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31일 ‘예술인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한민국은 직업으로서 예술인의 가치와 권리를 법률로 보장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에 발맞춰 음악인 단체인 뮤지션유니온은 지난 5~7월 ‘정책연구 릴레이 포럼: 음악같이, 음악가치’를 열고 코로나19 시대를 지내며 일자리 위협과 생활의 불안정에 시달리는 음악인의 삶을 드러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포럼 논의 내용을 기획 연재한다. -편집자 주

#1. 수년 전, 어느 구청의 문화예술 소관 부처와 미팅이 있었다. 중간 간부쯤 되는 인물이 “이번에 구청에서 만드는 축제에 홍대 인디밴드들 재능기부 좀 하시죠?”라는 말을 너무 쉽고 자연스럽게 꺼내는 바람에 동석한 씬 관계자들의 공분을 산 기억이 있다. 축제에 공연을 요청하는 건 엄연히 섭외다. 섭외에는 응당한 대가, 출연료가 지불돼야 한다. 물론 아티스트가 무료 공연을 열 수도 있다. 재능기부는 바로 이런 자발적 선의에서 비롯한 것이어야 한다. 무례한 재능기부 요청은 인디 음악가 활동에 대한 노동 감수성이 바닥임을 드러내는 참담한 사례라 하겠다.(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2. 10여년 전, 유명 음악 페스티벌에서 일종의 서브 스테이지 공연 참가자를 공모로 모집했다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나름 국제적 페스티벌이었고 기획 주체 또한 홍대 씬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인물이라 그 공모에 다수의 뮤지션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기억한다. 페스티벌 장소는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여 거리의 경기도 모처였는데, 주최 측이 공모 선정팀들에 출연료도 아닌 교통비 명목으로 팀당 10만원을 지급하겠다며 일반적으로 통보를 날린 것이 문제가 돼 공론장이 만들어졌다.

▲사진=뮤지션유니온
▲뮤지션유니온 조합원들이  서울 정동길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버스킹 공연을 열고 있다. 사진=뮤지션유니온

만약 공모 단계에서 이런 내용이 공유되고 조율됐다면 크게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페스티벌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서울 기준 왕복 차비에도 모자란 금액을 통보한 건 참가팀들에 너무나 모욕적인 조치였다. 마치 큰 무대에 한번 세워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하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뮤지션과 스태프에 대한 이 페스티벌 기획자의 불합리한 대우와 문제 사례가 여럿 밝혀지면서 음악 씬 전반의 노동 감수성을 되짚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두 가지 사례는 모두 음악가 활동을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그 가치를 자의적으로 평가절하한 경우다. 이 사례 말고도 음악활동의 노동, 음악가의 노동자성을 무시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이건 왜 문제가 되고,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 사태로 드러난 장르 차별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 사태를 겪으면서 대부분 자영업자가 심각한 타격을 입은 가운데 공연계 피해 또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대중음악 분야에만 적용되는 과도한 규제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클래식, 뮤지컬 등 다른 음악 장르 공연의 허용 범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과도한 규제는 대중음악 공연계 전반을 고사 위기로 몰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제껏 한국사회 기저에 깔려 있는 예술에 대한 이중적 인식이 겉으로 드러난 사례라 하겠다. 즉, ‘순수·고급예술-대중·상업예술’이란 단편적 잣대로 구분하는 구태의연한 시각이 그 배경이다. 21세기에서 20년도 더 흐른 시점의 한국은 아직도 예술에 ‘끕’을 매기고 위계를 만들어 줄 세우는 구태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다.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다 못해 파괴하는 지경에 이른 현대 예술의 흐름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사진=unspalsh
▲사진=unspalsh

노동에 대한 이중 잣대

이중 잣대는 경제·노동 영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경제활동인구 중 자영업자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영업자 대부분은 고용인 위치를 점하고 사장이란 호칭으로 불리지만 현실은 임금노동자보다 더 열악하다. 허울 좋은 사장님이라는 미명 아래 자기 착취를 이어가며 폐업 한계선 근처에서 안간힘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화물차 운전기사, 배달앱 노동자, 퀵서비스, 보험설계사 등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동자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소위 특수고용노동자들도 이 사회가 가진 노동과 고용의 이중 잣대로 희생 당한다. 소상공인 자영업자인 사장님들의 노동은 형식적으로 고용인으로 정의되기에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특수고용노동자들 또한 개인사업자로 정의되고 분류되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더 많이 원한다면 일한 만큼 수입을 얻어갈 수 있다는 단 한 가지 메리트로, 그들이 겪는 수많은 불합리가 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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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유니온의 2017년 2월 노동조합 설립신고 기자회견. 사진=뮤지션유니온

예술가의 자발적 노동은 노동이 아닌가

최근 뮤지션유니온 연속 포럼을 준비하면서 현재 한국 음악, 예술 노동에 관한 법제도들을 들여다보니 대부분 노동 기준을 예술행위의 자발성에 두고 있음을 알았다. 쉽게 말하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 그것은 노동이라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건 그간 뮤지션유니온에서 목소리를 높여온 음악노동의 가치, ‘우리의 일은 음악입니다, Music is Work’ 캠페인에서 지적해온 부분이다. 자발적 선택에 의해 시작하게 됐다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일이 아니라고 규정해선 안 된다. 이 이중 잣대는 결국 사회의 노동에 대한 인식 수준을 낮추는데 일조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 임금노동자의 노동,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자기 착취에 가까운 노동, 개인사업자 지위를 가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 남들이 볼 때 자기가 좋아서 마냥 즐겁게 살고 있을 법한 예술가의 노동 모두 똑같은 노동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여러 군의 삶들 중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삶이 없듯 모든 노동이 똑같이 가치 있다. 예술가들이 스스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영위한다고 해서 삶의 만족도나 행복지수가 특별히 더 높지 않으며, 나름의 일상과 애환과 고뇌가 존재한다.

예술가, 음악가의 노동이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예술활동과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는 것임과 동시에 나아가 다른 삶을 사는 인간의 다양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이해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뮤지션유니온이 외치는 ‘Music is Work’라는 슬로건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순간이 올 때 우린 수많은 편견과 차별이 사라진 사회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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