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가해자를 수요층으로 둔 법률 서비스 시장이 확대일로다. 여느 범죄와도 특화된 정도가 다르다. 성범죄 관련만큼 네이버 카페 수가 많은 범죄가 없다. ‘성범죄 전문’을 검색하면 50여개의 카페가 뜬다. 76건이 뜨는 ‘이혼 소송 전문’에 맞먹는다. 랭킹 1위인 ㄱ카페의 회원 수는 6만1000여명, 2위의 ㄴ카페는 1만2000여명이다.

카페는 감형·무죄 전략 공유를 넘어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넋두리, 하소연, 성공 후기 등의 글에 서로 공감 댓글을 달며 유대를 강화한다. ‘전문가 상담’은 가장 큰 유인요소다. 인기 카페 대부분이 특정 법무법인과 연계됐거나 변호사 소개 시스템을 갖췄다. 이들 중 일부는 역고소를 부추기면서 수임 건수를 늘린다. 자연히 사건 수가 늘고, 각종 감형 전략이 법원에서 ‘먹히면서’ 이들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김보화 여성학 박사(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는 이를 “가해자 지원 산업”이라 칭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법무법인, 상담기관, 진술분석기관 등이 ‘산업’이라 칭할 만큼 상업적으로 긴밀히 연계됐다는 것이다. 법원이 각종 감형 전략들을 승인하면서 ‘가해자 시장 카르텔’이 더 질적으로 발전한다고 짚었다.

김 박사는 지난 6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박사 논문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를 펴냈다. “왜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과 판단에서 법의 논리가 강화되고 시장 의존도가 높아질까?” 이 물음에서 출발한 논문은 성폭력을 둘러싼 현재의 법 시장화 실태 분석까지 나아갔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인근에서 김보화 박사를 만났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지난 27일 미디어오늘과 만난 김보화 여성학 박사(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사진=강민정 대학생기자.
▲지난 27일 미디어오늘과 만난 김보화 여성학 박사(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사진=강민정 대학생기자.

 

유튜브·책·블로그·카페, 감형 전략 전방위 공유

‘형식적 반성’은 감형 기술 중 하나다. 대표적인 감경·집행유예 사유가 진지한 반성인 점에 착안했다. 반성의 증거로 여성운동 단체 기부금 영수증을 법원에 제출한다. 피해자와의 합의가 가장 좋은 감경 사유지만 합의가 불가능할 때 차선으로 택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해 전담법인도 블로그, 법인 사이트, 저서 등에서 ‘성공 전략’으로 추천한다.

검찰 기소 즈음 한 남성이 여성단체에 10만원씩 5번 기부금을 내고, 1심 판결 직후 후원을 해지한 사례가 있었다. 이 기부는 진정한 반성일까. 한국여성민우회에 900만원 고액 기부금을 낸 후원자는 몇 년 후 ‘생각만큼 아들의 형량이 감경되지 않았다’며 단체에 절반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일방적 후원금이 ‘반성’과 ‘사죄’로 해석되고 감경으로 이어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여성단체들이 후원자 검증을 강화하자 변호인이나 법무법인 사무장, 가해자의 가족이 후원자로 등록하고 있다. 김 박사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 활동에 참여한 남성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재판 중인 가해자였고 구속된 후 기부금 확인서를 요구한 적이 있다”며 “N번방 사건 이후 계속 후원금이 늘고 있다”는 한 활동가의 우려도 전했다.

김 박사는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가해자 만들기”도 전략으로 꼽았다. 가해자는 “범죄가 실수처럼 보이도록” 긍정적인 사회적 이력을 법원에 내고, 재판부는 “이를 광범위하게 승인”해주고 있다. 헌혈증, 표창장, 장기기증 서약서, 성폭력 예방 교육 이수, 정신과 혹은 음주 치료 기록 등이다. 2019년 한 성착취물 배포 사건에선 1심 재판부가 ‘고도 비만 등의 외모 콤플렉스’를 감경 사유로 들어줬다.

▲네이버 카페에서 '성범죄 전문'을 검색한 결과 갈무리.
▲네이버 카페에서 '성범죄 전문'을 검색한 결과 갈무리.

 

위로, 축하, 상담 넘쳐나는 카페 “가해자의 탈범죄화”

김 박사는 ‘성범죄 지식’들을 공유하는 카페를 “성범죄 전담법인으로 가는 일종의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사들과 결탁해 정보를 상세히 공유하면서 가해자들을 모으고, 가해자들이 전담법인을 찾게 하는 구조”란 점에서다.

카페는 학습과 지지의 공간이다. 회원수 6만여명의 ㄱ카페엔 합의사례나 판결문, 검찰처분서부터 각종 고소장, 항소장, 의견서 등이 개인정보를 삭제한 채 게재돼있다. 다른 이들이 상황에 맞는 반성문을 참고하도록 직접 작성한 반성문도 올라와 있다. 디지털 포렌식 수사에 대비할 수 있도록 디지털 포렌식 과정과 결과보고서 자료도 있다.

