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야당과 언론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강행하자 정권 말 대선을 염두에 둔 환경 조성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언론과 언론환경을 개혁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 가운데 굳이 언론을 ‘징벌’하겠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부터 조급히 서두르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운 탓이다. 역대 정권에서 언론을 건드렸다가 성공한 사례는 별로 없다. 아무리 편파왜곡 보도를 하는 매체가 있다해도 모든 언론을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불량집단으로 몰아서는 원만한 정책으로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언론중재법안을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표결로 강행처리하자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언론자유를 제약하고 재갈물리기 위한 악법이라고 우려했다. 허위조작보도의 배상액 최저 기준선을 매출액의 1만분의1로 제시했을 뿐 아니라 언론보도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할 사례를 내세워 여기에 해당할 경우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법제화했다. 무엇이 허위조작보도이며, 고의중과실에 해당하는지 모호하며, 법원이 이런 기준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한지 등 우려스런 조항들이 담겨 있다. 사진 삽화 왜곡도 중과실 조항에 넣을 정도로 법안을 분위기에 편승해 졸속으로 만든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런데도 다음날 더불어민주당은 자화자찬하는 반응을 내놓는 등 정반대의 인식을 내비쳤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8일 오전 “마침내 어제 문체위 법안소위에서 가짜뉴스 피해 중재법이 가결됐다”며 “변화한 언론 환경 속에서 가짜뉴스로 인한 국민의 피해 구제하고 공정한 언론 생태계 위한 언론 개혁이 비로소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내 미디어혁신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민 의원도 “가짜뉴스 낸 언론사 상대로 최대 5배 손해배상 청구할 수 있고, 손해액을 특정 못하면 매출액 기준으로 하는 내용으로, 완벽한 피해 구제법은 아니지만 이제 시작”이라며 “계속된 논의를 통해 보완하겠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나아가 언론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국민께 약속드린 법안도 반드시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여당의 태도와 달리 야당과 언론계에서는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배분까지 하면서 원만한 의사진행을 하기로 해놓고 왜 민감한 언론에 이렇게 조급해하느냐에 의문을 제기한다. 강민국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28일 내놓은 입장에서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재배분 합의에도 반민주적 악법인 ‘언론재갈법’을 속전속결로 강행처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거대 의석에 취한 민주당의 ‘입법폭주’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려는 정치적 속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최형두 같은당의 의원도 “국회법도 무시하고 헌법도 위반하고 오로지 집권말기 언론보도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노골적인 의도 밖에 없었다”며 “민주당은 대선 정국에서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의 입을 막겠다는 시커먼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야당만이 이런 시선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 국회 출입기자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가장 큰 이유는 대선이 아니겠느냐”며 “현 정부가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을 한다고 했으나 추미애-윤석열 갈등이나 조국 보도 등이 정부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보고, 언론에서 나올 리스크를 제거해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민주당 정부에서는 늘 언론과 충돌해왔다. 대부분 이전의 기득권 편에 서서 편파왜곡 보도의 피해를 당했다는 점에서 언론과 유착 보다 불편한 거리두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 2001년 전 언론사 세무조사, 공정거래위원회 언론사 부당내부거래 조사, 2005년 노무현 정부도 순차적 언론사 세무조사, 2007년 기자실 통폐합을 포함한 취재선진화 방안 등을 실시했으나 대부분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통제하려든다는 비판이 더 컸다. 권력이 언론을 제도와 법으로 다스리려 하면 명분에서 밀리고 탈이 나게 마련이다. 건전한 긴장관계는 권장할 일이나 언론에 적개심을 드러내는 순간 소통은 더 어려워진다.

국회의 한 출입기자는 “과거 언론을 강제로 손보려 할 때마다 후폭풍과 부작용이 더 컸다”며 “이번에도 똑같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28일 오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와 백브리핑에서 징벌적 손배제 법안소위 통과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조현호 기자
▲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28일 오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와 백브리핑에서 징벌적 손배제 법안소위 통과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조현호 기자

이에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8일 오전 백브리핑에서 “일부에서 언론재갈법이라고 하고 있는데, 맞지 않다”며 “우리는 가짜뉴스피해구제법으로 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야당과 언론계의 반대에도 이렇게 표결로 밀어붙일만큼 절박한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미디어오늘의 질의에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왜 개혁과제로 생각했겠느냐”며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가 도를 넘고 그걸 개선해달라는 여러 요구들이 정치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한테도 있다고 받아들였다”고 답했다.

고 수석대변인은 ‘징벌적 손해배상 얘기가 나온 지난해부터 이미 이런 법안을 내면 반대가 극심할 것이라는 것을 알지 않았느냐’는 질의에 “언론계가 반대하는 것 때문에 못한다”며 “언론의 문제제기에도 이 부분을 개혁과제로 정해서 통과키켜야 할 이유가 있고 개혁 중 하나”라고 답했다.

정치적 이유와 관련해 ‘정권 말이고 대선이 1년도 안남았는데 이런 언론정책을 밀어붙여서 과거 대부분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민감하고 여러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법안을 강행하는 게 대선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미디어오늘 기자 질의에 고 수석대변인은 “이 법을 추진하는 것이 정권 말기와 연관시키는건 완전한 억측”이라며 “개혁 과제가 21대 국회 출범한 뒤 완수되지 못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언론중재법과 신문법”이라고 말했다. 고 수석대변인은 “이런 법을 빨리 통과시켜야 하는 판단이지, 정권 말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언론 재갈법이라는 명칭으로 이 법의 정신 취지를 폄훼하는건 옯지 않으며 정권 말과 해석하는건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