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청년을 앞세운 비정규직 정규직화 때리기 보도를 연일 내놓고 있다. 인천공항부터 마사회, 현대제철에 이르기까지 기업들이 정규직화에 따른 부담으로 채용 문을 좁혔거나 노동자 떼쓰기로 곤란을 겪는다는 주장을 폈지만, 핵심 사실관계를 빠뜨리거나 사실상 오보에 가까운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9일 1면에 “정규직 전환 후폭풍, 공기업 채용 44% 감소”란 제목의 보도를 냈다. 보도는 4면 “신의 직장, 이젠 신도 들어가기 어렵다”와 다음날 사설 “공기업 신규 채용 반 토막, ‘정규직 강제 전환’의 역설이 시작됐다”로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1면 보도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규모가 큰 상위 10개 공기업 채용 규모가 3년 연평균의 56% 수준’이라며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인건비 부담과 인력 운용의 경직성 때문에 공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소극적”이라고 했다. 기사 첫머리엔 “정규직 입사를 위해 공부해온 노력이 물거품”이란 인천국제공항공사 입사 준비생의 우려를 전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결국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줄이는 부메랑”이라고도 했다.

▲지난 9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지난 9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지난 9일 조선일보 1면
▲지난 9일 조선일보 1면

인건비 부담? 사실상 없어…“현실은 열악한 처우에 정원미달”


기사가 핵심으로 전제한 ‘인건비 부담’ 주장부터 실상과 다르다. 이들 공기업은 정규직 전환에 인건비 지출을 거의 늘리지 않았다. 이들 10곳 중 9곳은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규직 전환했다. 소속과 처우에서 직고용 정규직과 근본 차별을 두면서, ‘소속만 바꾼 외주화’란 비판을 받아온 방식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과 예산편성지침에서 정규직 전환자 인건비에 기존 기간제 인건비, 용역 사업비를 활용하도록 규정하기도 했다.

실제 이들 공기업은 기존 용역업체 경쟁입찰 방식을 자회사에 되풀이하며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지난 9일 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전력공사·인천공항공사 등 23개 공기업이 설립한 34개 자회사의 최근 3년 계약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들 모회사는 자회사 전환 이전 관행에 따른 낙찰률(예정가격 대비 낙찰가격)을 적용하고 있었다.

조선일보가 주로 언급한 인천공항공사도 마찬가지다. 인천공항공사는 2018년부터 공항운영, 시설·시스템 관리, 보안경비·검색 직군을 자회사 전환했는데 기존 용역계약 재원만을 투입했다. 신진희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국장은 “현재 자회사 신입 직원도 전환 이전과 같은 월 180여만원(세전)의 급여를 받고 있다”며 “공사가 자회사 전환 이전 낙찰률을 적용한 결과”라고 했다.

▲지난 9일 조선일보 3면
▲지난 9일 조선일보 4면

신 국장은 “이곳은 청년들이 들어오려 경쟁하는 일자리가 아니다”라고도 꼬집었다. “3조2교대로 고된 노동을 하며 겨우 200만원 정도의 돈을 받으니 자회사 정규직이란 기대를 안고 들어와도 다수가 퇴사하고, 채용 정원은 상시 미달”이라고 했다. 그는 “당초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정부는 자회사 전환을 통해 실제 ‘들어오고픈 일자리’가 만들어졌는지 돌아볼 때”라고 말했다.

반면 신규채용 축소는 민간기업에도 나타난다. 조선일보도 최근 자사 보도로 이를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500대 대기업 10곳 중 7곳이 올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국내 매출 상위 30대 기업 가운데선 3곳 중 2곳이 고용을 줄였다. 지난달 20일과 5일 조선일보 기사다.

마사회 경영난도 정규직화 탓, 정부·현장 “코로나 영향”


조선일보는 지난 8일엔 “한국마사회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원인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돌렸다. 여기서도 청년 취업을 막는 요인으로 정규직화 정책을 지목했다. “2000명 정규직 떠안은 마사회, 코로나 경영난 겹쳐 2000억 대출” 기사에서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2000명 넘게 직원이 늘었다”며 “(코로나19로) 출근하지 않고 월급 받아가는 직원이 전체의 3분의 2”라 했다. 이어 “마사회는 ‘올해도 신입 공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 취업 준비생은 사이트에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이 결국 누군가가 갈 수 있었던 일자리를 잡아먹은 것 아니냐’는 글을 올렸다”고 했다.

