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취재를 하지 않고 인용하는 기사가 늘어나고 있다. 시사 방송프로그램과 SNS 인용이 대표적이다. 때로는 시사 프로와 SNS에서 유명인이나 정치인의 공식 입장이 나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용 문화로 인해 기자들은 비교적 손쉽게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SNS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사생활 공간일 뿐이다. 시사 프로 인용의 경우 시각차가 존재하거나 맥락을 빠트리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모두 직접 입장을 추가로 묻는 취재를 거치지 않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최근엔 한 SNS가 기고문으로 둔갑하는 사례가 있었으며 시사 프로 인용 과정에서 공개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진=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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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식 직썰 편집장이 ‘강호논객 정주식’?

정주식 직썰 편집장은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와 관련한 글을 올렸다. 윤 전 후보 지지율 하락에 대한 사견을 적었다. 이후 정 편집장의 글은 ‘최보식의 언론’에 게재됐다. 이 과정에서 사전 동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특히 전문이 기고문 형식으로 최보식의 언론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갔다.

정 편집장은 26일 페이스북 메시지로 해당 글을 기사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받았고 이에 단순 인용 수준으로 이해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이 바이라인에 실리고 기고문 형식으로 게재되자 즉각 삭제를 요구했다. 바이라인은 ‘강호논객 정주식’으로 달렸다. 최보식의 언론 측도 이를 수용했다.

정 편집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것은 다들 단평이나 단상 위주로 올리는 것 아닌가”라며 “이걸 기사에 일정 부분 코멘트를 인용하거나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전문을 끌어다가 기사화를 하고, 또 기사화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도 묻지 않고 쓴 것은 언론윤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진=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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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최보식의 언론 대표인 최보식 대표가 조선일보라는 기성 매체에 오랜 기간 있다가 퇴임한 것으로 알고 있어 최소한의 언론윤리는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황당했다”며 “알 수 없는 매체도 많은 상황이고, 언론윤리를 쉽게 생각하는 매체가 많기는 한데 그래도 기성 매체에서 오래 근무한 분이라면 최소한의 언론윤리는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제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최보식의 언론 관계자는 정 편집장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고 전문을 기고문 형식으로 게재한 것과 관련해 “최보식의 언론에 게재된 페이스북 글들은 필자들의 동의가 이뤄지고 올려진 글”이라며 “필자 군이 거의 고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편집장의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였다”며 “신문제작(온라인 기사 출고)이 아침 이른 시간에 이뤄져 마감 직후 본인에게 알려 원치 않는 경우 해당 글을 삭제한다”고 했다.

다만 인용 논란과 별개로 이번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정 편집장의 글에 오류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편집장은 3일 전에 해당 글이 게재됐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이 관계자는 “정 편집장의 글은 26일 온라인 사이트에 게재됐기에 3일 전 게재는 틀린 말”이라고 전했다.

필진 기고문 인용 문제로 공방전 벌인 한겨레

한겨레신문은 외부 필진 기고문으로 또 다른 외부 인사와 공방전을 벌였다. 기고문이 실리는 과정에서 인용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이선옥 작가는 25일 자신의 홈페이지 ‘이선옥닷컴’에 ‘애증의 [한겨레신문]을 떠나보내며-석 줄짜리 정정 조치를 받아내며 한겨레신문의 몰락을 실감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선옥 작가는 17일 지면으로 출고된(온라인용은 18일 출고) 이라영 작가의 기고문을 문제 삼았다. 이라영 작가는 ‘더 강한 여성가족부를 원한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이라영 작가는 해당 칼럼에서 이선옥 작가가 13일 MBC 100분 토론에서 “여성가족부가 ‘반헌법적’이고 ‘반인권적’이라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선옥 작가는 이와 관련해 “방송을 보고 쓴 글이라면 거짓을 말한 것이고, 발언을 확인하지 않은 채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떠도는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믿고 인용했다면 경솔한 행위”라며 “어느 쪽이든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해당 방송을 살펴보면 진행을 맡은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이선옥 작가 주장을 정리하며 반헌법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선옥 작가는 여가부를 향해 ‘위헌적인 기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만 정 교수의 단어 사용을 지적하거나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선옥 작가는 방송 이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지난 17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이라영 작가의 칼럼 ‘더 강한 여성가족부를 원한다’. 사진=한겨레신문 갈무리
▲지난 17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이라영 작가의 칼럼 ‘더 강한 여성가족부를 원한다’. 사진=한겨레신문 갈무리

이선옥 작가는 “정정보도와는 별개로 100분 토론에서 사회자인 정 교수가 수차례에 걸쳐 위헌성과 기본권 침해를 자의적으로 반헌법적, 반인권적이라 요약한 점은 문제로 남는다”며 “토론자가 한 말을 자의적으로 요약하는 것은 때로 요약하지 않는 것만 못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은 위헌과 반헌법이라는 개념에 혼란해하며 둘은 같은 의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표한다”며 “특정한 주제를 두고 주어진 시간 안에서 토론하는 경우 시간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므로 표피적인 개념어만 남아 진의가 왜곡되기 쉽다. 이번 사안도 그런 경우”라고 덧붙였다.

18일 오전 해당 내용이 이라영 작가 칼럼에 반영된 것을 인지한 이선옥 작가는 19일 오전 한겨레신문 주말판 담당 관계자에게 정정을 요청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온라인용 기사에서 해당 발언 바로 뒤에 정정보도 내용을 실어줄 것 △종이신문에도 정정보도 내용을 담아줄 것 등을 요구했다.

내달 7일 자 지면에도 관련 문구 반영해 싣는 것으로 정리

이선옥 작가는 당초 내부 취재 기사가 아닌 외부 필진의 글인 만큼 빠른 정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문제를 제기한 날 저녁까지 정정보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서 시각차가 발생했다. 한겨레신문은 내부 프로세스를 정상적으로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선옥 작가는 외부 필진의 글이기에 보다 빠른 정정을 기대한 것이다.

이후 한겨레신문은 20일 이선옥 작가 측에 “(이선옥 작가가 문제 삼은 이라영 작가 기고문 내용 바로 뒤에) 이와 관련해 이선옥 작가는 7월19일 <한겨레신문>에 당시 토론에서 (여가부가) 위헌적인 기구, 기본권 침해라고 발언했으며 여성가족부를 반헌법적, 반인권적이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라는 반론 문구를 반영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선옥 작가는 이에 약간의 반론 문구 수정과 함께 지면용 반론 기사를 요구했다.

한겨레신문은 같은 날 오후 이선옥 작가 측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다고 연락했다. 온라인용 기사에는 반론 문구를 반영하고 이라영 작가가 연재하는 내달 7일이나 다음주 토요일판에 동일한 반론 문구를 반영하겠다고 전한 것이다.

▲지난 25일 이선옥 작가가 자신의 홈페이지 '이선옥닷컴'에 올린 게시글 일부. 사진=이선옥닷컴 갈무리
▲지난 25일 이선옥 작가가 자신의 홈페이지 '이선옥닷컴'에 올린 게시글 일부. 사진=이선옥닷컴 갈무리

이선옥 작가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외부 필진의 글 속에서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당사자 문제 제기가 있으면 심플하게 처리가 가능한 것 아닌가”라며 “이게 그렇게 어려운 문제인가. 법무팀에 확인하고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고 말했다.

이어 “내달 7일 자 지면에 정정보도 문구가 반영되지 않으면 언론중재위원회와 민사소송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이라며 “매체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조직이고 이번 일은 조직이 휘두른 나쁜 형태의 폭력적인 일이라고까지 본다”고 덧붙였다.

한겨레신문은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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