지워버렸다. 전체 상위 20%밖에 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가 과대표 되면서 자연스레 지방의 청년 또한 배제 당했다. 하여 지방 청년 노동자로서, 공정의 그림자에 가렸던 경남권 노동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모든 게 부족하다

스무 살 무렵엔 또래 여성들과 만날 일이 꽤 있었다. 그때 알게 된 열다섯 명의 지인 대부분이 수도권에 자리 잡았고, 창원에 남은 이는 두 명밖에 없다. 그나마 둘마저 직장인이 아니라 공무원 고시를 위해 고향에 계속 머무는 상황. 제조업 비중이 큰 창원엔 번듯한 여성 직장이 별로 없다. 대기업 제조 회사의 젊은 사무직 대다수는 비정규직이고, 간혹 보이는 정규직 여성 엔지니어는 대체로 타지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직업교육 역시 제조업 위주. 기계, 용접, 전기, 전자 등으로 편중되어 있다. 코딩이나 디자인, 게임 개발 같은 교육을 받기 위해선 최소한 부산으로 가야 한다. 교통망 역시 미흡하기 짝이 없다. 자차가 없는 사회 초년생들은 같은 구 안에 있는 직장조차 쉬이 못 고른다. 특히 지방엔 상당히 많은 공장이 면 단위 지역에 존재하는데, 이 경우 대중교통으로의 접근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토록 말 많은 ‘지옥철’마저 지방인들에겐 사치에 겨운 비명으로 들린다.

▲ 사진은 지난해 12월7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모습. Ⓒ 연합뉴스
▲ 사진은 지난해 12월7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모습. Ⓒ 연합뉴스

기회의 계단은 무너져 있다

어떻게 취업을 하는 것까지 성공해도 대다수의 미래가 암담하다. 좋은 지역 일자리는 일부 지역 공기업을 제외하면 모두 전국 단위로 경쟁해야 한다. 여기서 밀려난 지방 청년들의 중간 다리는 없다. 예전에는 흔히 “대학 가지 말고 기술 배워라.”라는 말로 대표되는 ‘대기업 직영 생산직’이라는 차선책이 있었지만, 현재 창원 대기업 대다수가 직영 생산직을 채용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 바로 아래 중견기업 내지는 강소기업은 사실상 일반 ‘좋소’와 다를 바 없다. 힘겨운 노동, 최저임금의 챗바퀴, 사실상 없다시피 한 복지, 한 쌍으로 붙은 잔업과 특근, 인정받지 못하는 경력과 폐업의 공포 속. 절반은 그 삶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절반은 저항 끝에 공무원 시험 내지는 유망 자격증 공부, 혹은 공과 대학 신입생으로 U턴하는 선택지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조차 시효기간이 존재한다. 20% 직업 세계의 성 안에 들어가기 전에 나이가 차거나 혹은 부모님의 경제 여력이 떨어지는 순간. 기회의 계단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선순환 굴레를 만들어야

작금의 경남권 노동의 문제점을 요약하자면, 상당수의 일터가 사실상 아르바이트와 큰 차이점이 없고, 그나마도 대체로 남성 친화적이라는 점이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선 당연히 좋은 일자리부터 많이 유치해야 한다. 그리하여 지역 전체에 교육 – 고용 – 임금 간의 끊어진 순환을 이어야 한다. 양질의 교육. 지속적인 고용이 가능한 환경. 숙련증가에 따른 임금상승 구조가 완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좋은 일자리에 걸맞은 숙련 인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것. 이를 위해 현재 따로따로 끊어져 있는 세 가지 정부 정책. 내일배움카드와 내일채움공제, 일학습병행제의 통합 운영 모델을 제안하고 싶다. 노동 시장에 진입하려는 청년에게 기초 직무 교육 기간을 거쳐 현장에 투입. 2년이나 3년 정도의 근속기간을 유지할 수 있는 공제를 운영하면서, 그 기간 동안 업무와 학습을 통해 숙련인력으로 거듭나는 식이다. 물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선 기업의 동의를 얻고, 관료를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 터이다. 하지만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가 극심해진 지금. 국가가 지방 청년의 삶에 보다 적극 개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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