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관한 황당한 뉴스가 나왔다. 일본이 아시아 각국에서 약탈한 보물을 1945년 부산 남구 문현동 지하 동굴에 숨겼는데 문 대표가 금괴를 탈취해 부산 양산 자택 지하에 묻었다는 것이다. 관련 내용은 SNS를 중심으로 퍼지다가 50대 남성이 문 대표 사무실에 난입해 “문현동 금괴 사건 도굴범 문재인을 즉각 구속하라”고 외치면서 극적인 뉴스가 됐다.

도굴한 금괴가 무려 200톤이라는데, 2016년 국가별 금 보유량 기준으로 23위에 해당하는 금괴를 문 대표가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음모론’이라고 명명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하지만 언론은 ‘문재인 금괴 보유설’을 가십성 뉴스로 반복해 다뤘다.

2018년 심리학자 고든 페니쿡이 수행한 연구(가짜뉴스의 심리학_박준석 지음)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가짜뉴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는 문구를 보여주더라도 그 뉴스를 반복적으로 노출하면 믿는 정도는 높게 나타난다. 거짓에 대한 노출 빈도가 상승하면, 사람들은 거짓을 하나의 진실로 믿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언론이 금괴 보유설을 가벼운 가십거리로 다루더라도 극단적 진영 논리에 갇힌 사람은 이를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음모론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진영 간 대결이 극대화되는 선거 시기, 언론 보도는 정파적으로 소비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공익적 보도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2015년 12월30일 오전 9시께 부산 사상구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사무실에 정모(55)씨가 흉기를 들고 난입했다. 직원인 최모(52)씨를 인질로 붙잡고 경찰과 대치하다 검거됐다.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사진=노컷뉴스
▲ 2015년 12월30일 오전 9시께 부산 사상구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사무실에 정모(55)씨가 흉기를 들고 난입했다. 직원인 최모(52)씨를 인질로 붙잡고 경찰과 대치하다 검거됐다.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사진=노컷뉴스

최근 3개월 동안 ‘쥴리’라는 단어를 쓴 11개 중앙일간지 보도 건수(빅카인즈 검색)는 451건에 달했다. 여기에 지역일간지와 경제지, 방송 매체까지 포함하면 976건으로 늘어난다. 특정 대선 후보자 배우자에 관한 내용이 이렇게까지 보도된 것은 과거와 비교해도 비정상적이다. 대선 후보자 가족도 검증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검증 대상은 공적인 것이어야 한다.

스스로를 언론사로 규정한 한 유튜브 채널은 과거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가 모 방송인을 남편이라고 소개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방송인 실명도 공개됐다. 이 방송 사회자는 이를 “쥴리의 오랜 꿈”이라는 타이틀로 소개하며 탐사 취재 결과물임을 강조했다. 취재 내용은 윤 후보 배우자와 함께 꽃꽂이 교실을 다녔던 사람의 제보라며 윤 후보와 결혼하기 6개월 전 윤 후보 배우자가 해당 방송인을 남편이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윤 후보 배우자가 모해위증 교사로 소송 중이었고, 뇌물 공여 혐의로 고발당한 피의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남편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있었음에도 윤 후보자와 ‘은밀하게’ 만난 것은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함이었다는 추정으로 나아간다. ‘독직(공무원이 지위나 직권을 남용해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첫 단추라는 주장이다.

‘윤석열 후보를 이용했다’는 미확인 가설을 전제로 ‘과거 남편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있었는데도 윤 후보를 만났다’는 불확실한 내용을 연결고리로 끼워 맞추는 격이다. 추정에 추정을 더한, 위험한 주장이다. 유튜브 채널 사회자가 “조회수를 당기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유력한 대선 후보 부인의 사생활을 가십성으로 제공하기 위한 취재 내용도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한 이유도 본인들도 사생활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취재를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서다.

▲ 열린공감TV가 7월26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부인 김건희씨와 양재택 전 검사의 동거설을 제기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 갈무리
▲ 열린공감TV가 7월26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부인 김건희씨와 양재택 전 검사의 동거설을 제기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 갈무리

윤 후보 배우자의 또 다른 과거를 캐기 위해 이 유튜브 채널 취재진이 전직 검사의 노모를 찾아간 일도 이해하기 힘들다. 주장의 신빙성을 확보하려면 당사자인 전직 검사를 인터뷰해야 한다. ‘노모를 찾아간 이유를 모르겠다’라는 댓글은 이 보도의 치명적 약점을 간파한 것이다. 취재윤리 위반을 포함해 취재 방식도 무리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탐사 보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황색 저널리즘’ 요소와 결별해야 한다. 검사 지위를 활용한 윤 후보의 직권남용 의혹을 밝히기 위한 탐사 보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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