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 빌딩’ 앞에서 시끌시끌한 난장이 1시간 가량 벌어졌다. 탬버린, 양은냄비, 콩이 담긴 페트병 등 악기를 손에 든 이들이 바닥에 앉아 “탄중위를 해체하라”고 노래를 불렀다. 

‘탄중위’는 이 빌딩 13층에 입주한 탄소중립위원회다. 2050년 탄소 배출량 ‘0’(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청사진과 정책을 짜는 대통령 직속 기구다. 정부는 18개 관계부처 장관과 기후 에너지 산업 노동 분야 전문가, 시민사회, 청년 등 각계를 대표하는 민간위원 77명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는 9월에 각계 의견을 종합 반영한 탄소중립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 빌딩’ 앞에 기후정의활동가 등 시민 30여명이 모여 탄소중립위원회 해체 및 재구성을 요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 빌딩’ 앞에 기후정의활동가 등 시민 30여명이 모여 탄소중립위원회 해체 및 재구성을 요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 빌딩’ 앞에 기후정의활동가 등 시민 30여명이 모여 탄소중립위원회 해체 및 재구성을 요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 빌딩’ 앞에 기후정의활동가 등 시민 30여명이 모여 탄소중립위원회 해체 및 재구성을 요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날 모인 시민은 30여명. 기후정의운동 단체 멸종저항서울과 멸종반란한국이 주최한 모임이다. 기후정의 활동가, 진보정당 활동가들을 비롯해 대학생, 발전소 직원 등 기후 재난을 우려하는 시민들이 함께 했다. 목적은 탄중위 규탄이다. 이들은 이날 “관료·전문가로만 구성된 탄중위는 기업·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주의’는 가장 많이 등장한 구호다. 탄중위 구성부터 비민주적이라는 게 이들의 비판이다. 폭염, 혹한, 장마, 가뭄, 산불 등 자연 현상으로 나타나는 기후 위기부터 주거지가 불안정한 가난한 사람이 더 직격타를 맞고 피해 회복도 더 어렵다.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처한 장애인, 노인,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벌써 에너지 전환에 따른 일자리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런데 탄중위원엔 이런 당사자들이 없다. 노동의 경우에는 한국노총 위원장 1명이 있으나 전체 구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계 인사는 8명이다.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추형욱 SK E&S 대표이사, 김희철 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강상권 벤처기업협회장, 현준 한국시멘트협회장, 문동준 한국석유화학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이다. 

▲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 빌딩’ 앞에 기후정의활동가 등 시민 30여명이 모여 탄소중립위원회 해체 및 재구성을 요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 빌딩’ 앞에 기후정의활동가 등 시민 30여명이 모여 탄소중립위원회 해체 및 재구성을 요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실제 일자리 위기를 겪어본 발전소 노동자 남윤철씨도 탄중위를 비판했다. 남씨는 지난해 12월 폐쇄된 보령화력발전소 1호기에서 일했다. 폐쇄된 1·2호기에서 일한 이들은 총 460명 가량이다. 원청 노동자 200여명, 하청노동자 240여명이다. 하청노동자 20명 가량을 빼면 모두 3·4호기로 전환배치됐으나 수년 후 또 어떤 고용위기 바람이 불어닥칠지 알 수 없다. 

남씨는 “탄중위 시나리오를 보면 실상 노동 문제는 ‘발전소 너네가 알아서 하라’는 내용”이라며 “탄중위는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고용안정 해결할테니, 가만히 있어라’고 할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논의와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걸 막는 탄중위라면 존재 의미는 없다”고 단언했다. 

참가자들은 “민주주의 살려내” “(정부가) 민주주의 파괴해” 구호를 외쳤다. 예명 ‘탁구’ 활동가는 “77명 민간위원엔 최다 탄소배출 기업인 포스코 최정우 회장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부회장, SK E&S 대표이사 등 산업계와 기업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다”며 “묻고 싶다. 탄소배출의 주범이자 국내외 신규 석탄발전소와 LNG 발전소를 지으며 기후위기를 가속화 하는 이들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들의 삶, 우리 시민의 삶을 대변해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발언했다. 

이 이유로 직을 사퇴한 탄중위원도 있다. 청소년 대표로 임명된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운영위원이다. 그는 지난 26일 한겨레 신문 기고에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위원회에 청소년들이 옵서버로서, 미래세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의사결정 주체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며 “인간다운 삶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사회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기존 논의 틀을 깨고 시민이 직접 만드는 시민의회를 함께 만들려 한다”고 밝혔다. 

▲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 빌딩’ 앞에 기후정의활동가 등 시민 30여명이 모여 탄소중립위원회 해체 및 재구성을 요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 빌딩’ 앞에 기후정의활동가 등 시민 30여명이 모여 탄소중립위원회 해체 및 재구성을 요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기후운동진영에선 탄중위 해체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현정 녹색정치LAB '그레' 소장은 탄중위 민간위원들에게 “알리바이가 되지 말라”며 자진 사퇴도 요구했다. 정책 방향이 산업계에 편향됐음에도 ‘민주적 의견수렴’ 형식을 갖춰 정치적 책임을 덜어내려는 정부에 이용당하지 말라는 경고다. 

탄중위가 지난 6일 발표한 탄소 중립 시나리도 초안 3개는 속 빈 강정이란 비판을 받았다. 탄소 배출량 전면 감축이라는 목표에 비해 설계된 계획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3개 중 1개 안에만 화석연료 발전 전면 중단 내용이 담겼으나 추상적인 계획 수준에 그쳐 ‘탄소 중립 의지가 있느냐’는 시민사회 반발을 샀다. 

화석연료 발전 중단은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이루기 위한 기본 전제다. 이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같은 기술적인 접근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게 기후정의 활동가들의 인식이다. “정부와 기업에 대기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한 적 없다”는 근본적인 비판도 나온다. 김건수 청년시국선언연석회의 활동가는 “정권 교체 말고 체제 교체가 필요하다”며 사회 생산 구조 자체의 변화를 강조했다. 

이날 현장에 참가한 한재각 활동가는 탄중위 해체 후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시민사회에 제안하고 있다. 오는 9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치 및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결정하기까지 탄중위 해체를 목표로 공동 투쟁하자는 제안이다. 그는 탄중위가 회의 안건이나 내용을 대중에 공개하지 않아 더욱 비민주적인 기구라고 규탄했다. 

한 활동가는 “현재 탄중위는 기후지체와 기후부정의를 야기할 산업 기구 중심의 위원회고, 정부 결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비민주적인 탄중위를 해체하고 기후위기, 최전선 공동체 민중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라”고 요구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