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뇌물 횡령 사건의 주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 문항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문제제기가 나와 주목된다.

법무부가 가석방심사위원회 심의 대상에 오른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여부 결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섣부르게 여론조사를 실시해 우리사회 고위층의 권력형 비리 범죄자의 만기 복역 원칙을 훼손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반대 논거가 분명한 법적 윤리적 사건인데도 ‘가석방 심사대상 기준이 완화됐다’는 설명만 한 뒤 찬반을 물어 찬성 여론을 유도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리서치가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캣리서치·코리아리서치와 공동으로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찬반’을 물은 결과 찬성이 70%, 반대가 22% 응답했다.

그러나 문항 원문을 보면, 찬성쪽 응답을 유도하려는 문장이 포함됐다는 지적이다. 한국리서치 등은 문항 7번에서 “법무부에서 이달부터 형기의 60%만 복역하면 가석방 심사대상에 올릴 수 있게 기준을 완화함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15 가석방 심사대상에 올랐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에 대해 어떤 입장이십니까”라고 질문했다.

찬반을 묻기 전에 찬반의 논거를 제시하는 대신 가석방 심사대상 포함 기준이 완화돼 이재용 부회장도 포함됐다고 설명해 가석방에 유리한 상황을 전달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가석방 찬성에 유리한 설명으로 유도했다는 의심으로 이어졌다.

▲한국리서치 등이 지난달 26~28일 실시한 NBS(전국지표조사) 여론조사 문항에 이재용 가석방 찬반을 묻고 있다. 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한국리서치 등이 지난달 26~28일 실시한 NBS(전국지표조사) 여론조사 문항에 이재용 가석방 찬반을 묻고 있다. 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2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다분히 유도적인 질문으로 보인다”며 “마치 이재용 부회장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가석방할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유도성 질문”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찬성의 근거를 제시하려면 반대 근거도 역시 제시해야 한다”며 “왜 가석방심사대상 포함 기준이 완화됐는지, 박근혜는 뇌물을 받아 20년형을 받은 반면, 그 뇌물을 준 이재용은 2년6개월형을 받은 사실, 이 부회장이 다른 관련 형사재판이 진행중이며 심지어 마약사건 재판도 예정돼 있다는 사실도 같이 설명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올 봄부터 언론이 이재용의 사면과 가석방을 일방적으로 몰아간 상황에서, 이제는 이재용도 가석방에서 일반인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가져다 문항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공신력에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조사를 진행한 한국리서치측은 사실전달 차원에서 가석방심사대상 기준 완화 설명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본부장(전무)은 2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가석방의 찬반 논거를 다 나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항에서 다 제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가석방심사대상 기준 완화에 따라 심사대상에 올랐다’는 문장을 유도성으로 볼지, 객관적 사실전달로 볼지인데, 우리는 사실전달 차원으로 봤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박상인 교수의 비판에 “그렇게 문제제기하는 것을 이해할 바도 있지만, 그 문장을 넣은 것은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차원”이라며 “해석은 달리 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번 여론조사(전국지표조사)에서 이재용 가석방 질문을 넣은 배경에 법무부나 청와대, 삼성측의 직간접적인 요청이 있었느냐는 질의에 김 본부장은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며 “사회적 공론화가 된 시점이라고 보고, 여론을 확인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답했다.

국정농단과 같은 권력형 비리 사건 범죄자의 복역 문제를 여론조사 등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이 시점에 조사를 하면 찬성이 많이 나올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닌지 등을 묻자 김 본부장은 “첫번째 질의인 여론조사의 효과성(에 대한 우려)은 존중하나 찬성이 잘 나올지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시민종교단체들이 지난달 6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재용 사면 또는 가석방의 반대를 외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시민종교단체들이 지난달 6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재용 사면 또는 가석방의 반대를 외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은 조사개요이다.

조사의뢰 :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 ㈜한국리서치

조사기관 : ㈜한국리서치

조사대상 : 전국 성인남녀 1003명

조사시기 : 2021년 7월26일~7월28일 (3일간)

조사방법 : 무선전화 면접조사

응답률 : 26.7%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3.1%

참고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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