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 출신의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가 ‘신문과방송’ 9월호 커버스토리 ‘선악 대결 선동하는 언론’이란 제목의 원고에서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이념적‧정치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언론은 스스로 정당의 구실을 한다. 그래서 정당의 방식으로 사실을 다룬다”면서 “한국 언론의 정치 보도는 정치적 선전과 비슷한 작법을 택해왔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선거철마다 일종의 ‘내전 상태’를 경험한다는 설명이다. 

안수찬 교수는 “다당제인 유럽에선 의견과 주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파적 언론이 보편적이다. 다당제의 정치적 경쟁은 권력 분점과 연립 정부로 귀결된다. 개별 언론이 정파적이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다원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당제가 정착한 미국과 영국에선 사실 중심의 객관주의 언론이 자리 잡았다. 양당제 선거는 권력 독점을 불러온다. 이런 대결 구도에서 언론마저 균형을 잃으면 공론장은 붕괴할 것이다. 불편부당성을 내세운 영국 BBC나 미국 뉴욕타임스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존중의 근원이 여기 있다”고 전했다.

반면 사실상 양당제인 한국에서의 언론은 다분히 정파적이라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정당과 구분되는 역할을 정립하지 못한 한국 언론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실을 왜곡‧조작‧축소하는 정치 프로파간다의 문법으로 취재 보도 활동을 펼쳐왔다. 이로부터 공통의 정치적 이익을 나누는 정당과 언론의 진영 논리가 형성됐다”면서 “한국 언론의 정치 프로파간다는 ‘상대편을 절멸하려는 선악 구도의 정파성’으로 변화해왔다. 이러한 감정적 정파성은 양대 정당과 친연성을 발휘해 기왕의 진영논리를 더욱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고도의 정파적 이익이 걸린 의제만 부각되고 실재하는 사회적 갈등은 축소되거나 가려진다. 전 국민이 어떤 방식으로건 연관된 부동산‧세금‧복지 갈등이 정치화되지 않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이 정치화돼 증폭되는 식”이라는 게 안 교수의 판단이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안 교수는 “한국 언론은 정치적 이전투구를 다루는 경마식 중계 보도로 악명을 쌓았지만, 이제는 하마평이나 가십 수준을 넘어 무협 소설 또는 영웅 신화 프레임으로 정치인 대결을 다루고 있다. 이는 일종의 ‘내전 상태’를 야기한다”고 우려하며 “내전 상황에서는 적을 없애는 것만이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간주된다. 한국의 정당, 언론, 극렬 지지자와 극렬 독자는 악한 무리를 색출하고 처벌하는 일종의 ‘퇴마 결사체’를 형성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이 온전히 언론만의 잘못은 아니다. 안 교수는 “한국 언론의 부당한 정파성을 한국 정당의 선악 정치와 별개의 문제로 다루면 안 된다. 선악 구도의 정파성이 정치 시장과 언론 시장에서 거둔 성공(?)으로 인해 한국 언론의 부당한 정파성이 고도화됐기 때문”이라면서 “정파적 언론은 정당 및 시장의 정파성과 연동돼 있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언론의 문제를 주로 지적했지만 진짜 원인은 정치 프로파간다 업무를 언론에 하청을 주고 손쉽게 승승장구했던 오래된 양당 체제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조선일보는 아주 오랫동안 강력한 정치 행위자였는데, 그래야만 언론사가 돈을 번다는 학습 효과가 한국 언론계에 만연해있다”고 우려하며 “정파적 보도 없이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언론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누군가 입증해야 그 길을 따라 밟는 언론사들이 생겨날 것”이라 밝혔다.

안 교수는 한국 언론의 정치 보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뉴스룸 차원에서 ‘좌우의 정치 보도’를 중단하거나 크게 줄이고, ‘아래위의 정치 보도’를 확대해야 한다. 정치부 기자, 정치 지면, 정당 보도, 정치인 해설 기사를 줄이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정치인의 말을 옮겨 적는 것이 정치 기사라는 관념을 벗을 때가 됐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좋은 정치 보도는 가려진 중대 의제를 발굴해 정치를 향해 제시하는 기사”라고 강조했다. 

기자 차원에서는 “지사적 엘리트의 자의식을 덜어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안 교수는 “한국 언론계 저변에 흐르는 지사주의가 부당한 정파성과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사례가 너무 많았다. 기자들 상당수는 정치 행위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한 끝에 정계에 뛰어들어 직접 정치를 행했다”면서 “그런 기자들이야말로 언론의 자율 규제와 전문직주의를 흔들어 언론 개혁을 가망 없게 만든 주역”이라고 비판했다. 

안수찬 교수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을 제대로 보도하는 길은 정치부 기자들이 정치인의 입을 그만 쳐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기자를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활용하고 싶을 뿐”이라면서 다시금 현장에서부터의 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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