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구성원들이 지난 23일 호반건설에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전량 매각하기 위한 ‘협상 착수’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호반건설 인수를 저지하겠다던 2년 전 서울신문 구성원 결의와 반대 결과다. 구성원들은 ‘매각’이 아닌 ‘협상 착수’에 강조점을 두는 한편, 호반건설이 대주주로 올라설 경우 언론사 내 구조조정 가능성을 비롯한 불안정성에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호반건설은 지난 7일 우리사주조합에 우리사주조합 보유지분 28.63%를 300억원에 매입하고, 전 임직원에게 1인당 5000만원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서울신문 지분구성은 기획재정부(30.49%), 우리사주조합(28.63%), 호반건설(19.40%), KBS(8.08%) 순이다(지난 3월 전자공시시스템 기준).

우리사주조합이 지난 19~23일 조합원 투표를 진행한 결과 ‘호반건설의 우리사주조합 지분 인수 제안에 대한 협상 착수 동의 건’이 찬성률 56.07%로 가결됐다. 동시에 진행된 ‘12기 우리사주조합 조합장과 이사 해임 건’은 61.17% 찬성률로 가결됐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서울신문 사옥.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서울신문 사옥. 사진=김예리 기자

이에 서울신문 구성원들은 사실상 ‘사주조합을 폐지할 협상에 임할 사주조합장’을 선거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였다. 우리사주조합은 26~29일 조합장 후보등록 이후 선거운동을 진행하고, 오는 3일 후보자 정견 발표와 함께 3~5일 조합장 선거를 진행한다. 보궐로 들어서는 차기 집행부 임기는 앞서 해임된 12기 사주조합의 잔여 임기인 올 10월31일까지다.

이번 결정은 사실상 모든 조합원(98.8%)이 투표해 찬반이 ‘5.5대 4.4’로 갈렸다. 표차가 크지 않다. 그러나 2019년 호반건설이 포스코의 보유지분 19.4%를 인수해 3대 주주로 올라선 뒤 서울신문 구성원들이 ‘건설사의 적대적 인수설’에 강력 반발한 과거에 비추면 낙폭이 크다. 당시 서울신문은 민간자본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주주 검증 작업이라며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호반건설 비판 보도를 했다. 이후 호반건설로부터 ‘서울신문 독립을 지지하며 지분 매각을 노력한다’는 양해각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투표 결과에 서울신문 구성원들 해석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사주조합이 1대 주주가 되는 과정에서 져야 할 경제적 부담을 자각한 상황과 △사주조합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시점 △기획재정부가 서울신문 주식 공매를 선언해 ‘현상유지도 불안정하다’는 판단 등이 이번 결과의 공통 요인으로 꼽혔다.

편집국 구성원 A씨는 “우리사주조합이 제시해온 ‘독립언론’ 비전이 집중 화두였다. 그러나 1대 주주로 거듭나기 위한 문턱에서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상당한 부담을 져야 하는 현실을 마주한 것이 분기점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기재부도 공매를 선언하고 호반이 인수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내 언제 변화가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번 결과는) 호반 관련 정보나 인수 의도라도 알아보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구성원 B씨는 “직전 투표에선 1대 주주가 되려면 내 호주머니에서 50만~60만 원이 다달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제안한 집행부 불신이 팽배한 틈을 타 호반이 2019년과 똑같은 조건의 제안을 한 것”이라며 “내부에서 ‘이거라도 확실하게 받아내자’는 논리가 일부 통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호반건설 보유 지분 인수를 위한 회사 차입 약정 체결’ 안건이 부결돼 우리사주조합의 호반건설 보유 서울신문 지분 인수는 무산됐다. 이어 해당 안건을 주도한 박록삼 사주조합 집행부에 대한 해임 안건이 발의됐다.

▲서울신문 사옥인 프레스센터와 서울 양재동 호반건설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서울신문 사옥인 프레스센터와 서울 양재동 호반건설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현재 서울신문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우리사주조합원이자 호반 인수 반대 입장을 밝혀온 강성남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투표 결과를 두고 “조합원들의 ‘언론 독립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강 전 위원장은 “‘미디어도 자본이 소유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 아니냐’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라며 “저널리즘이 감시해야 할 권력 가운데 자본에 대한 감시와 저항에 대한 감각은 상대적으로 약했던 까닭”이라고 말했다.

‘협상 착수’는 호반과 우리사주조합 사이 장기전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B씨는 “전엔 호반건설에 지분을 팔 논의조차 말자는 입장이었다면, 이번 투표 결과는 ‘얘기를 해 보자’는 정도다. 그것 역시 과거에 비하면 큰 변화”라고 했다. A씨는 “오너회사와 달리 구성원들 생각이 다양해 협상 일정이나 방향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호반 인수를 막으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는 속내도 있을 수 있다”며 “구성원들은 중장기전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서울신문 데스크급 구성원 C씨는 “서울신문이 한겨레·경향 외에 드물게 윤전과 시설관리부를 직속 정규직으로 고용한 언론사다. 호반이 오너가 되면 외주화나 구조조정 위험이 높은 직군이 많다”고 우려했다. C씨는 “구성원이 각자 견해차를 드러낸 현 상황이 호반 입장에선 유리한 그림이다. 호반은 가장 고용이 불안한 사람을 쳐낼 수도, 주식을 지키겠다며 반발하는 사람을 쳐낼 수도 있다”고 했다.

A씨는 “호반은 상장되지 않은 가족기업이고 지배구조도 불투명하다. 사업확장 방식도 단기간 급속도로 성장했다”며 “호반의 경영철학과 사회에 대한 비전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문사 인수에 나서는 것에 우려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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