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1 마지막 화까지의 반전과 결말이 모두 포함된,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또한 드라마에 대한 해석은 기자 개인의 견해입니다.

‘오징어 게임’(연출·각본 황동혁, 싸이런픽쳐스 제작)의 승자와 패자는 계속해서 뒤바뀐다. 승자인 줄 알았던 사람은 패자로 바뀌고 패자일줄 알았던 사람은 가장 강력한 강자였다. 모든 회차를 보고 나서야 게임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의 기본 설정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에 참가한 인생 막장들의 이야기다. 서바이벌에 참가할 수 있는 조건이 ‘인생 막장’이다. 자동차 공장을 다니며 멀끔하게 가정을 꾸렸던 기훈(배우 이정재)은 해고 위기에 내몰리고 파업에 참여한 후 백수가 된다. 아내는 재혼하고 새아빠와 미국으로 가는 딸에게 제대로 된 선물도 주지 못한다. 당뇨병에 걸린 어머니에게 수술비를 줄 수 없는데도 도박에 빠져버린 무능력한 인간이다.

기훈과 같은 쌍문동에서 자랐지만 기훈과 달리 동네의 자랑이었던 상우(배우 박해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증권사에서 일했다. 그러나 기훈과 같이 목숨을 건 ‘오징어 게임’에 참가해야 할 정도로 빚을 지고 말았다. 잘못된 증권 거래를 하면서 60억의 빚을 지고 어머니의 가게마저 넘어갈 판이다.

▲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사진출처=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예고편 갈무리. 

그 외 북한에서 넘어와 동생을 보육원에 맡길 수 밖에 없었던 새벽(배우 정호연)은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어머니를 다시 북에서 데려오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조폭 덕수(허성태)는 필리핀 조폭에게 빌린 빚을 감당하지 못해 쫓긴다. 파키스탄에서 온 알리(배우 아누팜 트리파티)는 ‘사장님’에게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사장을 다치게 하고 도망나온다. 456명의 참가자들은 각자의 막장 인생의 마지막 반전을 꿈꾸며 게임에 참여한다.

극 초반 매우 잔인한 룰을 알고 인생 막장들은 탈출을 하지만 거의 대부분 다시 돌아온다. 서바이벌 게임보다 더욱 잔인한 현실 때문이다.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1등이 되면 456억원을 받는다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지만 잔인한 현실에는 단 한줄기의 희망도 없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했던 시시한 게임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모양대로 먹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에 목숨을 거는 이유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냉정한 게임 진행자들은 모든 게임이 공정하다고 강조한다. 마치 현대 사회처럼 말이다. 모든 것이 ‘공정’하게 돌아간다는 서바이벌 게임이라지만 초반부에는 힘이 센 사람, 게임 종목을 먼저 알게 된 사람이 이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공정’을 그렇게 강조하는 세상이지만 부당 거래는 진행되고 묵인되며,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는다. 노인과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은 ‘공정’하다는 게임에서 쉽게 약자가 된다.

▲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힘이 센 조폭 덕수가 이끄는 강자들의 모임은 많은 게임을 쉽게 이긴다. 재미있는 점은 극 초반 외국인 노동자로 사회에서는 약한 지위에 속했던 알리도 힘이 센 모습을 보이면서 게임에서 이긴다는 것이다. 이런 장면은 ‘공정’이라는 이름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약육강식과 함께 약자도 공정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는 사례. 알리의 승리는 마치 ‘수능 정시’나 ‘사법 고시’와 같은 제도에서 만들어진 ‘개천에서 난 용’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그 승리는 오래가지 못한다.

오징어 게임을 만든 호스트와 이를 관람하는 VIP들은 ‘사람이 돈 앞에서 얼마나 추악해지는가’를 지켜본다. 호스트와 VIP가 ‘인생 막장’들을 두고 실험하는 것은 ‘결국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그들이 만든 가설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
▲오징어 게임을 관람하는 VIP의 모습. 

호스트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게임은 ‘구슬치기’다. 구슬치기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자신과 함께 싸울 팀원으로 고른 사람을 상대로 싸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는 자신의 부인을 죽이고, 상우는 자신을 믿고 따르던 알리를 죽이고 살아남는다.

모든 게임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고 정의를 지키려했던 기훈 역시 결국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노인 일남(배우 오영수)을 속인다. 일남은 ‘역시 너도 어쩔 수 없구나’를 확인한 듯 기훈에게 자신의 마지막 구슬을 넘기며 기훈을 이기게 해준다.

단순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펼쳐지며 ‘이게 현실인가?’라고 회의를 느낄 때 드라마 중반부는 승자와 패자를 뒤바꾼다. ‘강한 남자’에게 붙었다 배신을 당한 미녀(배우 김주령)는 그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해 게임을 할 수 없게 되버린다. 미녀가 당연히 처형 당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오히려 ‘깍두기’로 힘들이지 않고 게임에서 이겨버린다. 이후에도 미녀는 자신을 배신한 조폭 덕수와 함께 동반자살을 하며 덕수에게 복수한다. 다리 건너기 게임에서 기훈은 마음이 약해져 ‘1번’을 양보했기에 순번이 꼴찌가 되버리는데 그 때문에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다. 

▲
▲상우와 상우를 믿고 따르던 알리, 그 뒤로 미녀가 게임에 참가하려고 걸어가는 모습. 

