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본경선 주자 첫 TV토론회(지난달 28일)에서 쟁점이 된 사안 중 하나는 이낙연 대선 예비후보가 대통령 사면권에 대해 입장을 바꿨다는 주장이다. 

올해 초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제안의사를 밝힌 이후 올해 내내 정치권에선 사면 논의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광복절을 앞두고 대통령 특별사면 논의가 다시 불붙는 분위기다. 이낙연 예비후보가 그동안 대통령 사면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보였는지 살펴봤다. 

▲ 지난 1월1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민주당
▲ 지난 1월1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민주당

 

참여정부 때도 오락가락했던 사면권 제한 주장

노무현 정부 시절 이낙연 당시 민주당 의원이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할 용의가 없는지’ 물었다. 2004년 11월1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낙연 의원은 “국민통합을 위한 상징적 조치로 참여정부 출범 이전에 과거 관행에 따라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이나 경제인 등의 대사면을 건의할 용의는 없나”라며 “특히 생계형 범죄자는 대담하게 사면복권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질의했다. 

이에 이해찬 국무총리는 “현재 정치인이나 경제인 중 구속돼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고 정치인에 대해선 도덕성 문제가 있어 정부 단독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대개 (교도소 등에서) 나오셨고 생계형 경제사범이 있고 민생사범들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검토를 해보겠다”고 답했다. 당시 여당은 열린우리당으로 이낙연 의원이 속한 민주당은 야당이었다. 

앞서 2002년 7월22일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8·15 사면을 건의한 바 있다.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변인은 “최고위에서 여러 분야에 걸쳐 대폭 사면이 이뤄지도록 건의한다는 게 원칙”이라며 ‘4년전 지방선거 때 선거법을 위반해 6·13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인사와 생업에 종사하던 중 경미한 위법행위를 한 사람 등을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2004년의 사면제안은 2002년 당시 제안과 비슷한 취지였다. 

그러나 2005년, 정치적 이해관계가 달라지자 이낙연 의원의 입장도 달라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인·정치인을 3·1절 특사 대상으로 검토했고 이중 노 대통령 측근인 강금원 전 창신섬유 대표가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하자 이 의원은 사면 반대입장으로 돌아섰다. 

2005년 6월 이낙연 의원은 대통령이 사면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사면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대통령이 사면을 결정할 때 대법원장 의견을 구하도록 했고, 확정판결을 받은 후 1년이 지나지 않거나 형기 3분의1을 채우지 않은 사람은 사면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낙연 후보가 지난 1월 주장한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 사면대상에서 배제된다. 

개정안에선 특사가 불가능한 범죄유형도 규정했는데 두 전직 대통령이 저지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역시 이에 포함됐기에 개정안대로라면 두 전직 대통령은 사면대상이 될 수 없다. 

이듬해 이낙연 의원의 사면 관련 입장이 다시 바뀌었다. 2006년 8월8일 이 의원은 교도소에 수감중인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을 면회한 후 “고령에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이 많은 듯했다”며 “대통령이 선처해 사면복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전 위원은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2004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 몰수·추징금 200억원 판결을 받아 수감 중이었다. 역시 자신이 발의한 사면법 개정안 취지와 배치되는 발언이다. 

권 전 위원은 DJ계 인사로 호남출신이자 DJ 제안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 의원과 정치적 아군이다. 이러한 경우엔 사면을 주장하고, 정치적 반대파였던 노 대통령 측근이 대상자로 거론될 땐 사면을 반대한 것이다. 

▲ 지난 5월 '이낙연의 약속' 출판기념 기자간담회를 진행중인 이낙연 대선 예비후보. 사진=노컷뉴스
▲ 지난 5월 '이낙연의 약속' 출판기념 기자간담회를 진행중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사진=노컷뉴스

 

여당일 땐 찬성, 야당일 땐 반대

노무현 정부 말,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과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과 함께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도 이때 합류해 여당 소속이 됐다. 

이낙연 의원이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2007년 12월31일 ‘노무현 대통령의 1월1일자 특별사면·특별감형 등’에 대해 이 대변인은 “환영한다. 특별사면 복권 대상자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나름대로 기여해 오신 분들”이라며 “이분들이 한때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회를 위해 다시 공헌해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야당일 때는 대통령 사면 결정에 비판적 입장을 내놓았지만 여당 소속이 되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후 정권이 교체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이어졌다. 이낙연 의원이 속한 민주통합당은 야당이 됐다. 2013년 2월10일 황주홍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통령 임기 중 형이 확정된 사람에 대해 특별사면·감형을 제한’하는 사면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이낙연 의원도 해당 개정안 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총리 시절엔 반대, 대선 앞두고 찬성

2017년 다시 정권이 바뀌었다. 전남도지사로 있던 이 후보는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됐다. 2017년 5월24일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윤후덕 민주당 의원이 “이전 정부에서 재벌총수 사면 문제를 가지고 상당한 문제가 발생했고 전직 대통령의 탄핵, 또 재판받는 사안까지 갔다”며 ‘재벌총수 사면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낙연 총리 후보자는 “재벌총수들이 국가경제에 기여한 바는 충분히 평가돼야 하지만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매번 대접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는 박근혜·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관련해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을 때다. 적폐청산으로 현 정부가 높은 지지를 받던 시기라서 사면 논의가 이뤄질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을 5대 중대 부패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범죄자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 사면이 헌법(제79조)상 권한이지만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 이유는 그만큼 정략적이거나 불공정하게 행사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 수감중인 두 전직 대통령. 사진=노컷뉴스
▲ 수감중인 두 전직 대통령. 사진=노컷뉴스

 

2019년 3월22일 국회에서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민대화합 차원에서 광복절 사면을 건의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의했지만 이낙연 총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제가 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며 이때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총리직을 마치고 이 후보는 8개월짜리 당대표직을 맡았다. 이낙연 체제 민주당이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특히 연말엔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등 산재 사망 유족들이 국회 앞에서 농성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주장했지만 이낙연 체제의 민주당이 결국 이 법안을 누더기로 만들어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올해 1월1일 이낙연 당시 당대표는 사면 찬성으로 다시 입장을 바꿨다. 

이낙연 대표는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그 이유로 ‘국민통합’을 거론했다. 당안팎의 반발이 거셌지만 1월4일 재차 한국일보 인터뷰를 통해 사면건의 의사를 다시 한번 밝혔다. 현 정부들어 이 대표는 꾸준히 차기 대선주자 1위를 달렸지만 당대표로서 성과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한방’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낙연 대세론’을 무너뜨린 결정적 실책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5월 이 후보가 문형렬 작가와 펴낸 책 ‘이낙연의 약속’을 보면 이 후보는 ‘최근 혼자 소리 내 울었던 때는?’이란 질문에 “지난 1월, 오해와 비난을 받았을 때”라고 답했다. 사면론을 말한 이후 상황에 대한 소회로 볼 수 있다. 이 후보는 “무엇보다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며 “그 일로 아프게 배웠는데 내 생각이 무엇이든 거론의 시기와 방법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사면 관련 이 후보의 가장 최근 입장은 지난달 28일 민주당 본경선 첫 TV토론회에서 나왔다. OX 스피드 퀴즈에서 이낙연 후보는 정세균 후보와 함께 ‘전직 대통령 사면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OX판넬을 세로로 들어 찬성도 반대도 아닌 입장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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