▲지난 8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지난 8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정부가 나서 보도를 반박했다. 고용노동부는 8일 설명자료를 내 “정규직 전환자 인건비는 가이드라인과 지침에 따라 기존 기간제 인건비와 용역사업비를 활용하도록 하며, (경영난은) 코로나19나 각 기관이 직면한 경영환경 등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김선종 공공운수노조 한국마사회지부장도 “2018년 정규직 전환 뒤 급여 인상은 최저임금·시중노임단가 인상 반영분 외에 없다”고 했다.

마사회 미화·경비·시설관리를 맡는 자회사 노동자 평균급여는 연 3000만원대로, 마사회 직고용 정규직의 3분의1 수준이다. 김 지부장은 “자회사 구조 자체가 노동자 처우 개선 논의를 막는 문턱이자 빌미로 작용하는 실정이다. 모회사 기준이 아닌 자회사 내에서만 비교하도록 유도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제철 직고용 요구에 “불법점거” 낙인, 불법파견 지워


청년을 내세운 비정규직 때리기 보도는 민간기업으로 이어졌다. 현대제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요구 농성에 ‘일자리를 걷어찼다’며 비난하는 보도다.

조선일보는 지난 18일 “민노총이 걷어찬 ‘4800만원+α’ 일자리에, 청년 7600명 몰렸다” 기사를 냈다. 현대제철이 협력업체 직원을 고용하려 자회사 현대ITC를 설립했는데 ‘민주노총 소속’ 2100여명은 입사를 거부하고 직고용을 고집한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초봉 4800만원에 입사 경쟁률 152대1인데, 민노총은 입사 거부하며 불법 시위”한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점거농성을 시작한 뒤부터 유사한 보도를 11건 냈다.

▲지난 18일 조선일보 3면
▲지난 18일 조선일보 3면

현장 노동자들은 해당 보도에 “모든 사태의 시작이 불법파견이란 사실을 지웠다”고 비판한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로비에서 31일째 점거 농성하는 이강근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은 “노동자들은 10년 전부터 직접고용을 요구해왔는데 현대제철이 불법파견 은폐 수단으로 자회사 카드를 들고 나왔다”고 했다.

최근 법원과 정부의 현대제철 불법파견 인정 판단이 속속 나오고 있다. 순천공장의 경우 2심 법원이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내렸고, 당진공장은 노동부가 올초 불법파견 시정지시명령을 내린 뒤 추가 근로감독 중이다. 당진공장 노동자들은 현재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한 마디로 현대제철의 패소와 직고용 판결이 예견되는 국면이다.

상황이 이런데 현대제철은 노동자들에 자회사 안을 강요하고 나섰다. 지난 1일 자회사를 설립하고 이들이 속했던 하청업체와는 계약 해지(폐업)했다. 자회사 전적엔 ‘입막음’ 조건도 달렸다. 소를 취하하고 다시 제소하지 않겠다고 동의하며 노동부 시정지시 이행확인서에 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회장은 “설령 자회사로 가도 불법파견은 저절로 해소되지 않는데 회사는 법적 다툼을 하지 말라는 강요를 한다”며 “십수년 일하고 한 달 전 문자 한 통으로 일자리를 빼앗겼다.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달 31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C지구 정문 앞에서 현대제철 자내하청 노동자 자회사 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금속노조 충남지부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달 31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C지구 정문 앞에서 현대제철 자내하청 노동자 자회사 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금속노조 충남지부

이들은 쟁의권을 얻어 파업과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지회장은 “합법적 쟁의행위인 데다 부분점거로 직원들 출입을 봉쇄하지 않았는데도 조선일보와 사측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4800만원’은 연차를 한 번도 안 쓰고 교대근무와 연장근무를 한 달 75시간 해야 나오는 계산”이라고도 했다. 이 지회장은 “본래 모든 공정이 정규직의 업무인데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점차 위험한 공정을 떠안았다”며 “현대제철이 나서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했다.

김명진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부장은 언론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다루며 청년 취업준비생을 불러내는 보도 흐름에 “가장 큰 문제는 좋은 일자리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가 아닌 시험 성패에 따른 보상으로 인식되는 점인데, 보수언론이 이 프레임을 주도하고 있다”며 “이 프레임을 바꿔 말하면 취업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이들의 일자리는 고용이 불안하고 저임금인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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