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5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미디어 바우처’가 화제다. 미디어경제학자 줄리아 카제와 법률가 브누아 위에가 지난 2월 ‘정보는 공공재다:언론 소유권의 재편’이란 저서를 통해 공익 저널리즘을 구하기 위한 언론 소유권 재편을 주장하며 ‘정보의 민주화법’을 제안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30일 발간한 미디어 정책리포트에 따르면 핵심은 뉴스타파 같은 ‘비영리 재단에 의한 미디어 기업’을 성장시키고, 언론지원 시스템을 ‘미디어 바우처’ 중심으로 개혁해 미디어 생태계의 중심에 시민이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리포트 2021’에 따르면 프랑스의 뉴스 신뢰도(30%)는 한국(32%)보다 낮다. 미국(29%)에 이어 최하위다. 진민정 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정책리포트에서 “프랑스의 미디어 시장 독점 구조는 가속화 하고 있다. 1984년 신문법 최초 제정 당시 10개의 주요 미디어그룹이 경쟁하던 신문시장은 2021년 현재 단 2개의 복합 미디어그룹이 시장을 양분하는 구조로 재편됐다”고 전했다. 그 결과는 구조조정에 따른 언론인 대량 해고와 ‘프렌치 폭스뉴스’의 등장, ‘저널리스트 없는 저널리즘’이다. 

현재 프랑스 상황은 곧 정부의 언론 지원정책 실패를 의미한다. 2020년 기준 프랑스의 언론지원액 규모는 △조세 지원 △언론인을 위한 사회적 지원 △우편요금 지원 등 모두 5억5000만 유로(약 7424억원) 규모다. 2015년 4월엔 ‘언론현대화법’을 통해 독자나 기업이 언론사를 후원하는 경우 소득세 감면 혜택을 줬다. 그러나 카제와 위에는 이 같은 지원제도가 중소규모 언론사보다 거대 언론사의 잇속을 챙기는 데 일조해왔다고 판단하며 근본적으로 비영리 재단 모델로의 전환이 언론 불신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결론 내린다.

진민정 책임연구위원은 “이들의 제안은 궁극적으로 미디어 산업 전반이 협회, 협동조합, 혹은 재단 형태의 ‘비영리 조직’에 의해 소유되는 것이 사회적 규범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법적 규칙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 요약했다. 이를 위해 르몽드 독자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줄리아 카제가 제안한 ‘정보의 민주화법’ 주요 원칙은 △언론인뿐 아니라 독자도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인 거버넌스 구축 △미디어 기업의 자본 변화에 대한 언론인의 동의 절차 보장 △미디어 기업의 경영과 소유 지분에 대한 투명성 원칙 △최소한의 기자 수를 보장하고 언론사 수익의 상당 부분을 기자들(뉴스 생산)에 투자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들은 ‘정보의 민주화법’에 9가지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편집국장 혹은 보도국장은 노사동수로 구성된 거버넌스 기구에서 임명하고 임명이 승인되려면 전체 언론인 50% 이상이 참석한 총회에서 60%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또 ‘언론출판사와 민영방송사는 매출의 35% 이상을 피고용인의 임금으로 지출해야 하며 전체 인력의 절반 이상을 전문 기자로 구성해야 한다’, ‘언론출판사와 민영방송사는 회계연도 순수익의 70% 이상을 언론사 활동 유지 및 개발에 사용되는 법정 의무 적립금에 할당해야 한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이와 함께 카제와 위에는 정부의 언론지원 제도에 근본적 수술을 요구하는데, 핵심은 ‘미디어 독립을 위한 바우처’ 도입이다. 바우처는 시민이 언론 생태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참여시키는 현실적 방식이다. 이들은 “뉴스는 공공재이므로 언론을 시장의 손에만 맡길 수 없기에 언론에 대한 공적 지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정부가 아닌 시민에 의해 언론이 후원받는 구조를 마련해야 언론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안에 의하면 정부는 각 시민에게 매년 10유로(약 1만3500원)의 바우처를 지급해야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앞서 언급한 언론의 독립성 구현을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주요 원칙을 충족하는 매체만 바우처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이 자신의 입맛에 맞다는 이유로 비정상적 언론사를 후원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이유다. 아울러 이들은 바우처가 소수의 주류 매체에만 혜택이 제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매체가 전체 바우처의 1% 이상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한도를 설정했다. 누가 어떤 매체를 후원했는지 알 수 없도록 익명 시스템도 요구했다. 이 같은 대목은 지난 5월 등장한 한국의 미디어바우처법과 유사하다.

앞서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 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명 미디어바우처법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광고 집행액 가운데 인쇄매체 예산에 해당하는 약 2500억원을 재원으로 설정해 바우처 결과에 따라 정부광고를 집행하는 아이디어로, 광고가 아니라 ‘지원’이 목적인 프랑스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바우처를 받고자 하는 언론사에게 △편집위원회 설치 및 편집규약 제정 △투명한 경영공시 △언론윤리강령 준수 등의 의무를 갖게 하고 바우처 한도를 1%로 설정한 점 등은 유사한 대목이다.
 
진민정 책임연구위원은 미디어 바우처가 △국가 개입을 피해 언론의 독립성을 보존할 수 있는 제도이기에 차별적이고 불공정한 기존의 언론지원 시스템에 비해 많은 이점이 있으며 △거대 주류 미디어뿐 아니라 소규모 미디어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의 다원주의를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고 △시민과 언론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을 재창조함으로써 언론의 신뢰 회복에 기여 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제안대로 5000만 프랑스 성인에게 연간 10유로 바우처를 지급하면 총액은 5억 유로(약 6747억 원)로, 현재 프랑스의 언론지원액과 유사하다.

카제와 위에는 바우처를 통해 프랑스에서 공익적이면서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소규모 매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한국에선 정부광고 예산이 아닌 별도 예산 편성을 통해 바우처를 지급하고, 여론 다양성에 기여할 지역·전문 매체 등에 실질적 도움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미디어 바우처 논의가 각각 어떠한 결말에 도달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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