이는 엄격한 등급관리 아래 활성화된다. 등급이 높을수록 희소성이 있는 고급 자료를 볼 수 있다. 회원 자격 유지부터 쉽지 않다. ㄱ카페는 글 5개, 댓글 30개, 하루 1회 출석이 2등급에서 3등급으로 올라가는 조건이다. 전문 고급 자료 열람이 가능한 등급은 글 50개, 댓글 300개, 하루 출석 10회 조건을 맞춰야 한다. 카페는 해당 공간을 “가해자들이 반성하면서 선처 방안을 강구하거나 무고로 억울하게 사건을 겪고 있는 이들의 사랑방”으로 소개하며 “피해자 회원은 활동이 불가하다”고 밝힌다. 랭킹 2위의 ㄴ카페는 남성만 가입할 수 있다.

김 박사는 “카페의 운영 방식이 범죄에 대한 자책감을 사장시키고 가해자들의 연대감을 강화해 집단적으로 유지돼가고 있다”고 밝혔다. 카페엔 공감과 위로의 정서가 깔려 있다. 서로의 무혐의 처분에 축하해주고 승·패 후기를 읽으며 지지 댓글을 단다. 피해자를 무고·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려는 고민 상담도 활발하다. 김 박사는 “구치소, 교도소 생활과 관련해 수감시설 사진, 면회방법 등의 글도 올리고, 수감자에 선물도 보낸다”고 말했다. 정회원이 될 때는 자기 사건을 양식에 따라 적어서 낸다.

▲회원 수가 높은 한 네이버 카페 게시판 일부 갈무리.
▲회원 수가 높은 한 네이버 카페 게시판 일부 갈무리.
▲회원 수가 높은 한 네이버 카페 게시판 글 일부 갈무리.
▲회원 수가 높은 한 네이버 카페 게시판 글 일부 갈무리.

 

이윤 추구, 돈이 돌고 도는 ‘가해자 지원 산업’

한 변호사는 이 논문에서 “ㄱ카페 경우 고급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유료회원 회비는 110만원”이라고 전했다. ‘카페(가 소개하는) 변호사님’을 선임해도 이 등급으로 올라간다. “심리전문가 소견은 참으로 중요한 양형 자료로 취급된다. 개인·종합병원보다 시간·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효율적 상담을 기대할 수 있다”며 특정 심리상담소를 공지사항으로 홍보한다. 다양한 탄원서, 반성문 등 법률서식이 판매되는 사이트도 링크로 걸어놨다.

최근엔 ‘사설 진술 분석센터’가 뜬다. 성범죄 전담법인, 온라인 카페 등에 자주 거론되는 전략이다. 대검찰청의 과학 수사 중 하나인 진술 분석은 실제 경험과 상상에 의한 진술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전제로 진술의 진실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 사설 진술분석센터 보고서를 최근 재판부들이 채택하고 있다. 비용은 1000만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센터 사이트에 게시된 ‘무죄 성공 사례’도 주로 성범죄다.

가해자들은 ‘자필 후기 조작’에 가담하기도 한다. 상업화의 한 단면이다. 전담법인 블로그 등엔 무죄나 감형을 받은 가해자들의 억울함과 감사함이 담긴 자필 후기가 게시돼있다. 논문 연구에 응한 한 변호사는 “한 법인이 취업제한에 걸린 한 가해자를 고용해 (법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글이나 자필 후기를 쓰게 한 사례를 안다”고 말했다.

▲온라인 상에 게재된 자필 후기 일부.
▲온라인 상에 게재된 자필 후기 일부.

 

김 박사는 이를 종합해 “이윤을 얻기 위한 법인, 법인에 조력하는 전직 경찰·검찰·판사·학자, 심리상담소, 진술분석센터와의 연계와 이들 전략을 승인하는 법원이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가해자 지원 산업을 확장하고 있다”며 “성폭력 가해자들은 법시장에서 합리적 소비자로 이동하면서 성폭력이 경제적인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고 가해자’된 피해자에 참담...남성 중심 법 언어 한계”

연구의 발단은 2017년 한 성폭력 피해여성의 무고죄 재판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원했던 이 사건 피해자는 1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을 받고 수감됐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경찰에 강간 피해를 신고했다가 이후 자진 철회한 사실을 강조했다. 재판을 방청한 김 박사는 참담했다. 피해자에 대한 역고소가 난무하는 실정이 참담했고, 기존 법 관행에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돼 법정 구속된 광경은 비극적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반성폭력운동에서 법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마음에 남았다.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외면한 채 ‘꽃뱀론’만 조장하는 여론도 늘어났다. 일부 언론의 잘못도 있었다. 성범죄 무고와 관련된 통계는 2019년 이전엔 공개된 적이 없다. 그러나 언론은 “‘성폭행 당했어요’ 무고죄 30% 급증…성범죄도 고공행진”(2017) 등의 제목으로 정확한 근거 없이 성범죄 무고 사범이 증가한다고 보도했다. 대법원은 매년 사법연감에서 전체 형사사건의 무고 사건 수를 공개할 뿐, 검찰·경찰도 대외적으로 ‘성범죄 무고 통계를 따로 파악하지 않는다’고 밝혀 왔다.