이런 ‘승자 뒤집기’를 통해 감독은 ‘진짜 승자는 누구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감독이 말하려는 ‘진짜 승자’는 마지막 남은 3인의 공통점에서 예상할 수 있다. 마지막 게임을 앞둔, 최후의 3인은 기훈, 상우, 새벽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서바이벌 게임을 나가서 무엇을 할지’가 뚜렷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각각 병든 노모를 병원에 모시고 딸에게 선물을 줘야 하고, 빚을 갚아 어머니 가게를 지켜야 하고, 보육원에 맡긴 동생을 돌봐야 할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좋은 대학을 나왔든 아니든 힘이 세든 약하든 이들은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이 게임에서 살아남았다는 세계관이다. 다만 이 드라마에서 약자를 대표하는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장면이나 대사도 지적받고 있기도 하다. 미녀가 자신의 질에서 숨겨온 담배를 꺼내는 장면이나 덕수와의 성관계 장면, 오징어 게임의 직원들이 빼돌린 시체를 성폭행했음을 암시하는 장면, 외국인 노동자 알리가 상우에게 쉽게 속는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경주를 이기는 것은 뚜렷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에피소드가 ‘구슬치기’에서 새벽이 살아남은 과정이다. 지영(배우 이유미)는 아무도 자신을 선택해주지 않은 세상에서 상처받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막장 인생이다. 직전 게임에서 자신을 선택해준 새벽에게 지영은 ‘이 게임에서 이겨도 갈 곳이 없다’며, “나랑 같이 해줘서 고마워”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새벽에게 승리를 넘긴다. 이 게임에서 이기려면 ‘왜 이겨야 하는지’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마지막 승부는 어떤가. 마지막 게임에서 최강체로 보였던 ‘서울대 엘리트 남자’인 상우도 상대적으로 약체로 보이는 주인공 기훈에게 패배 당한다. 서울대 출신으로, 남들이 수다를 떨 때도 “그런 옛날 생각하지 말고 이길 생각이나 해”라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캐릭터로 설정된 상우는 왜 기훈에게 패배하는걸까.

▲
▲게임 내내 인간적인 면모와 정의를 지키려는 기훈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현실적 전개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상우는 이 게임을 포기하려는 기훈을 막기 위해 스스로 죽는 선택을 한다. 이전에도 게임을 포기할까봐 새벽을 죽인 상우다. 자신이 죽지 않으면 기훈은 이 게임을 포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모은 상금도 사라지게 된다. 상우는 돈을 위해 동료의 목숨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경주마였다. 물론 자신이 무시했던 가치관을 가진 기훈이 마지막 순간 오히려 자신을 살려준 것에 승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극 후반부는 ‘최고의 경주마’ 상우의 패배와 ‘최악의 경주마’ 일남이 이 게임의 호스트였다는 뒤집힌 승패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가장 마지막 순번인 456번 기훈이 이 게임의 승자가 되는 것도 계속되는 ‘뒤집기’의 일환이다.

최악의 경주마로 여겨졌던 일남이 사실상 승자였고, 오히려 사람들이 그토록 잔인하게 매달렸던 돈은 쓸모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일남은 돈을 굴리는 사람으로 너무나 많은 돈이 있지만 세상의 모든 재미를 잃어버렸고 그의 고객들도 재미를 잃어버린 것은 마찬가지여서 이토록 잔인한 살인 게임을 만들었다.

▲
▲오징어 게임 마지막 반전을 장식하는 캐릭터 일남. 

사실 일남이 이 게임의 호스트였다는 점을 감독은 계속해서 관객에게 알려준다. 게임 속 1번으로 참가한 사람이며 이름이 일남인 점, 참가자를 죽이면 게임에서 이기지 않아도 상금이 늘어난다는 점을 알고 벌어지는 잔인한 난투극에서 일남이 ‘그만해’라고 소리치자 불이 켜지며 오징어게임 직원들이 난투극을 멈추는 점, 구슬치기에서 기훈에게 승부를 넘기자 프론트맨이 ‘게임이 즐거웠느냐’고 묻는 점 등이 그 복선이다.

일남은 돈이 많아서 재미를 잃었고, 돈이 있어도 건강을 되찾을 수 없었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노인이다. 사람들을 그토록 잔혹하게 만든 ‘돈’은 아무것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캐릭터다. 

이처럼 오징어 게임은 돈만 쫓고 달리는 경주마들에게 ‘경주 이후’를 묻는 드라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잔인하게 경주를 하느냐’고 묻는다. 그 목적이 뚜렷한 경주마들은 타고난 조건이 불리해도 승리를 거머쥐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 게임의 최종 승자는 ‘경주마’이기를 포기하고 매 순간 ‘사람’이기를 외치는 기훈이다.

드라마의 결말에선 일남이 기훈과 벌이는 마지막 게임이 담긴다. 이 게임은 길에서 얼어 죽어가는 노숙자를 밤 12시 이전에 누군가 구할 것이냐를 두고 내기를 건다. 12시 직전에 노숙자는 한 행인이 부른 경찰차에 의해 구조되고 기훈이 또 한번 승리한다. 그러나 일남이 구조된 노숙자를 보고 숨을 거뒀는지, 보지 못하고 숨을 거뒀는지는 열린 결말이다. 결국 ‘최선의 경주마’가 아닌 ‘탈주한 경주마’가 이기는 이 드라마를 믿을 것이냐 믿지 않을 것이냐는 시청자의 몫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