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풍채 만큼 큰 꿈을 꾸시는 분께서 52시간제가 실패한 정책이라 비판했다. 그 정도까지만 하면 괜찮을 것을, 굳이 주 120시간 운운하다가 비웃음거리가 됐다.

다만 비판의 골자는 한 번 재고해봄직했다. 실제 내가 머무는 제조업 현장도 52시간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당장 급여 명세서에 찍히는 액수가 다른데 체감이 안 올 리 있겠는가. 그렇다고 OECD 연간 노동시간 2위의 늪에 영영 빠져있을 수도 없는 노릇. 대체 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52시간제가 적용된 지 어느덧 한 달. 작금의 제조업 현장 분위기에서 힌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사장님과 직원들의 사정

잡코리아 구인구직란 검색하면 널리고 널린 공장 알바의 경우 60시간 근무가 ‘국룰’로 꼽혔다. 수요일 제외한 나머지 평일 3시간 잔업과 토요일 특근 8시간을 일하는 패턴이다. 여기서 2교대가 추가되면 보통 야간조가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최저시급이 낮았던 2015~2016년까진 600% 상여금을 붙여 홀수 달엔 200, 짝수 달에 300 정도를 챙겨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대부분 중소기업이 슬며시 상여금 폭을 줄였다. 2021년엔 대부분 중소기업은 200% 상여금을 유지하는 대신 월 250만원을 균등하게 받아갈 수 있게 됐다. 근데 이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기본급이 올라 잔업으로 버는 돈의 비중이 커졌다. 이 마당에 초과근무 시간은 줄었으니 손해가 막심했다.

사장님들 역시 골치가 아프다. 가뜩에 구인난인 중소기업인데 사람을 더 써야 한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잘 써먹었던 교대 패턴도 바꿔야 했다. 실제로 ‘주주야야비비’로 불리는 3교대 패턴으로 전환한 공장도 많았다. 숙련 기능직의 경우 여기서 신입의 숙련기간이란 변수가 추가된다. 필수 공정의 경우 아예 벌금 각오하고 노동법 위반을 명령하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인건비가 더 많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 가뜩에 코로나로 된서리 맞았는데 허리가 휠 지경이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이미 시행된 곳 분위기는?

한편 50인 이상 299인 미만 중소기업은 이미 2020년 1월 52시간제가 시행됐다. 최근 또래 현장직 친구들 인터뷰를 따러 돌아다닌 겸사. 이미 시행 중인 기업 현장의 돌아가는 분위기를 물어봤다. 주식에 꽂아야 할 잔업수당이 줄었다며 투덜대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체로 52시간제에 우호적 대답이 많았다.

특히 200명 규모 전자 회사에서 품질 관리하는 친구가 좋은 정보를 줬다. 4050 현장 여성 노동자들이 특히 52시간제를 쌍수 들고 환영했다고 한다. 일요일에 밀린 집안일 하고 나면 도로 출근이었는데, 이젠 하루 쉴 수 있다는 것이다. 중공업 계열 현장직 친구 대답도 인상 깊었다. “여름 되면 꼭 멱살잡이 하더만. 올해는 조용해서 좋다.”

이집트인 노동자 미나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취업 비자를 받아서 온 친구들은 지금도 불만이라고 한다. 한탕 치려면 이국 땅 온 김에 ‘빡세게 밟아야 하는데’, 제대로 브레이크가 걸린 셈이었다. 반면 한국에 붙박이하기로 한 친구들은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토요일 쉬는 건 고사하고 일요일마저 빼앗기기 일쑤였다. 이젠 이들도 이틀을 온전히 푹 쉴 수 있다. 한국 거주 5년차인 미나 역시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일 적어. 안 힘들어.”

선진국 필수 코스, 노동시간 단축

덮어놓고 52시간제를 옹호하진 못하겠다. 다만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노동시간 감축이 반드시 필요함을 말하고 싶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인건비 남겨 먹는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오래 연명할 수가 없다. 제조업 노동자 개개인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자기계발을 할 시간을 확보해줘야 한다.

출산율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방소멸’의 저자 마스다 히로야 교수는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장시간 노동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처방한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간단한 문제다. 이제 가장 홀로 가족을 지탱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대다수 가정에 맞벌이가 필수인데 지금처럼 살벌한 노동시간으로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르겠는가? 앞으로도 정부가 임금보전책과 더불어 노동시간을 계속 줄여 나갈 방법을 모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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