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뉴스=저질 뉴스’라는 인식을 네이버와 언론사들이 깰 수 있을까? 포털이 양질의 기사를 외면한다는 지적에 네이버가 언론사 ‘심층 기획란’을 신설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언론사별 심층 기사를 부각하면서 좋은 기사가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일부 언론사들은 취지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포털 뉴스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언론의 자정과 포털의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버 ‘심층 기사’ 외면 인정하고 개편 나서

네이버는 지난달 29일 언론사 모바일 구독 서비스(구독판)에 ‘심층기획’란을 신설하는 개편을 했다. 네이버 언론사 구독 리스트 화면에서 언론사가 직접 배열한 ‘주요뉴스’와 함께 ‘심층기획’ 카테고리가 뜨게 했다. 언론사 구독 페이지에 접속한 경우 스크롤을 내리면 ‘심층기획’ 기사를 볼 수 있다.

포털은 그동안 언론사가 공을 들여 취재한 양질의 기사보다 정치인·유명인 발언 따옴표 기사, 자극적인 외신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받아쓰기 기사 등 온라인 대응 기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노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언론 역시 네이버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적극적으로 쓰고, 언론사 구독 ‘주요뉴스’란을 자극적인 뉴스로 채웠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 '심층 기획' 섹션 신설 예시 이미지
▲ '심층 기획' 섹션 신설 예시 이미지

이번 개편은 급작스럽게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전조’가 있었다. 앞서 네이버는 지난달 맞춤형 뉴스 추천 알고리즘(에어스) 작동 방식을 공개하면서 여러 언론사가 같이 다룬 이슈의 기사, 이용자가 적극적으로 반응한 기사를 적극 노출하는 알고리즘의 한계를 인정했다. 네이버는  “기획/심층기사가 더 많이 추천되면 좋겠다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며, 이를 보완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고 했고, 첫 후속 조치로 ‘심층기획’ 기사 섹션을 신설한 것이다.

기획해설·주요 어젠다 전면에 
일부 언론 자극적 기사·속보 배열 여전

3일 오후 기준 네이버 언론사 구독판 제휴 언론사 71곳 가운데 51개 언론이 ‘심층기획’ 성격의 섹션을 개설했다.

실제 운영 방식을 보면 주제 불문하고 ‘심층기획’ 기사를 올리는 언론사가 있는 반면 특정 코너나 기획 연재 기사를 섹션 이름으로 지정한 곳도 있다. ‘심층기획’ 섹션을 설정한 언론 51곳 가운데 31곳은 ‘심층기획’이라는 기본 이름을 그대로 썼고, 20개 언론은 다양한 섹션명을 지어 사용하고 있다. 다만, 초기인 만큼 섹션 운영 방식을 수시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섹션명을 별도로 지정한 언론 가운데는 하나의 주제나 기획연재 기사를 섹션화한 경우가 많다. 서울신문은 ‘다가온 빚의 역습’ 기획 기사를 섹션 이름으로 지정해 관련 기사들을 리스트에 올렸다. 한겨레는 ‘김수영 100년’ 섹션을 만들어 연재 중인 ‘거대한 100년, 김수영’ 기획 기사를 섹션에 담았다. 프레시안은 ‘김종철 약전’ 연재를 섹션 이름으로 지정했다. 연합뉴스는 ‘의암호 참사 1년’을 조명한 기획 기사를 묶어 섹션으로 내세웠으며, 동아일보는 아이돌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는 ‘99℃:한국산 아이돌’ 기획 기사를 전면에 부각했다.

▲ 네이버 언론사 구독판 심층기획 섹션 화면
▲ 네이버 언론사 구독판 심층기획 섹션 화면

연재 기사는 아니지만 특정한 이슈의 기사를 모아 큐레이션하는 언론사들도 있다. 시사주간지 시사IN은 ‘코로나 4차 대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섹션을 신설해 그동안 작성해온 관련 해설 기사들을 리스트에 올렸다. 서울경제는 ‘탈원전 코드 맞추기’ ‘다주택자 강화 후폭풍’ 등 섹션 이름과 관련 기사들을 바꿔가면서 올리고 있다.  

