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금메달 지상주의에 치우친 언론 보도들이 질타받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선수들을 차분하게 응원하는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언론만 과열됐다는 지적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빅데이터 플랫폼 ‘빅카인즈’에 따르면 도쿄올림픽이 개막한 23일부터 28일까지 9개 종합 일간지(경향신문·국민일보·동아일보·서울신문·세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한국일보)와 4개 방송사(KBS·MBC·SBS·YTN)가 보도한 ‘올림픽’ 키워드 관련 보도는 2532건이다. 하루 평균 422건 수준이다.

중요한 건 기사량 대비 얼마나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느냐다. 기사의 절대다수가 ‘메달 스코어’ 전달에 편중된 가운데 ‘금메달’에 집중된 보도가 이어졌다. 해당 기간 기사 1000건을 기준으로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금메달’이 압도적이다. 도쿄, 코로나19, 선수들, 대표팀, 안산(양궁 혼성·여자단체 금메달), 동메달, 은메달, 단체전, 황선우(69년 만의 아시아권 자유형 최고 성적)에 이르는 상위 10개 키워드는 국내 보도의 초점이 ‘승자’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미디어 이용자들의 시각은 이미 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난 26일 유도 남자 73kg급 동메달 결정전을 중계하던 MBC 해설진이 재일동포 3세인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 선수의 동메달 획득을 두고 “우리가 원했던 색깔은 아닙니다만”이라는 표현으로 뭇매를 맞은 사례가 상징적이다.

▲7월 23일~7월 28일 9개 종합일간지와 4개 방송사의 '올림픽' 관련 보도 연관어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로 1000건 분석)
▲7월 23일~7월 28일 9개 종합일간지와 4개 방송사의 '올림픽' 관련 보도 연관어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로 1000건 분석)

특히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태권도 이다빈 선수가 27일 여자 67kg 초과급 결승에서 은메달을 수확한 것을 두고 ‘사상 처음 노 메달’ ‘노 골드 수모’ ‘충격적 사태’ 등이라 표현한 보도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히려 미국 ‘뉴욕타임스’가 올림픽에서 태권도라는 종목의 가치와 의미를 짚은 기사를 작성해 국내 보도와 극명하게 대비되기도 했다. “태권도, 메달을 얻기 어려웠던 나라들의 길(Taekwondo Is Path to Medals for Countries That Rarely Get Them)” 제목의 기사다.

물론 올림픽 성적은 중요한 정보다. 어느 나라든 언론은 종목별 승패, 메달 개수에 기반한 성적을 보도한다. 다만 메달 획득 여부가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되거나, 특정 선수에게 과도한 좌절감을 심어주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영국 가디언지의 올림픽 페이지에도 현 시점 메달 순위 등을 알림판 형태로 제공한다. 다만 해당 부분을 제외한 카테고리에선 선수들의 이야기, 각 경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국가·문화권의 특징 등을 담은 해설성 기사가 주를 이룬다. 국내에서 익숙한, 주요 종목에서 승리한 선수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춰 대대적으로 다루는 방식과는 온도차가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젠더’ 이슈가 두드러지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태극낭자들의 꿈, 올림픽 9연패가 현실이 됩니다!”(MBC), “얼음공주가 웃고, 여전사들 웃는 모습이 너무 좋네요”(SBS)와 같은 지상파 중계가 비판을 받으며 스포츠 선수 대상의 성차별적 발언이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하반신 노출 없는 전신 유니폼을 입은 독일 여자 체조 대표팀의 모습 등도 반향을 불렀다.

영국 BBC는 “성차별은 여전히 도쿄 올림픽을 괴롭히고 있다”(Gender disparities still vex Tokyo Olympic Games)라는 기사를 냈다. BBC코리아는 “여성 선수 49%...도쿄 올림픽은 정말 ‘성평등’할까?”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경향신문(누가 여성 선수의 ‘적절한 복장’을 규정하는가), YTN(도쿄올림픽 성소수자 금메달에 정의당 ‘응원 메시지’), 한겨레(‘스포츠 성평등’ 가치 일깨운 ‘노출 없는 유니폼’) 등 국내에서도 성평등 관점의 기사를 작성한 매체가 있다.

▲BBC 홈페이지 갈무리
▲BBC 홈페이지 갈무리

국내에서 젠더 이슈가 부상한 계기는 양궁 안산 선수의 머리카락 길이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프레임을 바탕으로 ‘숏커트’ 여성은 페미니스트이자 남성에 적대적이라는 ‘논란’, 이를 둘러싼 ‘공방’을 중계하는 보도가 급증했다. 특정 성별을 대상화, 규격화하지 말자는 올림픽 메시지와 정면에 반한다.

보도가 소위 ‘인기 종목’에 집중되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은 33개 스포츠, 46개 종목으로 진행된다. 2532건의 기사 가운데 양궁(269건), 태권도(134건), 펜싱(111건) 등 인기가 많거나 좋은 성적이 예상되는 종목에 보도가 집중된 반면 배구(13건), 배드민턴(7건), 카누(2건) 등 보도는 소수에 그쳤다.

비장애인 올림픽에 늘 가려지는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23일~28일 ‘올림픽’ 관련 2532건 기사 중 패럴림픽 보도는 단 2건이다. 패럴림픽 때 관중을 입장시키겠다던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의 발언을 비판한 기사,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서 3관왕이었던 미국의 수영선수가 도쿄 올림픽에 불참한다는 기사다.

이와 관련해 미국 ABC 보도는 참고할 만하다. 27일 “3명의 올림픽, 패럴림픽 선수들이 어떻게 코로나19 팬데믹 훈련에 적응했나(How 3 Olympic, Paralympic athletes adapted their training to the COVID-19 pandemic)”라는 제목의 기사는 미국 수영선수와 패럴림픽 육상선수의 이야기를 다뤘다. 장애를 환경의 차이로 두고 각 선수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동등하게 서술했다.

▲유튜브 ABC News 채널 갈무리
▲유튜브 ABC News 채널 갈무리

이런 사례들에 비춰 향후 올림픽을 비롯한 대형 스포츠 경기를 다루는 국내 언론이 보다 다양한 차원의 이야기를 발굴할 필요성이 지적된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올림픽이 일종의 국가 대항전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포츠 내셔널리즘’ 작동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최근 들어 성적이 우수하지 않더라도 해당 선수의 성취를 높이 평가하는 모습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아직 여전히 ‘메달을 따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교수는 “우리나라 시민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성숙하고 글로벌화가 되면서 한국 선수에만 집착하거나 승리에만 매달리는 것은 넘어선 측면이 있다”며 “스포츠를 보도하는 이들도 인류 보편적 가치를 주장하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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