성폭력 무고 비율이 낮다는 점은 2019년 간접적으로 확인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성폭력 무고를 둘러싼 편견을 우려해 대검찰청 2017~2018년 사건기록 중 성폭력 무고 단일범 1190명의 사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성범죄 혐의를 받은 자가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을 무고로 고소한 사건의 유죄 비율은 5.9%(1년 평균 24.5명)였다. 1190명 중 유죄가 선고된 이는 341명(28.7%)이고, 나머지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수사받은 성폭력 피의자가 8만 명 이상이란 점에 비춰보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유명연예인 박00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2017년 7월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한국여성단체연합
▲유명연예인 박00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2017년 7월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한국여성단체연합

 

2017년부터 역고소 피해자를 만나기 시작한 김 박사는 역고소가 ‘가해자 지원 산업’ 속에서 기획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6~7건의 역고소는 물론이고 그의 지인과 지지자들까지 고소에 시달렸다. 한 데이트 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공론화를 공유한 이들까지 고소해 사건만 수백 개에 달했다. 한 변호사는 “전담법인이 패키지처럼 역고소까지 제시해 수임하고, 어떤 가해자는 자신이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한 사실도 모르는 일도 있었다”며 “변호사의 전략이 피해자를 법적으로 공격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성범죄 전담법인은 언제부터 늘기 시작했을까. 김 박사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2000년대 이후 법 시장이 개방되고 변호사 수가 증가하면서 시장 경쟁이 심화됐다. 성폭력 관련 법 개정 요인도 있다. 신상 공개제도 마련 등 가해자 양형이 강화됐고 피해자 국선변호인 제도가 도입됐으며 2013년 친고죄가 폐지됐다. 김 박사는 “성폭력적 문화나 성별 권력에 대한 성찰 없이 법 제·개정이 진행되면서 가해자의 강한 대응을 불러일으켰고 가해자 측 변호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피해자들도 점점 더 법 시장으로 유입된다. 피해자 지원은 공감대 형성 등 많은 에너지와 전문성, 시간이 들지만 지원하는 보수가 “무료 봉사”라 불릴만큼 적어 국선대리인 제도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화·산업화된 가해자의 공격적인 대응과 역고소에 대응하는데 불안함을 느끼는 피해자들은 비싼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변호사를 선임한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카드뉴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카드뉴스.

 

‘사법중심적 승패’ 넘어 공동체 정치 문제로

김 박사는 “성폭력 사건 해결이 법에 종속된다는 건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 대 개인 관계로 개인화하고 그 해결을 시장화한다”고 비판했다. 부정적인 결과 중 하나가 피해자가 법에 종속되는 점이다. 성폭력이 불법·합법 여부, 법적 승·패 기준으로 판단되면서 피해자가 더욱 재판 과정에 매이고, 역고소 대응에 시달린다. 김 박사는 “성적자기결정권이 법원에서 오용된다”며 “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는지 등을 보지 않고 ‘좋은 대학 나와놓고, 평소 자기 주장 잘 해놓고’ 왜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았냐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성별 권력 관계의 피해자가 ‘탈젠더화’된 ‘자기 위기 관리자’가 된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이 흐름을 “성폭력 사건 해결을 법과 시장에 종속시키는 메커니즘이자 성폭력을 ‘탈정치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법적 해결을 넘나들면서 개인의 사건 뿐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변화를 지향함으로써 해결의 장을 정치적 공론장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며 “사법중심적 승패의 문제를 넘어 법을 넘나드는 실천들을 통해 다양한 선택지를 확장하고, 이게 실행될 수 있는 조건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페미니즘 정치의 공공성’이 구축돼야 한다”고 결론 냈다.

김 박사는 최근 성폭력 의제를 다루는 언론에 대해서도 “성범죄는 특수한 범죄다. ‘가해자는 억울할 수 있다’며 피해자가 이미 의심을 받고 시작한다“며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등 4대 범죄에서 성폭력은 발생 수는 가장 많지만 불기소율과 불구속률이 가장 높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비 차가 뚜렷한 젠더화된 범죄다. 특수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고, 이를 취재와 보도에 반영해달라“고 제안했다. 특히 피해자 역고소 문제엔 “이런 특수성으로 가해자의 무혐의가 곧 피해자의 무고를 확인했다고 볼 수 없다”며 “범죄 피해와 무관한 정보인 피해자의 행실, 조건, 과거 이력에 대해서도 집중하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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