특정 코너를 섹션화한 곳도 있다. 주간동아는 투자 전문 코너인 ‘투벤저스’를, 더팩트는 탐사보도팀이 제작하는 ‘탐사이다’ 코너를, 세계일보는 ‘밀착취재’ 코너를 섹션 이름으로 지정해 관련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한국경제는 ‘기자코너’라는 이름으로 섹션을 지정해 기자들이 운영하는 기명 코너들을 다양하게 배열하고 있다.

개편 이후 전보다 양질의 기사를 배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일부 언론사들은 여전히 ‘속보’ 기사나 클릭을 유발할 수 있는 소재에 주목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중앙일보는 섹션 이름을 ‘도쿄를 즐겼다’에서 ‘도쿄가 너무해’라고 바꿔 도쿄올림픽에 대한 부정적인 이슈를 주로 기사화하고 있다. 3일 중앙일보는 해당 섹션에 “김으로 싸먹는 맛? 이게 1만6800원 '도쿄 고무버거'[영상]” “日, 이번엔 韓급식센터 딴지…후쿠시마 식자재에 안좋은 소문” 기사 등 4건을 배치했다. 4건 가운데 2건의 기사를 쓴 한 기자는 한 달 간 200건이 넘는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델타, 너 뭐냐’라는 섹션을 만들어 코로나19 델타 변이 관련 기사를 배열하고 있는데, ‘심층기획’과는 거리가 먼 ‘속보’도 올렸다.

▲ 중앙일보 언론사 구독판 '심층기획' 섹션 화면
▲ 중앙일보 언론사 구독판 '심층기획' 섹션 화면

김주성 한국일보 디지털전략팀장은 “좋은 기사를 노출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점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다만 일부 언론사들이 트래픽을 올리기 위해 활용하는 경우가 있어 자정이 필요하다. 이는 포털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주성 팀장은 “네이버 차원에서 최소 분량을 지정하거나, 업데이트 시기나 횟수를 제한하는 방식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언론사들은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 한 언론사 관계자는 “심층 기획 기사를 쓴다고 해서 독자들이 주목한다는 보장은 없다. 퀄리티 높은 기사를 쓰는 것과 동시에, 독자들이 주목하게 해야 하는데 그런 기사를 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 기사 리스트를 살펴보면 ‘심층기사’라기 보다는 비교적 내용이 풍부한 스트레이트 기사, 칼럼, 해설 기사 등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 다른 언론사 관계자는 “진짜 심층 기사를 매일 쓸 수는 없는데, 현실적으로 시간이 꽤 지난 기사를 노출하는 건 시의성을 반영하는 알고리즘의 특성상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며 “가급적 최근 기사를 중심으로 배열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알고리즘 추천 뉴스(MY뉴스)와 언론사 편집판은 분리돼 있지만, 언론사 편집판 내에서 주목을 받은 기사가 알고리즘 추천 뉴스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보니 가급적 시의성 있는 기사 위주로 배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개편은 ‘첫 단추’ 네이버의 ‘적극 노출’ 관건

전문가들은 ‘심층기획’란 신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추가적인 개선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송경재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회복한다는 측면에서 네이버가 학계, 시민단체, 현업인들의 주장을 일부 수용했다는 점에서 늦었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여전히 언론사 페이지 내부 배열에 그치는 상황이다. 포털 전면에 ‘심층 기사’가 노출되도록 랜덤으로 언론사별 심층기사를 뉴스 첫화면에 노출하는 등 활성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네이버 사옥. ⓒ 연합뉴스
▲ 네이버 사옥. ⓒ 연합뉴스

미디어 혁신 이슈를 다루는 ‘미디어고토사’를 운영하는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는 “다음 스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심층 기획 기사가 주목을 받지 못했고, 알고리즘이 심층기사에 대한 기본적인 데이터 학습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인데, 이번 기회로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추가적인 알고리즘 업데이트를 통해 저널리즘 가치가 높아지는 계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성규 대표는 “언론사들은 심층, 기획, 해설 기사를 지속적으로 써왔지만 포털 이용자에게는 이 같은 기사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며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기레기 담론을 완화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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